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진이의이야기

[국진이의이야기]6월 6일(금) - 뽕나무

국진이의이야기 2025. 6. 6.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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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오디가 까맣게 익어가는 계절이면, 어린 시절 좋은 추억의 하나로 남아 있는 달콤함과 새콤함의 오디 맛이 그리워집니다. 


『삼국지(三國志)』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특히 남자들이 가장 많이 읽어본 책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고 여러 번 읽었다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저도 고등학교 때 어렵게 빌려서 처음 읽어 보았는데, 분홍색 양장 표지에 두꺼운 5권으로 삼국지의 정석이라고 말하는 일본인 요시가와 에이지(吉川英治;1892~1962)가 쓴 것을 번역한 것이었습니다. 

 


제 또래 사람들은 대부분 이 요시가와 에이지의 삼국지 번역본을 보았을 것 같습니다. 같은 책을 봤기 때문에, 삼국지의 등장인물에 대한 평가와 동경이 비슷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뒤로 박종화의 삼국지, 이문열의 삼국지도 나왔고, 우리 세대는 적응되지 않는 대놓고 "쪼다 같은 유비" 라고 인물 평가를 달리하는 고우영의 만화 삼국지도 나왔습니다.

원작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를 쓴 명나라 나관중(羅貫中;1330~1400)의 관점과 대의명분이 촉한(蜀漢)에 경도되어 있어, 다분히 유비(劉備:161~223)와 관우(關羽;?~219), 제갈량(諸葛亮; 181~234)을 신격화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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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삼국지 이야기의 시작은 유비가 태어나서 자란 곳 탁현 누상촌 이야기로 전개가 됩니다. 누상촌(樓桑村)이란 뽕나무(桑)가 누각(樓閣)처럼 유비의 집을 덮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동네 이름입니다. 이는 정사(正史) 『삼국지』 에도 나오는 내용입니다.

유비는 가난한 살림에 홀어머니를 모시고 돗자리와 짚신을 만들어서 생계를 유지했는데, 소문난 효자였던 유비는 출타했던 어머니가 돌아올 시간이 되면 뽕나무 위에 올라가서 멀리서 오는 어머니를 기다렸다고 합니다.

저는 삼국지를 읽으면서 처음으로 의문이 생긴 것이 ‘아름드리로 누각처럼 큰 뽕나무’였습니다.

 


봄철과 가을철 1년에 두 차례 양잠(養蠶)으로, 뽕나무와 아주 친한 안동(安東)의 농촌에서 자라면서, 그렇게 큰 뽕나무는 본 적도 없고 들은 적도 없었기 때문에, 역시 중국 특유의 ‘대륙의 뻥’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배웠지만, 뽕나무는 낙락장송(落落長松)같이 자라는 나무는 아니더라도 누에치기 때문에 매년 베어내지 않으면 원래가 교목으로 10여m 이상 자라는 나무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강원도 정선군청 앞에 500년 된 큰 뽕나무(천연기념물 제568호)가 있고,  상주 두곡리에는 350년 이상 된 뽕나무(천연기념물 제559호)가 있으며, 창덕궁에도 수령 400년 정도 되는 뽕나무(천연기념물 제471호)가 있습니다. 

 


어렸을 때, 우리 집의 가장 큰 부수입은 봄, 가을 두 차례 양잠이었는데, 저는 징그러운 누에를 만지는 것보다 이때쯤 뽕나무에 까맣게 익어가는 오디에 더 관심이 있었습니다.

먹을 것이 부족했고 당분이 부족했던 시절에, 이 밭둑 저 밭둑 다니면서 손과 입이 검푸르죽죽하게 물들도록 오디를 따 먹을 수 있어서 좋았고, 그 시기가 되기를 기다렸습니다.

고개 넘어 10리길 초등학교(國民學校)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는 많은 뽕밭이 있었는데, 책보자기 옆으로 다잡아 메고, 동네 또래들과 빈 도시락 가득 따서 조잘대며 먹었던 그 달콤함과 새콤함의 오디의 맛은 지금도 좋은 추억 의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뽕나무와 양잠의 기록은 중국에서는 4,000여 년 전, 우리는 삼한시대 농경 생활이 시작되면서 부터라고 합니다. 우리 문헌으로는『삼국사기』에 박혁거세 17년에 임금이 직접 6부의 마을을 돌며 누에치기를 독려한 내용이 있다고 하며, 고구려 동명왕과 백제의 온조왕 때 농사와 함께 누에치기의 중요성을 강조한 대목이 있다고 합니다.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 조선시대로 이어지면서, 양잠은 가장 중요한 산업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공업입국, 수출입국이 있다면 조선시대와 지금의 고도산업화 이전까지만도 비단입국을 기치로 누에치기를 장려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각도마다 누에치기 전문기관인 잠실(蠶室)이 있었고, 세종대왕 때에는 경복궁과 창덕궁에 내(內) 잠실이 있었으며, 중종 때에는 전국의 잠실을 재편했는데, 현재의 잠실동, 잠원동 등이 이때 생긴 지명이 되었습니다. 


세계적으로 보더라도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양의 천연섬유 비단(緋緞)은 당시 초일류 국가였던 로마제국의 귀족과 귀부인들의 혼을 빼놓을 만큼 비교 불가의 옷감이 되었습니다. 그 비단을 실어 나르던 길이 ‘실크로드(Silk Road)’로 동서양의 중요한 문화교류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뽕나무의 이름의 유래는 장난 같지만, 오디를 많이 먹으면 소화가 되면서 ‘뽕~뽕~’하고 방귀가 많이 나온다고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며, ‘오디’라는 이름은 오디의 표면이 오들 도들 해서 ‘오들개’로 불리다가 오디로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처음 누가 장난기 어리게 붙여 부른 이름이 수 천 년 이어져 온 이름 ‘뽕나무’가 되었다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한자의 뽕나무 ‘상(桑)’자는 나무 목(木)위에 오디가 다닥다닥 붙은 모양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합니다. 영어로는 Mulberry로 역시 Berry류 로 보고 있으며, 일본어로는 구와(桑;くわ)라고 합니다.

뽕나무는 중국이 원산지로 알려지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온대와 아열대 지역에 30여 종이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야생하는 고유의 산뽕나무가 있습니다. 뽕나무의 꽃은 5월에 피고 암 수 딴 그루입니다. 열매 오디는 6월에 짙은 보라색 또는 검은색으로 익습니다. 

 


우리 속담에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누에는 뽕잎을 먹는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그런데, 누에는 닥나무 잎도 잘 먹습니다. 오디 따먹던 시절, 누에 칠 때 보면, 새끼손가락 굵기의 큰 누에가 되면 하루에 먹는 뽕잎이 엄청납니다. 비가 와서 뽕잎을 못 따거나 해서  뽕잎이 모자라면, 누에가 모두 머리를 들고 좌우로 막 흔드는데, 이때 아버지께서 집 근처에 있는 실한 잎이 붙은 닥나무 가지를 잘라서 누에에게 주면 역시 잘 먹는 것을 보았습니다.

닥나무도 같은 뽕나무과(科) 이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 유추로 보면, 같은 뽕나무과인 무화과나무, 돌무화과나무 잎도 누에에게 주면 잘 먹을 것 같습니다.

  밀을 베러 매 고을 북쪽으로 갔지. 
  누구를 생각하며 갔나.
  어여쁜 익씨네 맏딸이지 
  뽕밭에서 만나자 하고 

『시경(詩經)』에 나오는「桑中(뽕밭)」의 일부입니다. 이 뽕밭(桑中)이 모티브가 되었을지 모르지만, 나도향(1902~1926)의 애로 단편소설 「뽕」이 있고, 우리나라 애로영화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이대근 주연의 「뽕1, 2, 3」도 있었습니다.

“님도 보고 뽕도 따고”라는 말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뽕나무, 뽕밭은 예부터 남녀 간 사랑과 밀회(密會) 장소의 상징으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지금은 섬유나 소재 기술이 발달하여 옷감으로서 비단의 중요성이 많이 떨어졌지만, 뽕나무와 누에는 누에 가루, 누에 환, 동충하초, 뽕잎 차, 뽕잎 가루, 뽕잎 환, 오디 즙, 오디 와인 등 거의 모든 면에서 우리 몸에 좋은 건강식품으로 활용도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또 뽕나무에서 나오는 버섯이 진짜 상황(桑黃)버섯인데, 항암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오디는 한방에서 상심자(桑椹子) 라고 하는데, 안토시아닌과 폴리페놀 등 항산화물질이 있어 노화 방지에 도움이 되며, 루틴(Rutin)이 함유되어 있어 순환계 치료와 고혈압 치료에 도움을 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중국의 오래된 농서(農書)인 『제민요술』에 ‘까맣게 익은 오디를 먹으면 소갈(당뇨병)이 멈출 뿐 아니라 혈기를 돋워 주고 노화를 방지해 준다.’라고 나와 있다고 하며, 우리의『동의보감』 탕액편에는 ‘까만 오디는 뽕나무의 정령(精靈)이 모여 있는 것이며, 당뇨병에 좋고, 오장에 이로우며, 오래 먹으면 배 고품을 잊게 해준다. 또 귀와 눈을 밝게 하며, 백발을 검게 변하게 하고, 노화를 방지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2025. 06 - 국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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