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장미(薔薇)

6월은 확실히 장미의 계절입니다. 여기저기 울타리마다 넝쿨장미가 만개하고, 각 지역에서는 장미축제가 한창입니다.
장미는 사랑과 아름다움의 상징이자 향기로도 이름난, 세계적으로 가장 사랑받는 꽃입니다. 한국갤럽이 19세 이상 성인 남녀 1,500명을 대상으로 '우리 국민이 가장 좋아하는 꽃'을 조사한 결과, 장미가 41.4%로 압도적 1위를 차지했습니다. 사랑 고백은 물론 생일·졸업 등 각종 이벤트의 꽃다발에 가장 널리 쓰이는 꽃인 만큼, 이 결과는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사랑하는 연인에게 장미를 선물하는 것은 단순한 꽃 선물 그 이상입니다. 장미 향기에는 여성 호르몬을 자극하는 성분이 있어, 향기를 맡으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합니다. 장미의 향기 성분은 뇌하수체를 자극하여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Estrogen)의 분비를 활성화하고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클레오파트라는 장미를 특히 좋아하여 장미 향수와 장미 목욕 등 일상 속에서 장미를 즐겼습니다. 그녀를 사랑했던 안토니우스는 환심을 사기 위해 연회장 마룻바닥에 장미를 1m 높이로 깔았다고 하며, 클레오파트라는 임종 시 자신의 무덤에 장미를 뿌려 달라고 유언했다고 합니다.
농수산물유통공사 자료에 따르면, 세계 장미 산업 규모는 연간 68억 달러(약 10조 원)로 절화(折花) 품목 중 최대 규모이며, 주요 수출국으로는 네덜란드·콜롬비아·에콰도르 등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1인당 꽃 소비액은 연간 20달러(약 3만 원)로 세계 23위 수준인데, 경제 규모에 비하면 아직 꽃 소비에 인색한 편입니다. 꽃 소비의 80%가 결혼·생일·졸업·장례 등 특정 이벤트에 집중되어 있는 것도 이런 현실을 반영합니다.
장미는 18세기 이전의 것을 고대장미(Old Rose), 19세기 이후의 것을 현대장미(Modern Rose)로 구분합니다. 고대장미는 오늘날 우리가 아는 화려한 장미가 아니라, 찔레꽃·돌가시나무·해당화·붉은인가목 등 한국과 중국에 자생하는 야생 장미속(屬) 원종이 유럽으로 건너가 우성 잡종으로 나타난 것으로, 약 200여 종에 이릅니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화려한 장미들은 이 200여 종을 원종으로 하여 인위적으로 육성한 원예품종으로, 지금까지 25,000여 종이 개발되었으며, 현재도 매년 200여 종이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장미의 흔적을 찾아보면, 『삼국사기』에 실린 설총의 「화왕계(花王戒)」에 아첨하는 미인으로 장미가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에 이미 장미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고려사』의 「한림별곡」 가사에도 황색장미·자색장미라는 표현이 나오며, 『조선왕조실록』에도 장미 이야기가 여러 차례 등장합니다. 세조 때 강희안(1417~1464)이 쓴 원예서 『양화소록(養花小錄)』에서는 '사계화(四季花)'라는 이름으로 장미 재배법을 소개하면서, 화목(花木) 9품계 중 장미를 5품계에 두고 있습니다.
우리의 현대 장미는 20세기 초 일본을 통해 유입되었고, 해방 이후 더 많은 품종이 도입되었으며, 오늘날에는 국내에서도 다양한 품종이 개발되고 있습니다.
장미(薔薇)라는 한자를 보면, 명나라 때 편찬된 『본초강목(本草綱目)』에서 '담에 기대어 자라는 식물'이라는 뜻의 장미(牆蘼)가 어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장미의 학명은 '로자 하이브리다(Rosa hybrida)'인데, '하이브리다'는 '잡종'을 뜻하며, 라틴어 '로자(Rosa)'는 영어의 '로즈(Rose)'와 같은 말입니다. 미의 여신 비너스가 그리스의 로즈(Rhodes) 섬에 뿌린 씨가 꽃이 되어 'Rose'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일본어로 장미를 '바라(ばら)'라고 하는데 이는 가시나무를 뜻하고, 중국어로는 '창웨이(薔薇)'로 읽습니다. 한편 중국에서 해당화를 가리키는 '메이구이(玫瑰)'를 장미와 혼용하기도 합니다.
장미는 예로부터 서양인들이 특별히 사랑해 온 꽃인 만큼, 신화와 설화를 유난히 많이 품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으로, 올림포스 12신 중 미와 사랑의 여신 비너스(아프로디테)는 아도니스를 사랑했는데, 이를 질투한 남편 헤파이스토스가 멧돼지로 변해 사냥 중인 아도니스를 죽입니다. 아도니스가 흘린 피에서는 아네모네가 피어났고, 비너스의 눈물에서는 장미가 피어났다고 전해집니다.
장미는 아름다움의 상징이지만, 줄기의 가시로 인해 다칠 수 있다는 속성 때문에 '팜므파탈(femme fatale, 치명적인 여성)', '질투', '유혹' 등 다소 부정적인 의미도 함께 품고 있습니다. 장미의 가시는 줄기 표피세포가 변형되어 날카롭게 굳은 것입니다. 또 다른 그리스 신화에서는, 코린토스(고린도)의 절세미인 '로오단테'가 뭇 남성들의 구애를 견디다 못해 장미로 변했고, 함부로 범접하지 못하도록 가시가 생겨났다고 합니다.

이처럼 장미는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꽃잎과 가장 날카로운 가시를 한 몸에 지니고 있습니다. 철학적 시선으로 보면 이를 '모순의 공존'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상반된 가치가 하나의 몸에 깃든 장미는 사랑의 절정을 노래하는가 하면, 피할 수 없는 죽음과 허무를 표현하기도 합니다. 기쁨과 슬픔, 아름다움과 고통이 공존하는 인간의 삶 자체를 비추는 거울 같은 존재로 읽히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장미의 원산지는 서아시아로 알려져 있으며, 최초로 재배된 것은 기원전 2,000년경 바빌론 왕국(현재의 이라크)이었다고 합니다. 로마 시대에는 장미를 증류하여 얻은 향료가 귀족들의 생활필수품으로 애용되었고, 정원용 관상수로 본격적으로 개량·재배된 것은 16세기경 영국과 프랑스에서였습니다. 이후 수많은 화려한 품종이 개발되었고, 특히 영국 귀족들의 사랑을 받은 덕분에 장미는 잉글랜드의 국화(國花)가 되었습니다.

미국은 1986년 레이건 대통령이 장미를 공식 국화로 지정했습니다. 불가리아·이란·이라크·루마니아·룩셈부르크·모로코 등도 장미를 국화로 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인천시·울산시·경기도 고양시·경북 포항시·강원 삼척시 등이 장미를 시화(市花)로 지정하고 있습니다.
국내 주요 장미축제로는 서울대공원 장미원 축제, 에버랜드 장미축제, 부천 백만 송이 장미축제, 중랑 서울장미축제, 곡성 세계장미축제, 삼척 장미축제, 임실 장미축제 등이 있으며, 축제 기간은 대체로 5월 하순에서 6월 초입니다.
장미는 10월경 열매가 익으면 이를 채취하여 장미유를 추출하고, 화장품 원료나 약재로 활용합니다. 장미유는 여성을 위한 향장(香粧) 소재 중 가장 높은 가치를 인정받으며, 소염·긴장 완화·신경 진정·소화 촉진·기침 감소·목통증 완화·집중력 향상 등의 효능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장미 품종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넝쿨장미나 떨기나무 형태로 자라는 정원용(庭園用), 꽃다발 제작과 수출에 쓰이는 절화용(折花用), 그리고 미니장미처럼 화분에 심는 분화용(盆花用)입니다.
그런데 장미에는 파란색이 없습니다. 오늘날 많은 육종가들이 파란 장미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여 '블루라이트', '블루리버', '블루보이' 같은 품종을 내놓았지만, 완전한 파란 장미는 아직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로마 신화에 따르면, 꽃의 여신 플로라(Flora)가 여러 꽃에 색을 부여할 때 파란색은 '죽음'을 의미한다 하여 파란 장미를 만들지 않았다고 합니다.
장미와 얽힌 역사적 이야기들도 흥미롭습니다. 네로 황제는 장미로 목을 장식하고 장미관(冠)을 썼으며, 마루에도 장미를 뿌려놓고 장미 향수를 섞은 수영장에서 물놀이를 즐겼다고 합니다.
영국의 장미전쟁(1455~1485)은, 왕위를 다투던 요크가(家)와 랭커스터가(家)가 각각 흰 장미와 붉은 장미를 문장(紋章)으로 내세워 30년 가까이 싸운 전쟁입니다. 결국 두 가문이 흰 장미와 붉은 장미를 합친 통합 문장을 만들면서 전쟁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장미를 깊이 사랑하여 많은 장미 시를 남긴 시인으로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 1875~1926)’ 가 있습니다. 릴케는 연인에게 줄 장미를 꺾다가 가시에 찔려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의 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장미 시가 새겨져 있습니다.
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
그리도 많은 눈꺼풀 아래에서
그 누구의 잠도 되지 못하는 기쁨이여.
겹겹이 닫힌 꽃잎(눈꺼풀) 속에서도 끊임없이 향기를 내뿜으며 세계를 향해 열려 있는 장미를, 릴케는 '순수한 모순'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2026. 06 - 국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