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헛개나무

저는 술을 잘 마시지 못합니다. 아예 마시지 못합니다.
평생 술을 좋아하셨던 장인어른은 "자네는 세상 사는 재미 하나는 잊어버리고 산다."고 말씀하시곤 했는데, 술을 좋아했다면 "또 하나의 세상 사는 재미"는 어떤 것일까, 지금 와서는 불가능하겠지만 많이 궁금합니다.
체질적으로 술을 마시면 몸이 고통스러운데, 주량과 관계없이 강압적인 권주(勸酒)가 지배하는 군대의 회식 자리나, 군사문화가 조직문화로 굳어진 젊은 시절 직장의 회식 자리도 고역이었습니다. 요즘은 종교적인 이유로 술을 거부할 무기가 하나 더 생겼습니다.
젊은 직장 시절 "술도 실력이다.", "술이 친화력이다."라는 말은, 술을 체질적으로 못하는 저에게 더욱 위협적으로 들렸습니다. 술을 마셔 보려고 얼마 동안 노력도 해 보았지만, 결론은 체질적으로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술에 강하고 약한 사람의 차이는, 몸이 '아세트알데하이드 탈수소효소(ALDH)'에 의해 알코올을 초산의 형태로 빨리 바꾸어 주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 있는데, 부모로부터 유전된 활성형 ALDH를 갖고 있는 사람은 술이 센 사람이고, 술을 못 마시는 사람은 결손형 ALDH를 가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술(알코올)은 기본적으로 포도당을 누룩이라고 하는 효모가 먹고 배설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집니다. 이 포도당은 포도와 같은 과일에도 많고, 곡물에도 많이 있습니다. 아마 인류 최초의 술은 포도에서 자연적으로 와인이 만들어진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효모에 의한 발효로 술이 만들어지면 도수가 15도 이상으로 올라가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도수를 높이는 방법으로 '증류(蒸溜)'를 활용합니다. 즉 40도가 넘는 안동소주 등 소주는 청주를 증류하고, 와인을 증류하면 코냑이, 맥주를 증류하면 위스키가 됩니다.

세계 각국의 대표적인 술을 보면, 우리나라는 막걸리와 소주, 일본은 사케(청주), 중국은 고량주(백주), 프랑스는 와인, 독일은 맥주, 영국은 진(Gin), 러시아는 보드카, 멕시코는 데킬라 등이 있습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愛酒家)은 삼불(三不)이 있다고 하는데, 주종불문(酒種不問; 술 종류 가리지 않고), 두주불사(斗酒不辭; 말 술 사양하지 않고), 안주불문(按酒不問; 안주 따지지 않는다.)이라고 합니다. 이런 사람이 대인(大人)이고 호걸(豪傑)이라는 사회 통념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도 과음(過飮)을 하고 나면, 다음 날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속이 쓰리고, 머리가 아프고, 집중력이 떨어지는, 이른바 숙취(宿醉)에 시달리게 됩니다.
이 숙취는 간에서 완전히 분해되지 않은 독성을 지닌 아세트알데하이드가 몸에 남아 있어 생기는 현상으로, 예부터 이를 해소하기 위해 인류는 여러 가지 방법을 찾아왔습니다.
역시 한국은 '해장국'으로 종류만 수십 가지나 된다고 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콩나물국인데, 콩나물의 아스파라긴산 성분이 아세트알데하이드를 몸 밖으로 배출시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나라에 따라서는 중국과 일본에서는 차(茶)를 마시고, 미국에서는 꿀물과 사이다(스프라이트)를 마시기도 하며, 각국에서 바나나와 프레첼, 커피와 아스피린, 양배추와 오이즙 등이 숙취 해소에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특이하게 독일은 청어를 먹는다고 합니다.
요즘은 편의점에 가면 여러 가지 이름의 숙취 해소 음료가 갖춰져 있습니다. 그 음료들 중에 가장 많은 것이 광고로 유명한 '헛개나무' 관련 음료입니다.
'헛개나무'라는 이름은 '술을 마시고 이 나무를 달여 먹으면 술이 헛것이 된다.'고 해서 '헛개'라 했다고 합니다. 예부터 숙취 해소에 요긴하게 쓰인 나무였기 때문에 다른 이름도 많아서, 호깨나무, 호로깨나무, 벌나무, 지구자(枳椇子), 괴조(拐棗), 목밀(木蜜) 등으로 불립니다.
헛개나무는 갈매나무과의 활엽 낙엽수인데, 산과 계곡에서 자라는 큰키나무로, 다 자라면 높이 15m에 둘레가 한 아름 정도이며, 추위에 강한 나무입니다. 분포 지역은 중국 중북부, 한반도와 일본에 주로 퍼져 있습니다.
헛개나무는 초여름에 꿀이 많은 꽃을 피우며, 나무에서 단맛이 나므로 산양에게는 아주 좋은 먹이가 된다고 합니다. 목재는 연한 갈색이고 아름다운 무늬를 가지고 있으며, 단단하여 건축재나 가구재로 쓰입니다.
헛개나무의 모양새는 다른 나무와 다름없이 평범하지만, 열매의 생김새가 특이합니다. 열매자루가 부풀어 서로 연결되어 괴상한 모습을 이룹니다. 즉, 열매가 익을 때 열매자루는 손가락 굵기로 굵어지고 울퉁불퉁한 갈색의 꽈배기 모양으로 서로 뒤엉켜 있습니다.
닭발처럼 생겼다고 '지구자(枳椇子)'라 불리는 헛개나무 열매는, 비록 모양은 징그럽게 생겼지만 은은하고 달콤한 향기가 있고, 간(肝) 독성 해소와 숙취 해소에 도움이 되는 물질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의 『동의보감』에 헛개나무에 대한 기술(記述)이 당연히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만, 찾아보면 관련 기술이 없습니다.


중국 명나라 이시진이 쓴 『본초강목(本草綱目)』에는 '헛개나무는 가을이 되면 열매 대궁이 비대해지면서 산호 모양이 되는데, 이것을 약으로 쓰며 맛이 달아서 사람이 먹는다. 열매는 숙취를 덜게 하고 간을 보호해주는 약효가 있다. 나무 조각을 술독에 넣으면 술이 물이 된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 『본초강목』의 영향으로 우리나라에서는 헛개나무의 효능에 대해 과장된 이야기가 퍼졌습니다. '헛개나무를 기둥으로 쓰면 그 집에서는 술을 빚을 수 없다.', '어떤 사람이 헛개나무로 집을 수리하다가 나무토막을 실수로 술독에 빠뜨렸더니 술이 곧 물이 되었다.', '집에 헛개나무를 심기만 해도 술이 익지 않는다.'는 등의 과장된 속설이 민간에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헛개나무는 어디까지나 건강식품으로, 약리 작용이 있는 간 치료제 성분이 있고 인체에 안전하며 독성이 없다는 점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어야 비로소 '약(藥)'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방송 광고 등으로 '헛개나무'가 유명세를 타면서 우리 산에서 헛개나무가 사라져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열매만 따 가는 것이 아니라 나무를 통째로 베어가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대부분의 산에서 헛개나무를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고, 겨우 울릉도 일부 지역에 자연산 헛개나무가 남아 있다고 합니다.
이번 글은 믿는 사람으로서 불경스럽게도 '술' 이야기로 시작을 했는데, 세상 사람들의 힘들고 지친 삶에 술이 위안과 희망을 주기도 한다고 합니다.
술 한 잔의 의미를 노래한 정호승(1950~ ) 시인의 시 「인생은 나에게 술 한 잔 사주지 않았다」로 마무리를 하려고 합니다.
인생은 나에게 술 한 잔 사주지 않았다.
겨울밤 막다른 골목 끝 포장마차에서
빈 호주머니 털털 털어 나는 몇 번이나
술을 사 주었으나
인생은 나를 위하여
단 한 번도 술 한 잔 사주지 않았다.
눈이 내리는 그런 날에도
돌 연꽃 소리 없이 피었다 지는 날에도
인생은 나에게 술 한 잔 사주지 않았다.
(2026.06 - 국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