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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나무 꽃(梨花)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이 삼경(三更)인제

    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子規)야 알랴마는 

    다정(多情)도 병(病)인양 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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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교과서에 나와서 배나무 꽃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고, 지금도 온전히 다 외울 수 있는 고려후기 문신(文臣)인 이조년(李兆年;1269~1343)이 쓴 시조입니다. 

배꽃이 하얗게 핀 달밤 그 위에 은하수가 흐르고 멀리서 들려오는 소쩍새(子規) 소리를 들으며 밤은 한밤으로 가고 있는데, 잠을 못 이룰 만큼 누군가를 생각하는 마음의 정이.......

후세의 문인들이 제목으로 「이화에 월백하고」라고도 하고 「다정가(多情歌)」라고 하기도 하는데, 봄날 밤의 애상적(哀傷的)인 정취를 잘 표현하고 있어,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애송(愛誦)하는 고시조의 하나라고 생각됩니다. 

이「이화에 월백하고」시에서 볼 수 있듯이, 배나무 꽃은 깨끗하고, 청초하며, 순결한 아름다움을 상징하고 있어 배꽃과 관련된 우리나라나 중국, 일본의 시(詩)들은 모두 애잔한 슬픔과 관련이 있고, 깊은 상념(想念)에 잠기게 하는 시(詩)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배꽃’ 하면 이화여대, 이화여고 등의 ‘이화학당(梨花學堂)’ 이 생각나는 사람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 미국 감리회 선교사인 메리 스크랜튼 여사(1832~1909)가 1886년 기독교 정신을 토대로 한 한국 최초의 여성교육기관을 서울 정동에 만들면서, 고종황제께서 ‘이화학당’ 이라는 이름을 하사한 것입니다. 

 


당시 학교 주변에 흐드러지게 피어나던 배꽃에서 따온 이름으로 ‘배꽃처럼 희고, 맑고, 깨끗하라. 그 열매를 맺듯이 그 배움 또한 그러하리라’ 라는 의미의 설명을 써서 같이 보낸 것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배나무 꽃은, 벚꽃이나 복숭아꽃, 살구꽃 같이 화려하지 않는 대신에 은은한 기품을 풍기는 꽃으로 우리의 정서와 잘 어울리기 때문에 옛날부터 오랜 기간 사랑을 받아오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배나무 꽃은 중부지방에서는 개나리, 진달래, 벚꽃 등 만화방창(萬花方暢)의 분위기가 좀 잠잠해질 4월말~5월초 정도에 잎과 같이 피는 것이 보통인데, 요즘은 4월 초 중순에 만개를 한 것을 보기도 합니다. 이제는 지구 온난화로 꽃이 피는 시기도, 피는 순서도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것과는 달라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배나무는 장미과 낙엽, 활엽, 교목으로, 나무의 높이는 자연 상태로 두면 10m까지 자라며, 4월 초순~5월초에 흰색으로 꽃이 피고, 조생종 배는 8월 하순에서 9월 초순에 수확이 가능하며, 중생종 배는 9월 중순에서 10월 초순에, 만생종 배는 10월 중순에서 하순까지 가서 수확을 합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조생종 배의 대표로는 원황, 장십랑 등이 있는데, 추석에 먹기에 가장 알맞은 배입니다. 중생종 배의 대표로는 신고, 화산 등이 있으며, 만생종 배로 만삼길, 만황, 추황배 등이 있습니다. 현재 ‘신고’ 배가 우리나라 배 농사의 거의 80%를 점하고 있습니다. 

 


배나무의 나무 모양은 원래 일반적인 나무의 모양인데, 재배하는 배나무는 수확과 전정, 화접(인공 수분)등 관리 때문에, 유도용 철사를 이용하여 나무의 모양을 인위적으로 T자에 가까운 Y자형으로 터널을 많이 만들어서, 원래 나무 모양을 오해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배나무의 원산지는 워낙 오래 된 과일나무이기 때문에, 어디라고 특정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남부지방, 중국의 양자강 유역, 일본의 중부 이남의 돌배나무라고 보고 있으며, 현재 재배하고 있는 배나무는 야생하는 돌배나무를 일본에서 개량한 품종이 대부분으로 주 분포지도 우리나라, 일본, 중국입니다. 

산에 두고 따먹기만 했던 ‘산리(山梨)’ 라고 야생종 돌배나무를 삼한시대부터 우수한 것을 집 주위에 심기 시작하면서 과수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사람들은 돌배나무 중에서 굵은 열매가 열리고, 맛이 좋은 것을 선택, 선택하면서 점차 청실배, 문배, 백운배, 황실배 등 유명한 배들이 생겨났습니다.  

특히, 청실배는 조선 후기 영조 때 유박(1730~1787)이 지은『화암수록(花庵隨錄)』에는 ‘배는 품종이 많으나 정선의 청리(靑梨)의 큰 것은 과일 접시 한 그릇에 가득 찬다.’ 라고 했고,『춘향전』에는 월매가 이도령에게 상을 차려주는 대목이 있는데, 이 상차림에 올라간 배도 청실배라고 하며, 근세의 서울 태능 일대의 ‘먹골배’ 도 우리 토종 청실배라고 합니다. 

1906년 뚝섬에 ‘원예모범장’이 생기면서, 개량종으로 된 일본 배를 중심으로 중국 배, 서양 배가 들어오면서, 우리 토종 청실배를 제치고 우리나라의 배 밭을 전부 점령하게 되었고,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일본 품종 ‘장십랑’ ‘만삼길’을 주종으로 재배했고, 후에 신품종인 ‘신고’ 등이 보급되면서, 우리의 청실배는 천연기념물이나 산에 가야 볼 수 있는, 다시 ‘돌배’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진안 은수사의 청실배 나무는 천연기념물 제386호로 수령은 대략 650년 정도가 됩니다. 

우리나라 현재 배 주산지는, 나주(금천, 세지, 봉황), 천안 성환, 경기 안성, 남양주, 대전 유성, 충북 영동, 경남 삼랑진, 울산 울주 등이 있으며, 지리적 표시제의 상표로는 나주, 천안, 안성, 울주 배가 등록되어 있습니다.

모든 농산물이 농부들의 땀과 수많은 손길이 가야만 수확을 하겠지만, 특히 배가 소비자들의 손에 들어가기까지는 백 번의 손길이 들어간다고 할 정도로, 전정, 봄철 개화기의 인공수분, 과일 솎기, 봉지 씌우기, 농약치기 등 손이 많이 가서 인건비 등 재배원가의 상승이 경쟁력을 약화시켰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요즘은 농약도 많이 쓰고, 공해도 심하여 벌과 나비가 부족한 데다, 배꽃이 피는 시기도 빨라져서, 벌, 나비가 본격적으로 활동하는 시기보다 꽃이 먼저 피어서, 꽃이 지기 전에 서둘러 인공 수분(受粉)을 해줘야 하는데, 인력이 부족한 것이 현실입니다. 천안시에서는, 보통 4월 중, 하순에 배나무 꽃 수분을 위해서 매년 수백 명의 공무원이 성환 배 재배 농가에 붓을 들고 인력 지원을 나가고 있다고 합니다. 공무원 한 사람과 꿀벌 한 마리가 하루에 배꽃 수분을 얼마나 하는지 비교를 할 수 있으면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동의보감』에서는 ‘배는 폐를 보호해 주고, 기침을 억제해, 감기와 기관지 질환, 가래에 효과가 있다.’ 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한방(韓方)에서는 기호에 따라서 도라지, 생강, 인삼 등을 같이 사용하면 효과를 증대시킨다고 합니다. 또, 배는 연육(軟肉)효과가 있어서, 특히 소고기를 연하게 할 때 갈아서 넣으며, 육회에는 배가 꼭 들어가고, 소고기 식당에서는 후식으로 배를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의 제사에 감 놔라. 배 놔라’ 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는 조선시대 중, 후기 제례의 법도는, 율곡 이이(1536~1584)가 쓴『격몽요결(擊蒙要訣)』의 ‘제찬도(祭饌圖)’ 에 따라 과일은 ‘조율시이(棗栗柿梨)’ 로 왼쪽부터 대추, 밤, 감, 배 순서로 진설을 했습니다. 

그러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이러한 규범과 민간의 도덕이 다 무너져 버렸는데, 조정에서는 우선 예법부터 바로잡아 혼란스러운 사회기강을 바로잡으려고 생각을 했습니다. 이 때에, 전주 이씨를 중심으로, 배 이(梨)자가 조선 왕조의 오얏나무 이(李)자와 발음이 같다고, 배를 앞에 둔 ‘조율이시(棗栗梨柿)’ 로 배와 감이 앞뒤로 바뀌게 되었다고 합니다.

어떤 가문은 여기에 따르고, 어떤 가문은 『격몽요결』을 고집하면서, 외갓집이나, 처갓집 제사에 참석해서는 자기 집안 제사의 진설과 다르다고, 엄연히 남의 집 제사인데, ‘감 먼저 놔라, 배 먼저 놔라’ 라고 참견하면서, 이 속담이 생긴 것이라고 합니다. 

(2026. 04 - 국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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