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피나무(산초나무) 『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이란 책의 저자인 일본 시즈오카대학의 이나가키 히데히로 교수는 "평범한 식물들이 인류 역사의 큰 흐름을 만들고 바꿀 수 있었던 까닭은, 후추처럼 특정 시대마다 특정 식물에 인간의 들끓는 욕망이 모이고 강하게 투영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유럽을 출장이나 여행으로 다녀보신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지금도 유럽의 식탁에는 푹 삶은 고기와 소시지류가 자주 오르는데, 누린내가 강해서 후추나 다른 소스 없이는 먹기 힘들 정도입니다. 유럽은 이미 고대 로마 시절부터 후추를 비롯한 향신료를 인도나 동남아에서 말과 낙타에 실어 육로로 수입해 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유럽의 관문에 자리한 이집트 상인이나 이탈리아 베네치아 상인들이 먼저 사들여 매점매석을 하면서, 자신들이..
여주 ‘良藥苦口忠言逆耳(양약고구충언역이)’ 중국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이 구절은 “좋은 약은 입에 쓰고, 충성된 말은 귀에 거슬린다.” 는 뜻으로, 예나 지금이나 천하의 충신(忠臣)과 책사(策士)들이 즐겨 인용하는 말입니다. 『사기』는 중국 전한(前漢)시대 사관(史官) 사마천(司馬遷)이 집필한 역사서로, 전설 속 황제(黃帝)로부터 한무제(漢武帝)에 이르기까지 약 3,000년의 역사를 기록한 동양 역사학의 모태입니다. 시간 순서대로 기록한 편년체가 아니라 인물과 주제 중심으로 역사를 분류하는 기전체로, 총 130권 52만 6,500자에 이르는 방대한 저작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보수 논객 중 최고라고 생각되는 전원책 (1955~ )변호사가 정치인들의 교양 수준과 철학적 무지를 비판할 때 쓰는 표현..
잣나무 “왜 남쪽의 잣나무들은 열매인 잣을 열심히 만들지 않는 것일까요? 한마디로 너무 편해서입니다. 극복해야 할 추위와 생존을 위협하는 요인이 거의 없고, 따뜻하고 순한 날씨 등 주변 조건이 너무 좋다 보니 어려움을 견디며 종족을 보전하려는 본능이 사라진 것이죠.” 『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라는 책에서 이유미(1962~ ) 전(前) 광릉수목원(국립수목원)장이 한 말입니다. “콩과 들깨 등의 섶(줄기와 잎)이 너무 무성하면 정작 콩과 들깨가 많이 열리지 않고, 고구마·감자·땅콩 등도 필요 이상으로 섶이 많아지고 커지면 정작 땅속의 알맹이가 크거나 많이 열리지 못한다.” 농사로 평생을 살아오신 아버지께서 그때그때 이런 상황을 마주하시면 하시던 말씀입니다. 예를 들어 고구마를 재배할 때 줄기와 잎이 과도하..
수수 중국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모옌(莫言, 1955~ )의 소설 『홍까오량가족(紅高粱家族)』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굳이 한국말로 옮기면 『붉은 수수밭 가족』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에 맞선 중국 민초들의 강인한 생명력과, 항일투쟁으로 이어지는 민중사적 저항을 담고 있는 소설입니다. 이 소설은 이후 「붉은 수수밭」이라는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더욱 널리 알려졌습니다. 장예모(장이머우, 1950~ ) 감독을 세계적인 반열에 올려놓은 작품이자, 주연 배우 공리의 데뷔작으로도 유명합니다. 저도 비디오테이프로 한 번 본 적이 있습니다. 중국에서 ‘붉은 수수(紅高粱)’는 중국 민중(中國民衆)을 상징하는 함의(含意)를 지니고 있습니다. 영화 역시 일본군에 맞서 싸우는 중국 민중들의 저항정신을 ..
더덕올해도 가을이 기필코 올 것은 알았지만……, 처서(處暑)를 지나 이렇게 가을은 또 오고야 말았습니다. 고랭지 배추를 무르게 할 정도의 여름 더위와 남쪽 지방의 늦장마 홍수 피해가 있었지만, 계절만은 때를 맞추어 어김없이 순행하는 것 같습니다. 처서란 절기로 '더위가 그친다'는 뜻이니, 옛사람들이 하늘의 이치를 읽어 이름 지은 것이 얼마나 정직한지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됩니다. 젊었을 때는 여름 무더위에 지친 몸에 서늘한 가을바람이 기다려졌고, 8월에서 9월로 넘어가는 이 시기가 되면 마음이 설렜습니다.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코스모스 꽃길을 따라 새 학기 학교에 가는 것도 가을을 기다리는 큰 이유였습니다. 이제는 가을을 기다리는 마음이 예전 같지 않습니다. 아마 나이가 들면서부터일 텐데, 언제부터인지 ..
석류(石榴)나무 밤이 지나고 햇살이 부실 때, 빨간 알알이 석류는 붉는데, 차가운 별 아래 웃음이 지면서, 메마른 가지에 석류 한 송이 가을은 외로운 석류의 계절 가수 문주란(1949~ )씨가 부른 노래 「석류의 계절」의 일부입니다. 노래의 정서처럼 깊어 가는 이 가을, 남쪽 지방에서는 잘 익은 석류를 따는 계절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석류는 과육 안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알갱이를 품고 있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다산(多産)과 풍요(豊饒)의 상징이 되어 왔습니다. 우리의 전통 혼례복인 원삼이나 활옷에도 석류 문양·포도 문양·동자 문양이 즐겨 쓰였습니다. 석류나 포도처럼 자손을 많이 낳고, 동자처럼 아들을 많이 낳으라는 기복적 의미가 담긴 것입니다. '萬綠叢中紅一點(..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