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류(石榴)나무 밤이 지나고 햇살이 부실 때, 빨간 알알이 석류는 붉는데, 차가운 별 아래 웃음이 지면서, 메마른 가지에 석류 한 송이 가을은 외로운 석류의 계절 가수 문주란(1949~ )씨가 부른 노래 「석류의 계절」의 일부입니다. 노래의 정서처럼 깊어 가는 이 가을, 남쪽 지방에서는 잘 익은 석류를 따는 계절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석류는 과육 안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알갱이를 품고 있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다산(多産)과 풍요(豊饒)의 상징이 되어 왔습니다. 우리의 전통 혼례복인 원삼이나 활옷에도 석류 문양·포도 문양·동자 문양이 즐겨 쓰였습니다. 석류나 포도처럼 자손을 많이 낳고, 동자처럼 아들을 많이 낳으라는 기복적 의미가 담긴 것입니다. '萬綠叢中紅一點..
호두나무 “이 날 밤, 소년은 몰래 덕쇠 할아버지네 호두 밭으로 갔다. 낮에 봐 두었던 나무로 올라갔다. 그리고 봐 두었던 가지를 향해 작대기를 내리쳤다. 호두송이가 떨어지는 소리가 별나게 크게 들렸다. 가슴이 선뜩했다. 돌아오는 길에는 열이틀 달이 지우는 그늘만 골라 다녔다. 그늘의 고마움을 처음 느꼈다. 불룩한 주머니를 어루만졌다. 호두송이를 맨손으로 깠다가는 옴이 오르기 쉽다는 말 같은 건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저 근동에서 제일가는 이 덕쇠 할아버지네 호두를 어서 소녀에게 맛보여야 한다는 생각만이 앞섰다.” 사춘기 소년과 소녀의 순수하면서도 안타까운 첫사랑을 서정적으로 그린, 소설가 황순원(黃順元;1915~2000)이 1953년 5월 발표한 『소나기』의 일부입니다. 황순원의 『소나기』는 한국 단편소..
녹나무 1592년에 발발하여 7년간 한반도에서 벌어진 ‘임진왜란’은 동아시아 세력 판도에 큰 변화를 가져온, 세계사적으로도 16세기 최대의 국제전(國際戰)으로 기록된 전쟁이 되었습니다. 왜군은 21만 명의 대군으로 침공해서 한반도에 괴멸적인 피해를 입혔고, 명나라는 “도와 달라” 가 아니고 “살려 달라.” 는 조선의 요청에 최대주둔 시 10만 명 정도의 원군(援軍)을 파병했는데, 그들도 우리를 “살려 준다”며 또 한 번 알뜰하게 수탈했습니다. 명나라의 원군 중에도 중국인 외에, 모잠비크 출신의 흑인노예들이 명나라로 팔려갔다가 명군 소속으로 조선에 파병된 병사들이 있었습니다. 물속에서 왜군을 공격하는 특기로 ‘해귀(海鬼)’라고 했는데, 선조실록에도 피부색이 검고, 곱슬머리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달..
오미자(五味子) 제가 깊이 공부하거나 다룰 수 있는 분야는 아니기에 심도 있는 설명은 어렵습니다만, 우리문화에서 숫자 삼(三)과 오(五)는 단순한 수치 이상의 신성함과 완전함을 상징한다고 봅니다. 우리 문화에서 먼저 삼(三)이 들어간 어휘를 보면, 만세의 삼창(三唱), 삼신할매의 삼신(三神), 삼강오륜의 삼강(三綱), 천지인의 삼재(三才), 해달별의 삼광(三光), 군자의 즐거움인 삼락(三樂), 벗을 뜻하는 삼우(三友), 삼보 일배의 삼보(三步) 등 삼(三)을 기본으로 하는 단어가 많습니다. 또, 오(五)가 들어간 어휘로는 목화토금수의 오행(五行), 동서남북중의 오방(五方), 청백황적흑의 오색(五色), 궁상각치우의 오음(五音), 인의예지신의 오상(五常), 공후백자남작(爵)의 오의(五儀), 산고감신함의 ..
토란(土卵) 근래에 소울 푸드(Soul Food)라는 말이 유행했던 적이 있습니다. '영혼을 달래주는 음식'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데, 유래는 미국 남부의 노예들에게서 태어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그들 조상들의 고향을 생각하며 만들어 먹은 음식을 말하는 것으로, 다른 말로 하면, '추억이 담긴 음식' 또는 '추억이 떠오르게 하는 음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소울 푸드는 단순히 '영혼을 달래주는 음식'이라는 감상적인 뜻을 넘어, 고난과 역경 속에서 생존하고 공동체를 지켜낸 미국 흑인들의 정체성과 삶의 서사가 담겨 있는 음식을 말하는 것으로 생각되어집니다. 어느 잡지에서 본 내용인데, 요즘 정년퇴직하는 분들이 요리강습을 많이 받고 있다고 합니다. 대략 이 연령대가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무엇이 떨어..
향나무 철없던 시절 시골에서 자란 사람들은 공감하시리라 생각됩니다만, 저는 제삿날이 기다려지고 또 좋았습니다. 없는 살림에 제사 음식을 준비하는 부모님의 걱정이 무척 컷으리라는 것은 철들고서야 알았지만, 그래도 기다리던 제삿날만은 떡을 먹을 수 있었고, 쌀밥을 먹을 수 있었고, 과일 한 조각, 고등어 한 토막이라도 먹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가 제삿날이면 아침부터 제사 음식을 준비하면서 “우리 조상은 아마 굶어 죽지는 않으시고, 다 얼어 죽으신 모양이다.” 라고 푸념했듯이, 우리 집에서 지내는 기제사(忌祭祀) 네 번은 엄청 추운 음력 동짓달과 섣달에 있었습니다. 1960~70년대 그 시절이 그랬고, 지역이 안동(安東)이라 더 그랬는데, 제사는 보통 사대봉사(四代奉祀)로 고조부모님까지 모시고, 오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