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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연초·煙草)



저는 중·고등학교 때 담배를 피우지 않았습니다. 1970년대 당시 학교 벽에는 '정학(停學)' 명단이 공고되었는데, 가장 많은 정학 사유가 '흡연(吸煙, 喫煙)' 적발과 무단 영화 관람이었습니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처음에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습니다. 입학 당시인 1978년은 유신 말기였기에 하루가 멀다 하고 교정에서 데모가 있었고, 대학생들은 1학년 때 학교별로 군부대에 9박 10일 입소하여 훈련을 받아야 했습니다. 

우리학교는 진달래 피는 4월 봄날에 남한산성의 '문무대'에 입소해야 했습니다. 특히 데모가 심한 대학은 유격·화생방·총검술·각개전투 등을 훈련이라기보다는 벌(罰)주는 수준으로 혹독하게 치러야 했습니다. 입소 전에 선배들로부터 고생담을 들으면서, 훈련 중 10분간의 휴식 시간에 피우는 담배가 그토록 위안이 되고 피로를 잠시나마 잊게 해준다는 말에 귀가 솔깃했습니다. 결국 기숙사 룸메이트들과 밤새워 담배를 피워보자고 시작한 것이 20여 년 간의 흡연으로 이어졌습니다.

30대 후반부터 고혈압 때문에 담배를 끊겠다고 결심하고 몇 차례 금연을 시도했지만, 금단 현상 때문에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오랜 기간 담배를 피워온 사람들에게 금연(禁煙)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경험해본 사람이라야 압니다. 아예 담배를 배우지 않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입니다.

저는 종교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결국 건강이 나빠지면서 40대 중반이 되어서야 담배를 끊고 중독에서 해방되었습니다. 담배를 피워본 사람이라면 '해방'이라는 표현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알 것입니다.

 


우리는 옛이야기를 시작할 때 으레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 호랑이가 담배 피던 시절에……" 라는 말로 운을 뗍니다. 그렇다면 "호랑이가 담배를 피던 시절"은 과연 언제였을까요?

여러 기록과 설(說)이 있지만, 담배가 우리나라에 전래된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430여 년 전, 임진왜란(1592~1598) 당시 왜군에 의해 들어온 것으로 추정됩니다.

기록을 살펴보면,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백과사전식 저술인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는 담배 전래시기를 1618년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실학자 오주(五洲) 이규경(李圭景,1788~1856)입니다. 한편 『조선왕조실록』 인조 18년(1640) 기사에는 ‘담배는 1616년과 1617년 사이에 바다를 건너온 것으로, 1622년 이후에 성행하여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이 없었고, 씨를 뿌리고 수확하여 사람들끼리 사고파는 데 이르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조선 중기 광해군 때 문신 이수광이 1614년 완성한 『지봉유설(芝峯類說)』에서는 ‘담파고(담배)는 근래에 일본에서 들어온 것으로 사람들이 많이 심고 있다.’ 라고 했으며, 한 기록에는 ‘남초(南草)는 섬 오랑캐의 요사스러운 풀인데 임진왜란 때에 들어왔고, 그 이전에는 없었던 풀이다.’ 라는 언급도 남아 있습니다.

종합하면, 일본은 임진왜란 이전부터 포르투갈과 교류가 있었기에 16세기 중반에 이미 담배가 전래되었고, 그것이 임진왜란 때 왜군을 통해 조선으로 건너온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담배의 세계 전파는 콜럼버스(Columbus)가 1492년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하면서 비롯됩니다. 당시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담배 잎을 대(竹)에 담아 연기를 내뿜는 것을 보고 무엇이냐고 묻자, 원주민들은 "신경통에 좋은 약초"라고 설명했다고 합니다. 콜럼버스는 원주민에게서 담배씨를 얻어 유럽으로 돌아와 자신을 후원해준 스페인 왕실에 약초 선물로 바쳤고, 스페인 왕실은 이를 궁정 정원에서 재배하며 유럽에 약초로 전파시켰습니다. 이후 16세기 중반 아시아로 전해졌고, 포르투갈 상인에 의해 일본에 들어왔으며, 그것이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고추·호박과 함께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담배는 우리나라에도 전래 초기에 약초로 인식되었습니다. '남쪽에서 전래된 신비로운 풀'이라는 뜻으로 '남령초(南靈草)'라 불렸고, '연기 나는 풀'이라는 의미로 '연초(煙草)'라고도 많이 불렸습니다. 또한 전래 초기에는 손님을 접대할 때 차(茶) 대신 담배를 내놓는 일이 많았기에 '연기 나는 차'라는 의미의 '연다(煙茶)'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담배'라는 이름은 영어 '토바코(Tobacco)'가 일본에서 '다바코(담배)'가 되었고, 조선으로 전래될 때 '담파고(淡婆姑)', '담박괴(淡泊塊)' 등으로 불리다가 시간이 흘러 지금의 '담배'로 정착하여 표준어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한편 영어의 토바코(Tobacco)도 실생활에서는 '스모크(smoke)'나 '시가레트(cigarette)'가 더 보편적으로 쓰입니다.

담배는 남아메리카 안데스산맥 고산지가 원산지인 가지과(科) 여러해살이풀로, 겨울이 있는 온대지역에서는 한해살이풀로 자랍니다. 키는 대략 1.5~2m이며 줄기가 곧게 서고, 잎은 어긋나기로 달리며 길이 50cm 안팎의 타원형으로 상당히 큽니다. 줄기에는 점액을 분비하는 선모(腺毛)가 빽빽이 있어 손에 닿으면 끈적거립니다.

꽃은 7~8월에 분홍색으로 원줄기 꼭대기에서 깔때기 모양의 꽃차례를 이루며 피어납니다. 잎이 12~14매 정도 달리면 개화기가 되어 적심(순 자르기)을 하고, 그로부터 1주일 뒤부터 녹색이 엷어지면서 아래 잎부터 황색으로 변하기 시작하면 수확합니다.

담배의 열매는 안이 여러 칸으로 나뉘어 각 칸에 많은 종자가 들어 있는 삭과(蒴果) 구조인데, 이 삭과를 터뜨리면 짙은 갈색의 미세한 둥근 씨앗이 2,000~4,000개나 쏟아집니다. 담배는 열대가 원산지인 만큼 따뜻한 곳이 재배에 적합하며, 현재는 북위 45도에서 남위 40도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재배되고 있습니다. 재배 기간이 100일 정도로 짧아 온대지방 북부까지 재배가 가능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담배는 전래 초기에 건강에 이로운 약초로 대접받았습니다. 이익의 『성호사설』에는 ‘담배가 만병통치약으로 대접받는다.’ 고 했고, 이수광의 『지봉유설』에는 ‘병든 사람이 그 연기를 마시면 가래를 제거한다.’ 는 기록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담배는 전래 이후 300여 년간 자유 경작이 허용되었습니다. 그러다 1921년 일제의 『연초전매령(煙草專賣令)』시행으로 전매품이 되었고, 해방 이후에도 '담배'와 '홍삼'은 국가 재정 수입을 이유로 전매품으로 유지되었습니다. 담당 국가기관도 '전매청'에서 '전매공사', '한국담배인삼공사'로 이름을 바꾸다가, 2002년 정부 방침에 따라 'KT&G'로 민영화되어 오늘에 이릅니다.

담배 제조는 잎을 후발효(後醱酵)시킨 뒤 잘게 썰어, 주원료와 연소성이 좋은 보충 원료의 잎을 배합하고 설탕·암모니아 합성물·감초·코코아·향료 등의 첨가제를 넣어 가공한 다음, 권상작업(卷狀作業)·필터 작업·포장 작업을 거쳐 완성됩니다.

1940년대까지는 잎을 썰어 담은 봉지 담배가 주류였고, 1960년대까지는 필터 없는 양절담배(백자·파고다 등)가 보편적이었으며, 이후 담배 연기의 유독 물질을 일부 걸러내기 위한 필터 담배가 주류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제가 젊었을 때는 가히 담배 피우는 남자들의 세상이었습니다. 여성이 공개적으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았고, 중·고생도 금지였지만, 스무 살을 넘기면 어디서든 담배를 피울 수 있었습니다. 출근하면 여직원이 책상 위의 커다란 재떨이를 매일 깨끗이 씻어 올려놓았고, 사무실에서 시도 때도 없이 담배 연기가 피어올랐습니다. 1980년대 20대 남성 흡연율은 77%에 달했으나, 최근 조사에 따르면 30% 내외 수준으로 크게 낮아졌습니다. 그나마도 권련형 전자담배나 액상 전자담배로 전환한 이들이 상당수를 차지합니다.

 


과학과 의학의 발달로 담배의 각종 성분이 분석되면서, 니코틴과 타르가 폐암·폐질환·고혈압·심장병 등 온갖 질병의 원인임이 하나씩 밝혀지고 있으며, 간접흡연 역시 발암 원인으로 공식 지정되었습니다.

니코틴과 타르 함량이 높은 담배를 피우면 약간의 현기증과 함께 가벼운 무력감이 오는데, 많은 흡연자들은 그 순간을 일시적이나마 피로가 풀리고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것으로 느낀다고 합니다.

1989년 미국의 공중위생장관 에버렛 쿠프(C. Everett Koop)는 ‘담배를 수출하는 것은 질병을 수출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 한 일본 환경사회학자는 담배를 ‘구조적 폭력’ 으로 간주하면서 담배회사를 ‘죽음의 상인’ 이라 부르고, 담배의 생산·판매·소비를 테러에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담배는 법적으로 기호식품의 일종으로 취급되지만, 의학계와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를 사실상 마약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대마초는 합법인 나라도 있고 불법인 나라도 있지만, 담배를 아예 불법으로 지정한 나라는 거의 없습니다. 각국이 국민 건강을 명분으로 담배에 막대한 세금을 부과하면서도, 그 세수가 국가 재정에 적지 않게 기여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나라의 금연 정책은 1986년 담배 갑에 경고 문구 표기 및 담배 광고 제한으로 시작되었고, 1995년 '국민건강증진법' 제정으로 금연 구역 설정 등이 이루어지면서 본격화되었습니다. 사회적 금연 분위기가 강해지면서 흡연 인구는 점차 줄어들고 있고, 흡연자들의 입지도 많이 좁아졌습니다.

그런데 '우산을 같이 쓰면 연인이 되고, 비를 같이 맞으면 동지가 된다.'는 말이 있듯이, 흡연 규제가 강해질수록 아직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 사이에는 오히려 동질감이 깊어진다고 합니다. 회사나 공공건물의 제한된 흡연실에서는 말단 사원과 본부장급 전무가, 9급 공무원과 국장이 한 공간에서 나란히 담배를 피우며 인사를 나누고, "이 담배가 좋다."고 권하기도 하고, 농담도 주고받습니다. 위계가 잠시 녹아내리는 공간이 되는 셈입니다.

담배 피우는 사람들만의 농담이겠지만, 한국에는 4대 연(緣)이 있다고들 합니다. 혈연(血緣), 지연(地緣), 학연(學緣), 그리고 '흡연(吸緣)'이 그것입니다.

(2026. 07. - 국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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