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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나 리
겨울날 따스한 볕을 임 계신 곳에 비추고자
봄 미나리 살찐 맛을 임에게 드리고자
임이야 무엇이 없으랴마는
못다 드리어 안타까워하노라.
조선 영조 때 김천택의『청구영언(靑丘永言)』에 나오는 작가 및 제목 미상의 시조입니다. 봄철 통통하게 살이 오른 미나리를 사랑하는 임에게 먹이고 싶다는 마음의 표현으로, 미나리는 예전에도 봄철 입맛을 돋우는 채소로 애용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미나리는 역사적으로 볼 때 가장 오래 된 채소 중의 하나입니다. 3,000여 년 전 『시경(詩經)』에 미나리가 채소로 쓰였다는 기록이 있고, 중국 진나라 재상인 여불위가 기원전 239년 편집한 백과사전인『여씨춘추(呂氏春秋)』에서는 채소 가운데서 가장 맛이 좋은 것은 운몽(雲夢;초나라의 지명)의 미나리라는 표현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미나리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고려사(高麗史)』에 근전(芹田;미나리 밭)이라는 표현이 있어, 고려시대 이전부터 재배되고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조선 초 진상품에 ‘전라도 남원의 미나리’가 포함되어 있어서, 채소 중에서 미나리의 비중을 짐작하게 하고 있습니다. 조선후기 실학자 한치윤(1765~1814)의『해동역사(海東繹史)』에서는 성종 때 조선을 다녀간 명나라 사신의 글을 인용하여 ‘조선의 한양과 개성에선 집집마다 모두 연못에 미나리를 심어 놓았다.’ 라는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또, 조선 숙종 때 장희빈의 모함으로 사가(私家)로 쫓겨난 인현왕후 민씨를 가엽게 여겨서,
저잣거리에서 백성들이 불렀던 미나리와 관련된 노래가 있었습니다.
‘장다리는 한철이요. 미나리는 사(諸)철일세.’
여기에서 장다리는 장희빈을, 미나리는 인현왕후 민씨를 뜻한 것으로, 이 노래의 민심이 통했던지, 그 후 장희빈의 패악이 드러나서 사약(賜藥)을 받았고, 인현왕후는 다시 환궁을 해서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는 말을 확인하는 역사가 되었습니다.

한글명 미나리는 ‘미르(물)에서 자라는 나물에서 유래한 것’ 이라고 하는데, 1527년 최세진의 한자 학습서 『훈몽자회(訓蒙字會)』의 「채소」편에 ‘미나리’ 이름이 처음 등장합니다. 미나리의 한자명 ‘근(芹)’은 미나리(艸,초)가 한 묶음(斤;근)을 이루고 있는 것을 상형화한 것이라고 합니다. 중국어로는 ‘친차이(芹菜)’ 라고 하며, 일본어로 미나리를 ‘세리(セリ)’라고 합니다. 이는 한자 근(芹)을 일본식으로 훈독(訓讀)한 것입니다. 영어로 미나리는 '워터 파슬리(water parsley)', '워터 셀러리(water celery)' 라고 합니다.
미나리는 산형과(科)의 여러해살이 초본으로, 키는 20~50cm정도이고, 개화 시기는 7~8월에 흰색으로 꽃이 피며, 가을에 열매를 맺는데 번식은 씨앗보다는 꺾꽂이 등 영양번식으로 주로 합니다.
미나리는 크게 보면 재배를 하는 물미나리(논미나리)와 습지 또는 물가에 야생을 하는 돌미나리가 있습니다. 역시 야생의 돌미나리가 물미나리에 비해 작고 짧으나 맛과 향이 더 좋습니다. 야생 미나리는 다른 나물에 비해서 3월부터 이른 봄에 먹을 수 있고, 잎과 줄기에 상큼한 향이 있어, 더욱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왔습니다. 지금은 일 년 내내 재배되는 것을 먹을 수 있지만 미나리의 제철은 이른 봄철입니다.
동남아의 고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듯이, 외국인들에게는 미나리의 향이 강해서 호불호(好不好)가 갈린다고 하며 예상외로 미나리를 싫어하는 외국인이 많다고 합니다.

미나리는 줄기 아랫부분이 물에 잠기는 곳에서 자라며 뜨거운 장소는 싫어하고 청정한 수질보다는 적당히 부영양화(썩은)된 수질을 좋아합니다.
때문에, 옛 부터 미나리를 키우는 논은 마을 입구에 있어 적당히 오염된 마을에서 흘러나오는 생활하수가 여과되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미나리가 자라는 논에는 거머리가 많은 것이 보통이고 미나리 줄기 사이나 줄기 안에 있는 공동에 붙어 있기 쉽습니다.
요즘은 농약을 사용하므로 거머리가 많지 않으나, 그래도 미나리는 요리 전에 식초를 떨어뜨린 물에 담가 두었다가 요리를 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합니다. 미나리나물을 하거나, 김치의 양념으로 사용할 때 혹시나 있을 거머리를 제거하는 지혜로서, 다듬은 미나리를 큰 그릇에 넣고 물을 충분히 부은 후에 놋수저를 함께 담가 두거나, 옛날의 큰 10원짜리 동전을 담가 두면 거머리가 빠져나온다고 합니다.
옛날에는 미나리 밭이나 논을 ‘미나리꽝’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미나리는 한번 심어 놓고, 잘라먹으면 또 금방 새순이 올라와서 먹을 수 있도록 자라는, 그야말로 미나리 창고와 같았습니다. 옛날에 창고를 광이라고 불렀는데, 미나리를 계속 내어주는 미나리 광이 경음화 되면서 미나리꽝이 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미나리는 한방에서 수근(水芹) 또는 수영(水英)이라고 부르는데, 맛은 달면서도 좀 맵고, 찬 성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미나리는 비타민, 무기질, 섬유질이 풍부하고 알칼리성 식품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생활습관과 공해로 생긴 몸 안의 독소를 해독하고, 중금속을 배출시키는 좋은 역할을 하는 채소이기 때문입니다. 복어요리에 꼭 미나리를 넣는 것은, 복어의 독을 해독하기 위한 좋은 예(例)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의보감』에서는 ‘미나리는 갈증을 풀어주고, 머리를 맑게 해주며, 주독(酒毒)을 제거 할 뿐 아니라 대 소장(大小腸)을 잘 통하게 하고, 황달, 부인병, 음주후의 두통이나 구토에 효과적이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미나리의 유명한 산지는 근세에는 서울의 광나루, 중화동, 용두동, 전북 남원, 완주, 충남 온양, 경남 창원 등이 있었는데, 지금은 경북 청도, 구미, 충북 청주, 충남 태안 등이 유명합니다. 특히 청도의 ‘한재 미나리’는 지리적 표시제 등록이 된 것으로, 일반 미나리와 달리 속이 꽉 차 있고, 질감이 연하고, 향이 은은하며, 줄기의 아랫부분이 자주색을 띠는 것이 특징입니다.
근세에 한강의 치수(治水)가 잘 되지 못했을 때, 광나루나 한강의 지천인 중랑천, 청계천 인근인 중랑구 중화동, 동대문구 용두동 등이 장마철에는 상습 침수 지역이었고 범람이 자주 있었던 지역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피해가 적은 미나리꽝이 많았다고 합니다. 서울의 지명으로 보면 현재 경찰청 본청이 있는 서대문구 미근동(渼芹洞)은 미나리 논이 있었던 동네라고 붙인 이름입니다.
최근에 미국의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윤여정 배우가 여우조연상을 받으며 유명해진 영화 ‘미나리(Minari)' 가 있습니다. 낯선 미국으로 떠나온 한국가족이 거칠게 살아가는 모습을 ’어디서도 잘 자라는 미나리‘ 가 뿌리 내리는 모습으로 의미화한 영화였습니다.
(2026. 02 - 국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