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진이의이야기

[국진이의이야기]5월 28일(수) - 쥐똥나무

국진이의이야기 2025. 5. 28.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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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부른 것에 대한 미안함에, 반성문을 쓰고 싶은 나무, 쥐똥나무가 있습니다. 


‘자식의 이름을 지을 때는, 나라 이름으로 짓지 않고, 해와 달로 짓지 않으며, 질병 이름으로 짓지 않으며, 산천 이름으로 짓지 않는다. (名子者, 不以國, 不以日月, 不以隱疾, 不以山川)’ 

『예기(禮記)』에 나오는 이름에 대한 금기사항입니다. 

또, 선조들은 자식의 이름을 너무 좋게 지으면, 아이가 단명(短命)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는 귀신이 귀한 집 자식인줄 알고 빨리 잡아간다는 이유였습니다. 

이런 이유에 더하여, 아이의 이름을 ‘개똥이’ ‘바우(바위)’등 천한 의미나 흔한 이름으로 짓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귀한 자식이라는 것을 애써 감추어서 자식이 장수하길 바랐던 것으로, 이 이름을 아명(兒名)으로 쓰다가 나중에 진짜 이름을 정해주곤 했습니다. 조선 인종 임금의 아명은 ‘백돌이’ 고종황제의 아명은 ‘개똥이’ 이였다고 합니다. 

또한, 이름에 너무 큰 뜻이 담긴 것도, 이름에 눌려서 원래보다 못하게 살아가게 된다고 했으며, 용(龍)이나, 호(虎)와 같이 기운이 너무 센 글자도 피했는데, 발음이 같은 글자인 용(用), 호(浩) 등을 넣어 간접 기운을 빌어 오고저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제 이름도 나라 국(國)에 진압할 진(鎭)이니, ‘나라를 진압한다. 나라를 진정시킨다.’ 라는 뜻으로 뜻에 눌릴만한 이름입니다. 거기에다 이름 석 자에 모두 받침이 있고, 박 과 국에 ‘ㄱ’과 ‘ㄱ’이 만나 ‘ㄲ’을 만드는 음운(音韻)학적으로도 피해야 하는 이름입니다.  


제 아명(兒名)은 집안의 항열(行列)자가 바다 해(海)자여서 해진(海鎭)이었는데, 봉정사의 탁발승이 제가 첫돌 지났을 때, 우리 집에서 하루를 묵으면서 조부님께 제 적명(籍名)을 국진(國鎭)으로 하라고 해서 1년 늦게 그 때에 호적에 올린 것이라고 합니다. 

그 탁발승의 예언을 믿고, 많은 것을 제게 기대했던 작고하신 아버님에게는 늘 죄송한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어떠했던 제 이름의 유래이고 역사이니 소중하게 생각하고, 소중하게 남기려고 생각합니다. 

나무 이름에도 제 생각으로는 너무 귀해서, 천하게 이름 지은 것 같이 느껴지는 ‘쥐똥나무’가 있습니다. 

    쥐똥냄새 나는 이름 싫다고 
    말도 못하는 쥐똥나무

    이렇게 고운 향기를 가지고 있다고 
    한 번도 각주를 달지 않은 쥐똥나무
    겉모습에 취한 세상 

    향기는 보지 못하고 쥐똥만 보는 시대 
    쥐똥나무야 미안하다. 
    공원에 나갔다가 반성문 한 장 쓰고 돌아왔다.

마경덕 시인의「쥐똥나무」시(詩)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요즘, 아파트의 화단에서, 길거리에서, 공원에서 쥐똥나무가 봄을 마무리하는 진한 꽃향기를 날리고 있습니다. 

잠깐 머물러서 쥐똥나무에 눈 맞추고, 그 향기를 맡아보면 라일락 향기보다 더 진한 향이 이리도 좋을까 싶습니다. 

마경덕 시인의 표현처럼 ‘쥐똥나무’라고 이름 부른 것에 대한 미안함에 반성문 한 장 써야 그 자리를 떠날 수 있습니다. 

이런 매력적인 향기를 지닌 쥐똥나무는 우리나라 어디에서든 흔히 만날 수 있는 평범하고 친근한 나무입니다. 

쥐똥나무는, 역사의 주인공이 되고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던 낙락장송 같은 적은 없지만, 자기자리를 지키며 열심히 살아 결국은 그 시대를 특정 짓는 보통사람 같은 나무입니다. 

쥐똥나무의 가장 큰 특징은 나뭇가지의 강인한 생명력입니다. 사람들이 이 나무를 조경수로 사용할 경우에는 대부분 생 울타리로 사용을 하는데, 마음 내키는 대로 잘라도 끊임없이 새 가지가 나와서 빈틈없이 자리 메움을 합니다. 

쥐똥나무는 이론(異論)이 있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원산지로, 주로 한국, 중국, 일본, 대만 등 동북아시아에 분포하고 있습니다. 주로 낮은 산이나 산기슭에 야생하는 나무였는데, 생 울타리로 사용하기 알맞은 키에, 생장이 빠르고, 잔가지가 많이 나고, 정형적인 수형(樹型)조성이 가능하며, 꽃향기까지 훌륭하여 지금은 생 울타리의 왕으로 취급되고 있습니다.

 


쥐똥나무는 보통은 낙엽이 지고 나목으로 겨울을 나지만, 중부 지방에서도 겨울이 따뜻하면  반 상록으로 겨울을 견디며, 전남 완도군 보길도에는 ‘쥐똥나무 상록수림’ 있어 천연기념물 제40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쥐똥나무는 개나리, 라일락(수수꽃다리)과 같은 물푸레나무과(科)로, 보통 5월 중순에서 6월 초순에 새하얀 작은 꽃들이 원뿔모양의 꽃차례로 피어납니다. 꽃차례의 모양은 라일락 모양과 비슷한데, 화려함 보다는 수줍은 듯 청초하고 귀여운 꽃입니다. 

꽃이 지고나면, 초록색 열매가 열리는데, 차츰 검은 보라색으로 바뀌고 가을에는 새까맣게 익어갑니다. 이 열매의 모양이나, 색깔, 크기가 ‘쥐똥’을 많이 닮아서 ‘쥐똥나무’ 라고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요즘은 아파트 생활이 많으니, 젊은 사람들은 쥐똥을 볼 수 없어서, 쥐똥나무 열매와 쥐똥의 특징을 바로 연결 짖지 못하겠지만, 쥐똥나무라는 이름을 평생 가지고 살아야하는 나무는 좀 억울할 것 같습니다. 

 


식물 이름 면에서는 우리보다 한발 앞서 간다고 생각되는, 북한에서는 쥐똥나무를 순 우리말로 흑진주를 연상시키는 ‘검정알나무’ 라고 이름을 붙여 주었습니다. 

쥐똥나무는 중국과 한방(韓方)에서는 수랍목(水蠟木)이라하며, 일본어로는 이보타노기(水蠟の木)라고 하는데, 한자(漢字)를 자기들 말로 훈독한 것입니다. 영어로는 이보타 프리비트(Ibota Privet) 라고 하는데, 일본어의 이보타(Ibota)를 일부 원용하고 있습니다. 

쥐똥나무의 다른 이름으로는 남정목(男精木)이 있는데, 쥐똥나무의 열매를 햇볕에 말렸다가 달여서 먹거나, 잘 익은 열매로 술을 담아 먹으면, 남자의 정력이 좋아진다고 해서 불리어지는 이름입니다. 

사람이나 식물이나 쥐똥나무와 같이 좋든 싫든 평생 그 이름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식물을 공부하면서, 첫 궁금함은 이 식물은 왜 이 이름을 붙였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식물이름의 상당수는 오래전부터 불리어 오던 우리의 이름이 채록(採錄)되어 기록되었고, 『본초강목(本草綱目)』등 본초학에서 한자(漢字)명으로 따온 이름, 『양화소록(養花小錄)』『물명고(物名攷)』등 일부 우리 문헌에 등장하는 이름을 종합하여, 일제 강점기인 1937년 정태현 박사 등이 발간한 『조선식물향명집』 에서 처음 체계적으로 정리를 했습니다. 

이때에도 우리 이름이 명확하지 않은 식물에는, 일본 이름을 그대로 우리발음으로 사용된 것도 있고, 각 지방 사투리 이름과, 좀 외설스러운 이름까지 혼재된 부분이 아직까지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식물의 명명(命名)은 ‘국립수목원’과 ‘한국식물분류학회’에서「국가표준식물목록」을 작성해서 ‘목록심의 위원회’ 에 넘기면 위원들이 협의하여 식물의 이름을 정하거나, 개명(改名)을 합니다.

예를 들면, 몇 년 전에 ‘개불알꽃’이란 거북스런 이름으로 불리어 오던 꽃을 ‘복주머니란(蘭)’ 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으로 개명해 준 것 과 같이 말입니다.  

(2025.05 - 국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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