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진이의이야기]6월 20일(금) - 감자
유럽의 인구 폭발과 산업혁명을 가져올 수 있었으며, 지금도 유럽이 세계의 중심이 되고 선진국의 위치에 설 수 있었던 원동력은 감자에 있었습니다.
미국 스미소니언 연구소 헨리 홉하우스(Henry Hobhouse)는『역사를 바꾼 5가지 씨앗』이란 책에서, 인류의 역사를 바꾸어 놓은 5가지 작물로, 수많은 사망자를 낳은 말라리아의 치료제가 된 키니네, 미국 남북전쟁의 발단이 된 목화, 유럽문화를 바꾸어 놓은 차(Tea), 서인도제도의 사탕수수, 그리고 인류를 기아에서 구해낸 ‘감자’ 를 꼽았습니다.
보통 봄 감자는 하지(夏至)에 캔다고 해서 하지감자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같으면 심은 지 3개월 만에 수확하게 됩니다. 벌써 감자 꽃이 지고 꽈리 같은 열매가 맺히고, 잎과 줄기가 누릇누릇 해지는 것을 보니까 수확시기가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감자는 기원전 3천 년 경부터 남아메리카의 페루와 에콰도르 등에서 재배되기 시작한 안데스 산맥의 잉카인들의 식량이었습니다. 15세기에서 17세기에 이르는 대항해 시대에 스페인 사람들에 의해서 담배와 함께 유럽에 전파가 되었고, 현재는 전 세계인들이 사랑하는 식량과 요리의 재료가 되었습니다.
유럽에 전래 초기에는 감자를 동물의 사료정도로 사용되었고, 한 때는 먹으면 나병이 걸린다는 등 ‘악마의 식물’ 이라고 누명을 쓰기도 했는데, 18세기 초 유럽에 대기근이 들면서 기근대책으로 각국이 강요에 가깝게 감자재배를 장려했습니다.
악마의 식물로 인식돼 온 감자를 많이 먹고 감자농사를 많이 짓게 하려고 노력한 유럽의 역사적 인물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어쩌면 억울하게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프랑스 비극의 여인 ‘마리 앙투아네트’ 인데, 그녀는 감자를 홍보하기 위해서 연회나 공식 석상에 늘 감자 꽃을 달고 나왔으며, 또 한 사람은 독일인이 가장 존경하는 독일 프로이센 왕국의 프리드리히 2세입니다. 그는 왕실 농장에 감자를 재배하면서 ‘왕실에서 먹을 것이니 가져가면 안 된다’ 는 팻말을 붙여 놓고 야간에 경비병을 철수시켜 의도적으로 ‘감자서리’를 유도하는 방법으로 감자가 좋은 음식이라고 적극 홍보했습니다.
이러한 과정으로, 감자가 유럽의 부족한 식량을 대체할 수 있었고, 18~19세기의 유럽의 인구 폭발과 산업혁명을 가져올 수 있었으며, 지금도 유럽이 세계의 중심이 되고 선진국의 위치에 설 수 있었던 원동력은 감자에 있었다고 문화인류학자들이 분석하고 있습니다. 또, 밀이 부족했던 독일이 2차 대전을 수행할 수 있었던 것도 감자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1853~1890)가 그린 「감자먹는 사람들」그림을 보면, 바쁜 하루를 지내고, 지친 얼굴로 작은 등불 아래에서 찐 감자만 먹는 서민들의 모습에서 볼 수 있듯이, 당시 감자는 유럽에서 서민들이 저녁에도 먹어야 하는 주식이었다고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아일랜드 등 일부 유럽 국가는 단위당 생산량이 많다는 것 때문에 서서히 감자가 주식이 되었는데, 아일랜드에서 1847년 감자 역병이 창궐하면서 아일랜드의 모든 감자가 전멸하며, 100만 명에 가까운 아일랜드 인들이 굶어 죽었고, 250만 명이 미국으로 건너가며 아일리쉬 미국인의 유래가 되는 역사도 있었습니다.
감자가 우리나라에서 재배가 되기 시작한 역사는 그렇게 오래지 않습니다. 오주 이규경이 쓴『오주연문장전산고』에 의하면, 감자는 조선 순조 24년(1824)에 산삼을 캐러 함경도에 들어온 청나라 사람이 가지고 와서 전파가 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일본 대마도말로 ‘고코이모’ 라고 해서 ‘고구마’가 된, 원래 이름 ‘감저(甘藷)’가 이미 18세기 중엽에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중남부에 널리 재배되고 있어서, 중북부 지방으로 청나라 사람에 의해 전래 된 감자(북방감저) 재배가 급격히 확대가 되었습니다.
감자재배가 크게 확대되었던 이유 중 큰 부분이, 감자가 조선의 조세의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어 관(官)의 수탈을 피할 수 있었는데, 조세 감소 때문에 조정에서 ‘감자 재배 금지령’ 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감자는 한동안 감자와 고구마의 통칭으로 사용이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현재도 제주도와 전남 서해안 지역에서는 고구마를 ‘감저’ 라고 하고, 감자를 ‘지슬(地實)’ 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원래 감저가 고구마란 이름으로 굳어지며, 자연스럽게 (북방)감자가 그냥 감자로 불리게 된 것입니다.
개화기의 유명한 김동인(1900~1951)의 단편소설 『감자(1925)』에서 주인공 복녀가 훔친 감자는 실제로 고구마를 말하는 것입니다.
중국에는 16세기에 네덜란드 상인에 의해 감자가 전래가 되었는데, 감자알 모양이 말방울을 닮았다고 ‘마령서(馬鈴薯)’라고 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네덜란드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를 점령한 후에, 1603년에 일본에 감자가 전래가 되었기 때문에 ‘자카르타에서 온 고구마’란 뜻으로 ‘자가이모’ 라고 합니다.
영어로는, 페루에서 감자를 ‘파파(Papa)’라고 불렀는데, 당시에 교황을 ‘파파’라고 했기 때문에, 감자가 유럽으로 전해지면서 영국에서 ‘파타타(Patata)’ 라고 불렀고, 이후 시간이 지나며 ‘포테이토(Potato)’가 된 것입니다.
지금도 ‘강원도 감자 바위’ 라는 말이 있듯이, 강원도는 산지가 많고 산간지방의 서늘한 날씨에 감자의 재배기간이 3개월로 짧아 강원도가 감자의 재배적지가 되었습니다.
평창군을 중심으로 해발 600m이상 고랭지 감자는 전국에서 품질이 가장 좋으며, 특히 병충해에 강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씨감자는 고랭지 감자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감자는 현재 쌀, 밀, 옥수수와 함께 세계4대 식량작물입니다. 통계를 보면 쌀의 전 세계 생산량이 약 5억 톤인데 비해, 감자 생산량은 약 3억 톤으로 쌀의 반이 넘는 정도가 되며, 한국의 봄 감자 생산은 2024년 40만 톤으로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쌀의 한국 생산이 2024년도 358만 톤인 것과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감자는 고추, 가지, 토마토와 함께 가지과(科)에 속하는 작물입니다. 감자에서 식용하는 부위를 흔히 고구마처럼 땅에서 캐므로 뿌리라고 생각을 하는데, 감자는 줄기가 변해 만들어진 덩이줄기(塊莖)로 고구마의 덩이뿌리와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감자는 수분 75%, 녹말 13~20%, 단백질 1.5~2.6%, 비타민 C는 사과보다 3배가 많을 전도로 풍부하며, 지방은 거의 없습니다. 감자는 영양소가 풍부하다고는 하나 생존을 위한 녹말은 풍부하지만 단백질과 지방은 부족한 편입니다.
감자는 양극(남극, 북극)지역을 제외하면 모든 곳에서 재배가 가능합니다. 영국의 식물학자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은 감자에 대해 ‘6개월 이상 한 방울의 비가 내리지 않는 칠레의 메마른 산과, 남부지역 섬의 습기가 많은 곳에서 똑같이 잘 자라는 것은 정말 놀라운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가지과 식물은 대부분은 독성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감자가 싹이 나거나 햇볕을 받으면 초록색으로 변하는데, 이때 ‘글리코알칼로이드’ 라는 독성물질이 생깁니다. 이 성분은 솔라닌과 차코닌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러한 감자의 독성을 섭취하면 설사, 구토, 식중독, 현기증, 두통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감자는 세계적으로 수많은 종이 있는데, 크게 구분하면 점질감자와 분질감자로 구분합니다. 우리나라 재배의 80%정도를 점하며, 찐득한 느낌에 단맛이 나는 ‘수미’ 감자는 대표적인 점질감자로 국물요리나 볶음요리에 적합하며, 삶았을 때 분(粉)이 많이 나는 ‘남작’ ‘대서’ 감자는 주로 쪄서 먹는 요리나 칩 가공용으로 이용되는 분질감자입니다.
감자의 색깔로는 우리나라에는 흰 감자와 자주 감자가 주로 있는데, 감자 꽃이 흰색이면 캐 보지 않더라도 흰 감자이고, 자주색이면 자주 감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감자는 봄에 심어 하지에 캐는 봄 감자(하지감자)가 있고, 여름에 심어 가을에 수확하는 가을감자가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봄 감자가 대부분입니다. 감자의 대표적인 효능은 위를 보호하고, 피로회복, 혈압조절, 다이어트 등에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감자는 독특하게 휴면성이 있습니다. 이는 보통 수확한 후에 90~120일정도 지나야 싹을 틔우므로 수확하여 바로 심으면 싹이 나지 않습니다. 이 휴면성 때문에 감자 보관이 비교적 수월한 편입니다.
(2025. 06 -국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