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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시꽃


통일신라의 최치원(崔致遠, 857~?)은 868년, 열두 살의 나이로 당시 최고의 선진국으로 알려진 당(唐)나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874년, 열여덟 살에 당나라 과거 시험인 빈공과(賓貢科)에 장원급제한 수재(秀才)였습니다.

당나라 조정에서 승승장구하던 최치원은 스물아홉 살에 뜻한 바 있어 고국 신라(新羅)로 돌아와 개혁을 펼쳐 보려 했습니다. 그러나 신라는 이미 기울어 가고 있었고, 신분제(골품제)의 벽과 세상의 시기(猜忌)와 질투에 끝내 좌절하고 맙니다.

최치원의 시(詩)「촉규화(蜀葵花)」 일부입니다.

   적막하고 거친 밭가에
   무성한 꽃이 부드러운 가지를 눌렀네.
   장맛비 그치자 꽃향기 날리고
   보리바람에 꽃 그림자 길게 드리우네.
   수레와 말 탄 자들이 그 누가 와서 보리
   벌 나비만 부질없이 기웃거리네.
   부끄럽구나, 이 천한 땅에 태어나
   사람들에게 버림받고도 참고 견뎌야 함이.

최치원은 당나라에서 돌아온 자신의 신세를 "거친 밭가에 피어 있는 접시꽃 같다" 고 했으니, 신라에 돌아와서 더 천한 대접을 받는다는 한탄이 절절히 배어 있습니다.

접시꽃의 한자 이름이 촉규화(蜀葵花)인데, '촉(蜀)'은 중국 삼국지의 촉나라 땅, 곧 지금의 사천성(四川省)을 가리키며, '규(葵)'는 아욱 규 자로, 당나라에서 온 아욱 꽃이라는 뜻입니다. 

 

접시꽃이란 한글 이름은, 이름을 처음 듣는 사람은 고개를 갸웃할지 모르겠지만, 막상 꽃을 마주하면 왜 접시그릇 이름이 들어갔는지 바로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접시꽃이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습니다. 다수의 『백과사전』에서는 곧게 뻗은 줄기를 따라 아래서부터 위로 피어오르는 꽃의 모양이 접시와 비슷하게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설명합니다. 반면 국립생물자원관 등에서는 씨앗이 들어 있는 열매의 둥근 모양이 접시를 닮아 접시꽃이라 했다고 설명합니다.

조선의 선비들도 접시꽃을 각별히 여겼다고 합니다. 접시꽃은 덩굴로 다른 나무나 풀을 타고 올라가지 않고, 향기로 행인을 유혹하지도 않습니다. 항상 그 자리에 우직하게 서서, 여름 내내 아래에서 위로 차례차례 꽃을 피웁니다. 아래쪽 꽃이 피고 나면 그 위에 새 꽃이 열리고, 또 그 위에 또 다른 꽃이 핍니다. 서두르지도 않고 게으르지도 않게 줄기 끝까지 제 몫을 다하는 이 성품이 군자(君子)의 처신을 닮았다 하여, 예로부터 선비의 뜰에 흔히 심었다고 합니다. 사화(士禍)니 사옥(士獄)이니 박해(迫害)니 하는 일이 있을 때마다, 출사(出仕)하지 않은 선비들의 담장안의 접시꽃은 더 높이 자랐다고 합니다.

접시꽃은 중동이 원산지라고도 하고, 중국 사천성을 중심으로 한 중원이 원산지라고도 하는데, 최치원의 시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미 삼국시대에 한반도에 들어온 꽃으로 보고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11세기부터 13세기까지 중세 유럽을 뒤흔든 ‘십자군전쟁’ 당시, 성지 예루살렘으로 향하던 가톨릭 기사단이 그 지역에서 자라던 접시꽃을 발견했습니다. 전쟁에서 부상당한 병사들의 상처를 치료하고 기침을 멎게 하는 데 접시꽃의 뿌리와 잎이 탁월한 효능이 있음을 알게 된 그들은 이 꽃을 유럽으로 가져갔으며, 성스러운 꽃으로 여겼습니다. 그리하여 영어 이름도 '홀리혹(Hollyhock)', 곧 '성스러운 아욱'이라는 뜻이 되었습니다.

접시꽃은 6월 중순 이후에 피기 시작하며, 여름을 가장 먼저 알리는 꽃 중에 하나입니다. 

옛날 고향 시골에서는 ‘접시꽃이 피기 시작할 때 장마가 시작되고, 접시꽃이 다 지면 장마가 끝난다.’ 고 했는데, 농경사회의 오랜 경험 속에서 접시꽃의 개화와 낙화 시기가 장마와 거의 맞아떨어진다는 것을 알고 그렇게 가늠했던 것 같습니다.

접시꽃은 크고 화려하지만 소박함을 잃지 않는 꽃 입니다. 부잣집 도자기 화분에 심겨진 접시꽃 보다는, 시골 초가집 담장 아래나 장독대 부근이 훨씬 잘 어울립니다. 장미보다는 맨드라미, 봉숭아, 채송화와 함께 피어 있어야 더 정이 가는 꽃입니다. 접시꽃의 키는 보통 2~3m로 크며, 줄기에 털이 나 있습니다. 우리나라 전역에 분포하는 역사가 아주 오래된 꽃입니다. 

꽃에 대한 남다른 감성을 지닌 박완서(1931~2011) 작가는 그 수필에서 담장 너머로 고개를 쏙 내민 접시꽃을 보며 친정어머니의 정성스러운 손길과 고향의 흙 내음을 떠올렸다고 합니다. 척박한 땅에서도 투정 부리지 않고 뿌리를 내리며, 화려한 정원이 아니어도 사람 사는 온기만 있다면 커다란 꽃을 피워내는 모습에서, 우리네 어머니들의 뒷모습이 그 고고한 줄기에 겹쳐 보인다고 했습니다.


꽃 모양이 무궁화, 부용꽃과 많이 닮았는데, 접시꽃·무궁화·부용꽃이 모두 같은 아욱과(科)에 속합니다. 꽃의 색은 원예종이 다양하지만 주로 흰색, 붉은색, 분홍색이 있으며, 꽃가루가 풍성하여 벌과 나비가 즐겨 찾는 꽃이기도 합니다.

접시꽃은 두해살이 초본(草本)으로, 여름이나 가을에 씨앗을 심으면 그해에는 잎만 자라다가 로제트(Rosette) 상태로 겨울을 납니다. 이듬해 봄에 무성하게 자라기 시작하여 줄기를 곧게 뻗고, 6~7월에 잎 사이에서 꽃을 피운 뒤 8~9월에 열매를 맺고 생을 마감합니다. 그 해 당해에 꽃을 보고 싶다면 1~2월에 실내에서 파종하여 육묘한 뒤 3~4월에 노지에 옮겨 심으면 그해 늦여름에서 가을 사이에 꽃을 볼 수 있는데, 다만 두해살이에 비해 풍성함이 덜합니다.

접시꽃은 한방에서는 꽃을 '촉규화(蜀葵花)', 뿌리를 '촉규근(蜀葵根)'이라 하며, 황촉화(黃燭花), 덕두화, 접중화, 단오금, 일일화 등의 다른 여러 이름으로도 불립니다.

『동의보감』에는 접시꽃을 일일화(一日花)라 하고, "꽃·잎·뿌리 모두를 약으로 쓴다. 맛이 짜고 성질은 차며 독이 없는데, 열을 내리고 장과 위를 이롭게 하며 심기부족(心氣不足)을 다스린다."고 되어 있습니다. 특히 부인병(대하, 자궁염, 자궁출혈, 난산, 임질 등)에 효과가 좋으며, 배뇨·배변에 효험이 있고, 여러 종창(腫脹)에도 좋은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도종환 시인(1954~ )이 1986년에 펴낸 두 번째 시집『접시꽃 당신』의 표제시(表題詩 일부입니다.

    마음 놓고 큰 약 한번 써보기를 주저하며
    남루한 살림의 한구석을 같이 꾸려오는 동안
    당신은 벌레 한 마리 함부로 죽일 줄 모르고
    악한 얼굴 한번 짓지 않으며 살려 했습니다.

    그러나 당신과 내가 함께 받아들여야 할
    남은 하루하루의 하늘은
    끝없이 밀려오는 가득한 먹장구름입니다.

    처음엔 접시꽃 같은 당신을 생각하며
    무너지는 담벼락을 껴안은 듯
    주체할 수 없는 신열로 떨려 왔습니다.

이 시는 도종환 시인의 아내 구수경씨가 위암으로 투병하다 1985년 여름에 32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내의 투병과 죽음, 그리고 먼저 떠난 아내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소박한 여름 꽃 ‘접시꽃’에 비유해, 애틋한 마음을 담은 이 시집은 오랫동안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으며, 1988년에는 영화로도 만들어졌습니다. 

이후 1991년 도종환 시인이 재혼하면서 많은 이들에게 실망감을 안겨 주기도 했습니다만, 지금도 꾸준히 독자들의 손에 닿고 있는 밀리언셀러 시집이 되었습니다. 

(2026. 06 - 국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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