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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외

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단 것을 좋아한다는데, 의학적으로 근거가 있는 이야기인지는 모르지만, 저는 술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인지 과일은 종류를 가리지 않고 다 좋아합니다.
아내의 말을 빌리면, 지금까지 집에 과일이 떨어진 적이 없고, 가계지출 가운데 ‘과일구입비’가 가장 많이 나간다고 합니다. 가끔 아내와 마트에 나가보면 제가 보기에도 과일값이 가장 비싼 것 같았습니다.
회사 일로 일본에 출장을 가서도 이틀이 지나면, 호텔에 들어가기 전에 과일가게나 편의점에 들러 과일을 사 들어가곤 했는데, 1990년대 일본의 과일가게를 드나들면서 한국과 다르다고 느낀 점이 두 가지 있었습니다.
그 한 가지는, 지금은 우리도 수박을 반으로 잘라서 팔거나 네 조각으로 나누어 파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지만, 당시 우리나라는 수박을 통째로만 팔았던 데 비해, 일본에서는 수박을 네 조각으로 잘라 랩으로 싸서 파는 것이 흔했고, 젊은 여성들이 자연스럽게 한 조각씩 사 가는 것이었습니다. 또 한 가지는, 노란 ‘참외’가 과일가게 어디에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점원에게 참외를 설명하며 어디 있느냐고 물어도 참외 자체를 알지 못했고, 멜론이 달다며 멜론을 권할 뿐이었습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일본에는 참외 자체를 거의 재배하지 않았고, 대만이나 중국에서도 잘 재배하지 않아, 한국만이 여름 한철을 대표하는 과일로 키워온 셈이었습니다.
격세지감입니다만, 2026년 6월 17일 동아일보 기사에서 제 눈을 사로잡은 것은 “일본은 지금 ‘챠메(참외)’ 열풍… ‘코리안 멜론’ 역수출 대박”이라는 제목이었습니다.
드디어 좀처럼 바뀌지 않던 일본인들의 입맛을 우리 참외가 사로잡은 것입니다. 작년에 일본에 수출한 참외만 271톤, 16억 원어치였고, 올해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40%가량 늘었다고 합니다.
일본 사람들이 우리 참외에 열광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멜론 맛이 나면서도 과즙이 더 풍부하고 더 부드러우며, 씨와 껍질까지 먹을 수 있고, 크기와 가격도 멜론보다 부담이 적기 때문입니다. 특히 2023년 8월 일본 소비자청에 기능성 표시 식품으로 등록되면서, 참외에 풍부한 가바(GABA) 성분이 일시적인 정신적 스트레스 완화에 도움을 준다는 점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것도 한몫했습니다.
이런 기사가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은근히 걱정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일본 사람들이 우리 참외를 우리보다 더 좋아하게 되면, 앞서 인삼제품이나 송이버섯, 파프리카, 오징어 등에서 보았듯이 일본인이 좋아해서 싹쓸이로 수입해 가는 바람에 정작 우리가 생산하고도 우리는 잘 먹지 못하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입니다.
동아일보 기사 제목의 “역수출 대박”이라는 표현이 무슨 뜻인지 궁금했는데, 역사적으로 보면 한국 참외의 뿌리가 일본에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가장 많이 재배하는 노란 참외는, 1957년 일본 품종인 ‘은천참외’가 도입되어 오랫동안 인기를 끌었고, 이를 바탕으로 1984년 흥농종묘가 ‘금싸라기’를 개발하면서 비로소 우리 품종 중심의 참외 재배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후 당도와 저장성, 아삭한 식감을 거듭 개선하며 오늘날의 참외(코리안 멜론)를 완성한 것입니다.
참외 하면 떠오르는 계절은 여름입니다. 요즘은 한겨울에도 마트에서 참외를 만날 수 있어, 여름과일이라는 말도 옛말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 세대는 어릴 때 제철에만 과일을 먹을 수밖에 없었기에 어느 정도 과일이 나는 철을 알고 있습니다만, 요즘 아이들은 겨울과 봄철에 딸기를 더 많이 먹고 수박과 참외도 즐겨 먹다 보니, 이들의 제철이 여름이라고 하면 오히려 낯설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경영학에서 흔히 드는 예로 ‘수박 장수 논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수박을 일주일 먼저 출하하면 가격을 갑절로 받을 수 있다”는 것으로, 여름 과일을 제철보다, 또 다른 사람보다 일찍 출하하면 희소성 덕분에 성수기보다 비싸게 팔 수 있다는 재배농가의 전략이 결국 과일의 제철 자체를 앞당겨 놓은 셈입니다. 가락시장 물동량 자료에서 참외 물동량 최고치를 보면, 2010년에는 5월 말이었던 것이 10년 뒤인 2020년에는 5월 초로, 그사이 거의 한 달 가까이 앞당겨졌습니다.
참외를 두고 또 하나 헷갈리는 점은, 참외가 과일이 아니라 채소(菜蔬)로 분류된다는 사실입니다. ‘과일가게에서 파는 것은 과일이고, 채소가게에서 파는 것은 채소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만큼, 채소와 과일을 명확히 구분해서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농학(農學)에서 과일이란 ‘먹을 수 있는 열매를 얻기 위해 가꾸는 나무의 열매’를 가리킵니다. 즉 사과, 배, 복숭아처럼 과일이 나무(木本)에 달리는 다년생 열매라면, 참외, 수박, 토마토 같은 채소(과채류)는 밭에서 가꾸는 풀(草本)의 줄기에 달리는 한해살이 열매라고 구분하면 나름 정리가 될 것 같습니다.

참외는 박목 박과의 한해살이 덩굴식물로, 원산지는 인도, 이란, 터키, 중국 등으로 알려져 있는데, 주로 인도산 야생종에서 개량된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재배된 것으로 보며, 고려시대 유물인 ‘청자참외모양 병’에서도 참외 모양을 본뜬 도자기를 볼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중국과 일본에서도 참외를 재배했으나, 현재 이를 재배하는 곳은 거의 한국뿐입니다.
그런 까닭에 오늘날 우리가 흔히 보는 노란 참외는 대부분 한국에서 자체 개발한 품종이며, 참외의 영어명도 ‘Korean melon’ 또는 ‘Oriental melon’으로, 우리나라가 주로 재배하는 작물임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참외는 더운 지역이 원산지인 만큼 비닐하우스나 20℃ 이상인 노지에서 재배가 가능합니다. 제철 재배의 경우 4월에 하우스에서 파종하여 5월에 노지로 옮겨 심으면 덩굴이 여러 갈래로 뻗어 가는데, 덩굴손이 있어 다른 물체나 나무가 있으면 타고 올라가기도 합니다. 6~7월에는 암꽃과 수꽃으로 구별되는 노란색 꽃이 피며, 꽃이 핀 지 25~35일이면 참외가 노랗게 익으면서 달콤한 향이 납니다.
수박 재배에서도 흔히 볼 수 있듯, 참외 역시 연작 피해를 줄이고 병충해에 좀 더 강하게 키우기 위해 보통 호박 대목 위에 참외 모종을 접붙입니다. 말하자면 호박 뿌리 위에서 참외가 자라는 셈입니다.
참외의 맛은 느끼는 사람과 개체에 따라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제가 느끼기에는 멜론과 오이의 중간쯤 되는 맛입니다. 이름에서도 그 정체성이 드러나는데, 참외는 ‘진짜’를 뜻하는 순우리말 ‘참’과 ‘오이’의 준말인 ‘외’ 가 결합된 합성어입니다.
제가 초등학교 시절, 안동 우리 고향집에서도 참외 농사를 지은 적이 있었는데, 여름방학이면 원두막에서 지내던 좋은 추억이 남아 있습니다. 그 무렵 제 고향에서는 참외를 그냥 ‘외’라 하고, 오이는 밋밋하고 물맛 같다 하여 ‘물외’라 불렀는데, 지금도 남부지방과 영동지방 일부에서는 그렇게 부른다고 합니다.

참외 품종의 역사를 보면, 1984년 등장한 ‘금싸라기’ 품종이 이후 참외 품종의 패러다임을 바꾼 기념비적 품종이었습니다. 2000년대 이후로는 금싸라기보다 과육이 더 단단하고 아삭한 식감과 높은 당도, 우수한 저장성을 갖춘 오복참외, 스마트참외 등이 마트에서 주로 볼 수 있는 품종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천안 성환에서 주로 재배되는 ‘개구리참외’ 를 비롯해, 그간 우리 땅에서 재배되어 온 참외로는 강서참외, 감참외, 골참외, 줄참외, 수동참외 등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참외 하면 ‘성주참외’가 먼저 떠오릅니다. 전국 참외 생산량의 70% 이상을 성주가 차지하고 있는데, 2025년 한 해 성주에서 생산한 참외만 18만 톤이 넘고, 벌어들인 수입도 6천억 원을 웃돈다고 합니다. ‘지리적 표시제’ 10호로 등록된 ‘성주참외’ 답게, 경북 성주는 지리적으로 과채류가 자라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습니다. 낙동강 인근이라 습하고 기름진 땅이 많은 데다, 북쪽의 금오산과 서쪽의 가야산이 겨울철 찬바람과 눈보라를 막아주기 때문입니다.
『동의보감』과 『본초강목』에서는 참외를 ‘첨과(甛瓜)’라 부르는데, 성질이 차고 맛이 달며 독이 없다고 합니다. 진액을 만들어 갈증을 멎게 하고, 몸에 열이 나며 가슴이 답답한 증상을 없애주며, 소변을 잘 나오게 해 부종을 다스리는 약재로도 쓰였습니다.
참외는 수분이 90%를 차지하고 100g당 30㎉로 열량이 낮으면서도 포만감을 빨리 주어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며, 비타민C가 풍부해 피로 회복에도 좋습니다. 또한 칼륨 성분이 나트륨 배출을 도와 이뇨에 효과가 있고, 항산화 성분인 베타카로틴이 들어 있어 혈관 관리와 면역력 증강, 항암에도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참외를 자르면 자잘한 씨앗이 붙어 있는 중앙 부분을 ‘태좌’라 부릅니다. 씨앗 때문에 꺼리는 사람도 많지만, 이 부분이 가장 달고 임산부에게 필요한 엽산이 특히 풍부하니, 그냥 함께 먹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2026.06 - 국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