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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두나무(오얏나무)

최근 발생한, 6·3 지방선거에서 투표용지 부족이라는 초유의 사태로, 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의 행정편의 주의적 판단과 현장 대응 부실이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헌법기관인 선관위의 존재 목적이 다름 아닌 선거관리인데, 그 부실함에 대한 논란은 근래 주요 선거 때마다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습니다. 단순한 행정착오를 넘어 국민의 참정권 제한이나 선거 공정성 시비로까지 번져가고 있습니다. 정의에 민감한 2030 젊은이들은 ‘부실선거’인지 ‘부정선거’인지의 문제를 넘어 ‘오염된 선거’라고 규정하며 재선거까지 요구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선관위가 몇 년 전에도 해서는 안 될 실수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정파의 유 불리를 떠나 선관위가 따끔하게 정신 차릴 수 있도록 조치를 취했더라면, 그 후에 벌어진 어처구니없는 실수들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2020년 4월 15일 총선 사전투표의 ‘선관위(選管委) 투표안내문’에서는, 정말 선관위가 생각이 있는가 의심이 될 만한 실수가 있었습니다. “기표소에 들어가 도장을 1번만 찍으세요.”라는 문구였습니다. 선거를 공정하게 관리하기 위한 것이 선거관리위원회의 존재 이유이니, 이는 분명 ‘1번’ 출마자를 찍으라는 뜻이 아니라 ‘한 번’만 찍으라는 뜻이었을 것이라고 애써 믿고 싶습니다.
그때 각 언론에서는 선관위가 누가 보더라도 오해를 살 수 있는 ‘신중하지 못한 표현’을 썼다며, ‘오얏나무 밑에서 갓을 고쳐 쓰지 말라’는 고사를 인용해 처음부터 의심받을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고 일제히 보도했습니다.
여기에 인용된 고사는 『명심보감』「정기편」에 나오는 ‘과전불납리(瓜田不納履), 이하부정관(李下不整冠)’이라는 말입니다. 즉 ‘참외밭에서 신발을 고쳐 신지 말고, 자두나무 밑에서 갓을 고쳐 쓰지 말라’ 는 강태공의 가르침입니다.
이 고사에 인용된 ‘자두나무’는 요즘은 그리 흔히 볼 수 있는 나무가 아닙니다. 그러나 옛날에는 성현의 가르침에 인용될 만큼 자두나무가 사람들 가까이에 흔히 자리하고 있던 나무였거나, 강태공이 살던 시절의 중국에는 자두나무가 배나무나 사과나무, 복숭아나무 보다 흔하게 볼 수 있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한자 공부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이 익히는 『천자문(千字文)』에도 ‘과진이내(果珍李柰)’, 즉 ‘과일 중의 보배는 자두와 능금’이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자두가 그만큼 주위에 흔했기 때문인 듯한데, 중국 재래종 자두는 매실(梅實)만큼이나 신맛이 강하고 자잘한 과일이어서, ‘과일의 보배’라는 표현이 지금 감각으로는 선뜻 와 닿지 않습니다.


상상만 해도 입안에 군침이 도는 새콤달콤한 자두가 요즘 제철입니다. 이제는 다른 과일나무에 비해 잘 보이지 않는 나무인데도, 대형 마트에 가면 실하게 잘 익은 자두가 어디선가 나와 과일코너에 수북이 쌓여 있습니다.
‘자두’라는 이름은 보랏빛이 강하고 복숭아를 닮았다고 하여 한자로 ‘자도(紫桃)’라 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발음하기 쉬운 ‘자두’로 변했다고 합니다. 마치 ‘앵도(櫻桃)’가 ‘앵두’로, ‘호도(胡桃)’가 ‘호두’로 변한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자두의 우리 옛말은 ‘오얏’입니다. 오얏의 한자는 ‘이(李)’ 자인데, 글자를 파자해 보면 나무 목(木)아래 아들 자(子)가 붙은 형상으로, 자두나무 가지에 자두가 달린 모습은 다복(多福)하게 많은 자식이 매달린 모양으로 형상화한 것입니다.
그런 의미 때문인지 옛날에는 우리나라 전국 어디서나 집 근처에 자두나무 한 두 그루씩 과일나무로 심어 길렀습니다. 추위에는 강한 편이나 건조와 해풍에는 잘 견디지 못합니다.
자두나무도 복숭아나무, 살구나무, 매화나무, 사과나무, 배나무와 같이 꽃잎이 다섯 장이 피는 장미과 과일나무입니다. 10m 정도까지 자라는 중간 키 나무로, 활엽 낙엽수이며 4월 중순 동전 크기만 한 하얀 꽃이 잎보다 먼저 핍니다. 열매는 6월 말에서 7월 초 중순에 익으며, 둥글고 계란만 한 크기에 매끈매끈하고 끝이 뾰족한 복숭아 모양입니다. 자두는 살구, 매실, 복숭아 등과 함께 핵과(核果)류로 분류됩니다.
자두는 양자강 유역에서 시작해 동북아시아에 분포하는 동양계 자두와, 코카서스 산맥에서 출발해 유럽에 분포하며 주로 건과(乾果)나 가공제품에 쓰이는 서양계 자두, 두 종류가 주류를 이룹니다. 동양계 자두는 둥글거나 갸름하며 크기는 매실만 한데, 오늘날 우리가 먹는 자두는 1920년경부터 심기 시작한 개량종 서양자두(European Plum)가 많습니다.
자두는 영어로 ‘플럼(Plum)’, 중국어로는 ‘리(李)’ 또는 ‘리즈(李子)’, 일본어로는 ‘신 복숭아’라는 의미로 ‘수모모(酢桃)’라 합니다. 북한에서는 자두를 ‘추리’라 하는데, 어릴 적 제 고향 안동에서도 자두라 하지 않고 추리라 불렀습니다. 지금도 경북, 전북 일부 지역에서는 추리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자두는 경북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며, 그중에서도 김천이 핵심산지로 꼽힙니다. ‘김천자두’는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의 「지리적 표시 생산품」으로 보호받고 있습니다.

자두는 약용으로도 쓰였습니다. 『동의보감』에서는 ‘뼈마디 사이의 노열과 고열을 풀며 기를 좋게 한다.’ 고 기록하고 있고, 명나라 의학서 『본초강목』에서는 ‘골절이 쑤시는 현상과 오랜 열을 다스린다.’고 합니다.
성씨로는 이씨(李氏)가 오얏 이(李) 자를 쓰는데, 우리나라에서 김씨(金氏)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성씨입니다. 조선왕조가 전주 이씨(全州 李氏) 왕조이긴 했지만, 자두나무(오얏나무)를 상징물로 쓰지는 않아서 조선시대에 이 나무를 특별히 대우한 기록은 없습니다. 구한말 고종황제는 ‘대한제국’으로 국호를 바꾸면서 국가를 상징하는 국장(國章)으로 ‘자두꽃’을 사용했습니다. 현재는 전주이씨 종친회 문장(紋章) 역시 자두꽃 문양인 ‘이화문(李花紋)’을 쓰고 있다고 합니다.
신라 말 승려 도선(道詵, 827~898)국사가 지었다고 전하는 풍수서『도선비기(道詵秘記)』라는 책이 있었습니다. 책의 존재는 구전으로 전해 내려올 뿐, 애석하게도 원본은 지금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이 도선비기에는, 신라가 망하고 왕씨(王氏)의 고려(918~1392)가 개경에서 흥할 것이라는 예측에 가까운 예언과 함께, 500년 후 오얏 이(李) 씨 성을 가진 사람이 한양(漢陽)에 도읍할 것이라는 놀라운 예언이 담겨 있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가 구전되어 오다가 고려 충숙왕(忠肅王, 1294~1339) 때 『서운관비기(書雲觀秘記)』라는 책으로 정리되어 나오면서 고려 사회가 술렁이게 되었습니다. 이를 진정시키고 한양에서 이 씨의 발흥을 막기 위해, 한양(지금의 서울) 북한산 자락에 오얏나무(자두나무)를 심어두고 자라면 베고 또 자라면 베어버리는 일을 관장하는 관리, 즉 ‘벌리사(伐李使)’를 개경에서 파견했다는 이야기가 전합니다.

서울시와 강북구청이 공식 기록으로 설명하는 번동의 유래는 이렇습니다. “『서운관비기』에서 비롯된, 이 씨 성을 가진 사람이 한양에 새 나라를 세우고 도읍할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이 돌자 고려왕조와 중신들은 무척 신경이 쓰였다. 그때 한양의 북한산 자락 한 마을에 유독 오얏나무가 무성하다는 소식이 고려 조정에 들려오자, 조정에서는 그 기운을 누르고 막기 위해 벌리사라는 관리를 파견하여 오얏나무를 모두 베어내게 했다. 이곳을 처음에는 벌리(伐李) 또는 벌리(伐里)라 불렀는데, 세월이 흐르며 번리(樊里)가 되었다가 오늘날의 번동(樊洞)이 되었다.”
(2026. 06 - 국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