[국진이의이야기]3월 28일(금) - 살구꽃 핀 마을은 어디나 고향 같다
살구꽃 핀 마을은 어디나 고향 같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린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우리 국민 동요가 된 이원수 작사, 홍난파 작곡의 「고향의 봄」의 일부입니다.
이 동시를 쓴 이원수선생은, 경남 양산에서 1911년 출생했고 1922년 마산으로 이주, 초등학교 6학년 때 『어린이』지에 동시 「고향의 봄」을 출품, 당선이 되는데, 초등학생의 생각으로 자신의 유년시절과 고향의 그리움을 표현한 순수함에 감동을 받은, 홍난파 선생이 1935년에 노래로 만들었습니다.
이와 같이, 살구꽃과 함께 복숭아꽃, 진달래, 개나리는 우리나라의 봄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꽃으로, 고향마을과 그 속에서 뛰어 놀던 어린 시절이 바로 연상되게 하는 꽃입니다.
제가 군대생활 중 1년 정도를 임진강 넘어 도라산의 좌측, 북한 사천강유역 최전방에 있었습니다. 그 옛날 문전옥답이었을 땅이었지만, 온통 갈대와 수풀로 덮인 곳이었습니다.
어디가 마을이고 어디가 논밭이었는지도 구별되지 않는 곳이었는데, 그래도 봄이 되니까 나지막한 산 아래는 군데군데 화사한 살구꽃이 구름처럼 피어나서, 전쟁 전에 그곳에 우리 고향동네를 닮은 마을이 있었다는 것을 짐작 할 수 있게 했습니다.
우리의 민간에서는 복숭아나무를 집안이나 동네 안에는 심지 않았습니다. 복숭아나무는 축귀(逐鬼)력이 있어서, 제사 때 조상들이 찾아와도 복숭아나무가 있으면 들어오지 못하고 되돌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복숭아나무 대신, 약재로도 사용 할 겸, 살구나무를 집안과 동네에 많이 심었습니다. 봄이 되면 아담한 초가지붕 위로 뭉게구름처럼 살구꽃이 핀 모양은 비록 가난했지만 정겨움이 피어나는 어릴 적 동네의 모습이었습니다.
매화가 양반들의 멋을 표현하는 좀 귀족적인 나무라면, 살구나무는 질박하게 살아온 서민들과 함께한 나무였습니다. 살구나무는 다른 과일보다는 훨씬 빨리 초여름에 새콤달콤하고 말랑말랑한 열매가 익기 때문에, 보릿고개로 배고픔이 한창일 시기에 참 고마운 나무였습니다.
살구나무는 중국이 원산지라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중국의 가장 오래된 지리서인『산해경(山海經);기원전 400~250』에 살구나무 재배 기록이 있어서, 중국에서도 가장 오래된 재배역사를 가진 과수의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살구나무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시점은 명확하지 않으나, 신라 때에 이미 흔히 볼 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삼국유사』에 신라 고승 명랑(明朗)이 지은 시에 ‘산 속에 있는 복숭아나무와 개울가에 있는 살구나무에 꽃이 피어 울타리를 물들이고 있다. ’ 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살구나무의 어원으로 ‘살구’ 는 순 우리말로 옛 말은 ‘살고’ 였다고 하는데, 한자로 ‘살구(殺拘)나무”라고 애써 표시하며, 개(拘)가 살구씨를 먹으면 죽는다. 개를 살구나무에 묶어 놓으면 개가 죽는다. 개고기를 먹고 체했을 때 살구 와 살구 씨가 특효약이다. 는 속설과 연결을 시키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영어로는 Apricot, 일본어는 행자(杏子;あんず)이고, 중국어로는 행수(杏樹)입니다.
살구나무도 매화나무, 복숭아나무, 사과나무, 배나무, 자두나무, 벚나무 등과 같은, 꽃잎이 다섯 장이 특징인 장미과 과일나무입니다. 살구꽃, 매화꽃, 벚꽃, 복숭아꽃은 꽃으로만은 구별이 쉽지 않습니다.
옛날에는 살구는 복숭아와 더불어 약용으로 더 중요시 된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의『신선전(神仙傳)』에 오나라 명의로 이름난 동봉(董奉)은 가난한 환자를 치료해주고 돈 대신 앞뜰에다 살구나무를 심게 했다고 합니다.
그 살구나무가 곧 숲을 이루었고, 그 살구열매를 약재로 사용을 했고, 남는 것은 내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을 구제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후에 사람들은 진정한 의술을 펴는 의원을 칭할 때 살구나무 숲이라는 의미로 행림(杏林)이라고 했습니다.
살구나무 열매를 분석한 결과는 비타민A가 풍부하고, 구연산과 사과산이 2~3%들어 있어, 신진 대사를 도와주는데, 이는 여름철 고된 농사일로 체력이 떨어질 때 크게 도움을 준 것이라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살구나무 씨를 한방에서는 행인(杏仁)이라고 부르는데, 최근에 비누나 화장품의 원료로 많이 사용되고 있고, 가래를 삭이는 약재로 사용이 되었습니다.『동의보감에』서도 살구는 변비, 천식, 폐병 등 다양한 곳에 사용이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의 옛말에도 살구나무가 많은 마을에는 염병(장티푸스)이 못 들어온다는 말이 있기도 했습니다.
살구꽃은 묘하게 서민, 여인, 술집과 깊은 인연이 있는 꽃입니다.
“청명 날 봄비가 부슬 부슬 내리는데
길가는 나그네 너무 힘들어
목동을 잡고 술집이 이디냐고 물어 보았더니
손들어 멀리 살구꽃 핀 마을(杏花村)을 가르키네“
당나라 시인 두목(杜牧; 803~852)의 시입니다.
행화촌(杏花村)이 술집, 술집이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쓰였습니다. 이때부터 행화촌(杏花村)은 술집을 보다 점잖게 부르는 말이 되었습니다.
『원본 춘향전』에도 이도령이 춘향에게 집이 어디냐고 물어보니, “청룡방, 행화촌, 부용당을 찾으소서” 라고 대답하는데, 이 도령이 “내 알겠다. 청룡방은 동쪽이고, 행화촌은 술 거리이며, 부용당은 초당이라. 내 찾아 가겠다” 고 대답을 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옛날에는 살구꽃이 농사의 중요한 기준 시점이 되었다고 합니다. 살구꽃이 필 때 내리는 비를 행화우(杏花雨)라고 했고, 이때를 ‘온갖 곡식의 씨를 뿌리는 시기이다.(杏花生種百穀)’ 라고 했습니다.
살구나무는 목재로도 흰색의 너무 단단하지도, 너무 무르지도 않은 재질로, 산사에서 스님이 두들기는 목탁은 살구나무 고목으로 만들어야 맑고 은은한 소리가 난다고 해서, 살구나무 목탁을 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언제부터 사용했는지는 모르지만, 지금도 사용하는 말 중에 겉만 좋고 실속이 없는 것을 ‘빛 좋은 개살구’ 라고 쓰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토종 ‘개살구’ 를 말한 것인데, 열매는 살구보다 좀 작고, 떫은맛이 강하여 그냥 먹기에는 좀 거북한 맛입니다.
우리나라 식물을 공부해 보면, 식물이름에 접두사로 ‘진짜이다, 좋다’라는 의미의 참이 들어가는 참꽃, 참외, 참깨, 참나무 등이 있는 반면에, ‘못 먹거나, 미천한 것’이란 의미의 접두사 개가 들어가는 개살구, 개복숭아, 개두릅, 개머루, 개꽃 등이 있으며, 또 ‘품질이 낮거나, 야생의 것’이란 의미의 접두사 돌이 들어가는 돌콩, 돌배, 돌탱자, 돌감 등의 식물 이름이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의 학자들이 의도적으로 우리 토종을 격하시키고, 의미상 저급화시킨 결과인지는 모르겠지만, 개 접두사 와 돌 접두사가 붙은 우리의 토종 식물은 표현형은 작고, 거칠고, 맛이 없어도, 오랫동안 순수한 특성의 유전자를 보유한 ‘표준품종’ ‘특산식물’로 육종학적 가치는 매우 큰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식물 유전자원이란 개념조차 없던 시기에, 우리 토종의 종자정보의 많은 부분이 일본 손으로 넘어 가 버린 것은, 아쉬움이 많이 남는 대목인데, 우선 개 접두사가 들어간 토종 식물 이름이라도 다른 이름으로 개명해 주면 좋겠습니다.
(2025.03 - 국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