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래나무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 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다. 얄리 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 학창 시절 국어 교과서에서 만났던, 작자와 연대를 알 수 없는 고려가요 「청산별곡(靑山別曲)」의 첫머리입니다. 현대어로 풀면 '살겠노라, 살겠노라. 청산(이상향)에 살겠노라. 머루랑 다래랑(자연 속의 소박하고 토속적인 먹거리) 먹고 청산에 살겠노라.' 정도가 됩니다. 후렴구 '얄리 얄리 얄랑셩~'은 특별한 뜻이 없는 여음(餘音)으로, 노래에 리듬감을 더해 줍니다. 악기 소리를 흉내 낸 것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고려가요(高麗歌謠)는 주로 평민들이 부르던 서정가요로, 고려속요(高麗俗謠)라고도 합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 오다가 조선 시대 한글 창제 이후 『악장가사(樂章歌詞)』, 『..
보리수나무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어떤 단어를 들었을 때 특정한 장소, 사건, 경험, 지식, 생각이 의식적인 판단보다 먼저 떠오르는 일이 있습니다. 이를 ‘감정습관’ 이라고 합니다. 저에게 ‘보리수’라는 말은 언제나 석가모니(고타마 싯다르타)를 가장 먼저 떠올리게 합니다. 카필라 왕국의 왕자였던 그가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고통을 풀 길을 찾아 출가하여,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는 인류사적 사건이 생각납니다. 석가모니가 그 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었기에, 불교(佛敎)에서는 보리수를 성스럽게 여기고 깨달음(菩提)의 상징으로 삼았습니다. 초기 불교에는 불상(佛像)이 없어서, 부처를 대신하는 상징으로 보리수를 새기기도 했습니다. 크고 넓은 그늘로 중생(衆生)을 품는 모습은 자비를, 오래 사..
무(무우) 고향 성묘 길에 불현 듯 나타난 넓은 무 밭, 가을햇살 아래 땅이 갈라질 정도로 굵게 자란 무를 보면서 먼저 ‘꽉 찼다’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푸른 무청이 부채처럼 위로 솟구쳐 있고, 하얀 몸통이 매끈하고 팽팽하게 부풀어, 감싸면 한 아름이 될 것 같은 묵직한 양감(量感)을 느꼈습니다. 껍질에는 윤기가 돌고 위에서 흘러내리는 듯 연두 빛이 싱그러웠습니다. 밭에 뛰어들어 뽑아 올리면 “쑥”하고 올라오는 손맛이 있을 것 같고, 칼을 대면 사각 소리와 함께 달고 시원한 물기가 배어나올 것 같았습니다. ‘무’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생뚱맞은 전개가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우리 사회에서 “엿 먹어라!”라는 말은 대단히 심한 모욕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런데, 우리의 자랑스러운 전통 식품인 ‘엿’을 먹는..
마가목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초 고령사회에 진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노인은 자식을 키우고 공부시키고 결혼까지 시키느라 정작 자신의 건강을 돌볼 겨를이 없었고, 경제적인 노후 준비를 할 여유도 없이 늙었습니다. “지금 먹고살기도 빠듯한데 병까지 들면 큰일이다.” “자식들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짐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런 생존에 대한 근본적인 불안이 건강에 대한 집착, 건강 노이로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유난스러움을 넘어, 우리나라 특유의 고도화된 경쟁사회와 맞물린 ‘사회문화적 현상’이라고 봅니다. 여기에 편승이라도 하듯, 황금 시간대에 TV 각 채널마다 의사와 전문가들이 나와 흔한 질환의 위험성을 강조하고, PPL로 건강 관련 식품을 광고합니다. 그러면 바로 옆 홈쇼..
국화(菊花) 제가 우여곡절 끝에 일반 회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1980년대 중반은 일본 경제가 거침없이 부풀어 오르던 시절이었습니다. 전후 슈퍼파워(super power)로 불리던 미국마저 경제적으로 일본에 추월당하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였습니다. 당시 회사와 경제계에는 ‘일본을 알자, 일본을 배우자’라는 분위기가 강했고, 서점가에는 일본 관련 경영서와 자기계발서가 넘쳐 났습니다. 저도 전자회사의 수입구매 담당이라 거의 모든 업무가 일본과 얽혀 있었습니다. 일본을 알아보자고 처음 산 책이 미국의 베네딕트 여사가 쓴 『국화와 칼』이었습니다. 미국인이 본 일본 문화론이니 일본인이 쓴 자기 문화론보다 객관적일 것 같았고, 또 ‘국화(菊花)’와 ‘칼’이라는, 이미지로는 양립할 수 없는 제목 자체가 호기심을 부..
갓(菜) 이미, 삼십여 년 전 이야기입니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라고 하던 회사에서 전자 계열사의 수입 구매 업무를 맡고 있었습니다. 업무 성격상 도시바, 히타치, 소니, 마쓰시타, 샤프, 무라타 등 전자 왕국 일본의 세계적인 기업을 방문하는 출장이 잦았습니다. 그 무렵 회사는 휴대폰용 ‘리튬이온 배터리(LIB) 팩’ 사업을 추진하려고 보호회로를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이 보호회로의 핵심 기술을 가진 일본 파트너사의 대표는 전남 여수가 고향인 재일 교포 2세였습니다. ‘기술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했기에, 출장길에 어떤 선물을 들고 가야 그분께 감동을 드릴 수 있을까 궁리하다가 고향 여수를 떠올렸습니다. 그래서 ‘여수 돌산 갓김치’ 한 통을 특별히 주문해 가져갔습니다. 플라스틱 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