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살이 매년 12월이 되면 『교수신문』이 그해를 가장 잘 표현하는 사자성어(四字成語)를 설문으로 정해 발표합니다.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하겠습니다만, 몇 년 전에 교수신문이 그해의 사자성어를 압도적으로 ‘공명지조(共命之鳥)’ 를 뽑았다고 발표를 했습니다. 공명지조라는 말이 생소하여 설명을 유심히 읽어 보았습니다. ‘공명조(共命鳥)’는 『아미타경(阿彌陀經)』 등 불경(佛經)에 나오는, 한 몸에 머리가 둘 달린 새입니다. 어느 한쪽이 없어지면 자기만 살 것 같지만, 그렇게 되면 둘 다 죽고 만다는 전설 속의 새입니다. 말하자면 상대가 죽으면 나도 죽는다는 것을 모른 채, 정치권은 물론 국민까지 편을 갈라 죽도록 싸우는 현실이 안타깝다는 뜻을, 한국의 지성을 대표하는 교수님들이 이 말에 담은 것입니다. 참..
구상나무 ‘대항해시대’는 15세기에 서구 열강이 시작한 것으로, 처음에는 교역로를 개척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후추 같은 향신료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1453년 오스만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고 지중해 동방무역을 장악하자 동방의 향신료 공급에 차질이 생기고 가격이 폭등했습니다. 유럽은 참기 어려운 결핍감을 느꼈고, 이를 타개하려는 움직임은 대서양으로 돌출한 지리적 위치의 포르투갈에서 가장 먼저 나타났습니다. 포르투갈은 아프리카 서해안을 따라 내려가 희망봉을 돌았고, 1498년 인도의 캘리컷에 도착하여 향신료 무역을 독점하며 엄청난 부를 쌓았습니다. 이웃 나라 에스파냐(스페인)도 경쟁적으로 1492년 콜럼버스의 항해로 서쪽 항로에 뛰어들었습니다. 이와 같이 신대륙이 거대한 부의 원천으로 드러나자 네..
배추“무, 배추 캐어 들여 김장을 하오리다. 앞 냇물에 정히 씻어, 함담(鹹淡)을 맞게 하소. 고추, 마늘, 생강, 파에 젓국지 장아찌라. 독 곁에 중두리요, 바탱이 항아리요. 양지에 가가(假家) 짓고, 짚에 싸 깊이 묻고……”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의 둘째 아들 정학유(丁學游, 1786~1855)가 1816년경에 지은 것으로 알려진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 10월령(음력)의 한 대목입니다. 정학유는 아버지 정약용이 1801년 신유박해에 연루되어 전라도 강진으로 유배된 뒤, 고향 마재(지금의 남양주 능내)와 강진을 오가며 아버지를 보살폈습니다. 어려운 처지에서도 아버지를 깊이 공경하며 학문을 닦았고, 아버지의 방대한 저술 활동 곁에서 실학적 소양을 쌓았습니다. 정약용이 아들들에..
다래나무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 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다. 얄리 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 학창 시절 국어 교과서에서 만났던, 작자와 연대를 알 수 없는 고려가요 「청산별곡(靑山別曲)」의 첫머리입니다. 현대어로 풀면 '살겠노라, 살겠노라. 청산(이상향)에 살겠노라. 머루랑 다래랑(자연 속의 소박하고 토속적인 먹거리) 먹고 청산에 살겠노라.' 정도가 됩니다. 후렴구 '얄리 얄리 얄랑셩~'은 특별한 뜻이 없는 여음(餘音)으로, 노래에 리듬감을 더해 줍니다. 악기 소리를 흉내 낸 것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고려가요(高麗歌謠)는 주로 평민들이 부르던 서정가요로, 고려속요(高麗俗謠)라고도 합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 오다가 조선 시대 한글 창제 이후 『악장가사(樂章歌詞)』, 『..
보리수나무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어떤 단어를 들었을 때 특정한 장소, 사건, 경험, 지식, 생각이 의식적인 판단보다 먼저 떠오르는 일이 있습니다. 이를 ‘감정습관’ 이라고 합니다. 저에게 ‘보리수’라는 말은 언제나 석가모니(고타마 싯다르타)를 가장 먼저 떠올리게 합니다. 카필라 왕국의 왕자였던 그가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고통을 풀 길을 찾아 출가하여,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는 인류사적 사건이 생각납니다. 석가모니가 그 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었기에, 불교(佛敎)에서는 보리수를 성스럽게 여기고 깨달음(菩提)의 상징으로 삼았습니다. 초기 불교에는 불상(佛像)이 없어서, 부처를 대신하는 상징으로 보리수를 새기기도 했습니다. 크고 넓은 그늘로 중생(衆生)을 품는 모습은 자비를, 오래 사..
무(무우) 고향 성묘 길에 불현 듯 나타난 넓은 무 밭, 가을햇살 아래 땅이 갈라질 정도로 굵게 자란 무를 보면서 먼저 ‘꽉 찼다’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푸른 무청이 부채처럼 위로 솟구쳐 있고, 하얀 몸통이 매끈하고 팽팽하게 부풀어, 감싸면 한 아름이 될 것 같은 묵직한 양감(量感)을 느꼈습니다. 껍질에는 윤기가 돌고 위에서 흘러내리는 듯 연두 빛이 싱그러웠습니다. 밭에 뛰어들어 뽑아 올리면 “쑥”하고 올라오는 손맛이 있을 것 같고, 칼을 대면 사각 소리와 함께 달고 시원한 물기가 배어나올 것 같았습니다. ‘무’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생뚱맞은 전개가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우리 사회에서 “엿 먹어라!”라는 말은 대단히 심한 모욕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런데, 우리의 자랑스러운 전통 식품인 ‘엿’을 먹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