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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란(土卵)

 


근래에 소울 푸드(Soul Food)라는 말이 유행했던 적이 있습니다.

'영혼을 달래주는 음식'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데, 유래는 미국 남부의 노예들에게서 태어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그들 조상들의 고향을 생각하며 만들어 먹은 음식을 말하는 것으로, 다른 말로 하면, '추억이 담긴 음식' 또는 '추억이 떠오르게 하는 음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소울 푸드는 단순히 '영혼을 달래주는 음식'이라는 감상적인 뜻을 넘어, 고난과 역경 속에서 생존하고 공동체를 지켜낸 미국 흑인들의 정체성과 삶의 서사가 담겨 있는 음식을 말하는 것으로 생각되어집니다.

어느 잡지에서 본 내용인데, 요즘 정년퇴직하는 분들이 요리강습을 많이 받고 있다고 합니다. 대략 이 연령대가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무엇이 떨어진다고 생각했던 세대여서 음식을 할 줄 모르는데, 아내가 곰국도 끓여놓지 않고 여행을 가버리면 먹고는 살아야 하는 현실적인 문제가 첫 번째이고, 또 내 마음의 '소울 푸드'를 내가 직접 만들어 먹기 위함이 두 번째라고 합니다.

누구에게나 지친 몸과 마음을 조용히 다독여주는 소울 푸드가 하나쯤 있기 마련일 것입니다. 제게도 소울 푸드라고 할 수 있는 음식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한 가지는 어머니가 가을걷이 끝난 밭과 논둑에서 캐서 만들어주신 쌉쌀한 맛의 '고들빼기김치'이고, 또 한 가지는 여름방학과 휴가, 추석 때 고향에 내려가면 어머니가 집 주위에 심어놓은 토란줄기(토란대)를 꺾어서 만들어 주신 '생토란줄기국'입니다.

고들빼기김치는 향수(鄕愁)가 빠진 맛이긴 하지만 동네 반찬가게에서 사서 먹을 수도 있습니다만, 생토란줄기국은 아직은 만드는 식당도 인스턴트로 파는 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안동 외곽순환도로가 우리 동네로 지나가면서 동네 자체가 사라져 버렸습니다만, 안동의 제 고향집은 지대가 좀 낮아 습기가 많았는데, 펌프우물가나 집 뒤 안, 담벼락 주위에 어머니가 자식들 생토란줄기국 끓여 주려고 해마다 토란을 심었습니다. 여름부터 가을에 걸쳐 수확이 많을 때는 토란줄기를 안동장날 장에 나가 팔기도 하고, 제가 방학이나 휴가철, 추석 때 고향에 내려가면 늘 생토란줄기국을 끓여 주셨습니다.


제가 대략 기억하는 레시피는, 어머니가 생토란줄기를 잘라서 껍질을 벗겨서 물에 담가 아린 맛을 좀 제거하고, 파, 고사리, 애호박, 풋고추에 큰 멸치 몇 마리 넣고, 밀가루를 좀 풀고 푹 끓여내면, 알싸하고 부드럽고 담백한 맛의 '생토란줄기국'이 되는데, 제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흐뭇해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어머니의 생토란줄기국은 우리 형제들이 다 좋아했고, 지금도 어머니를 추억할 때 생토란줄기국을 이야기하곤 합니다.

토란(土卵)이란 이름은 '땅에서 나는 계란'이라는 뜻인데, 토란뿌리(알토란)가 동글동글한 계란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토란은 줄기부터 뿌리까지 요긴하게 음식 재료로 쓰입니다. 고사리, 도라지, 시금치와 함께 조상들의 제사상에 올라갈 만큼 귀하고 토속화된 음식재료입니다.

영어로는 '타로(Taro)'라고 하며, 일본어로는 '사토이모(里芋-さといも)'라고 합니다. 芋頭라는 한자어는 한국 한자음으로는 '우두'로 읽고, 중국어(표준어)로는 '위터우(芋頭-yùtou)'라고 발음합니다.

 

'토란'은 인도(India)가 원산지인 열대성 식물로, 천남성과 여러해살이풀로서, 4월 중순 이후에 토란 뿌리를 파종하면, 늦은 여름부터 가을까지 토란줄기를 수확하고, 보통 서리가 오고 땅이 얼기 전에 알토란(토란뿌리)을 수확합니다.

 

우리말의 관용적인 표현으로, '알토란같은 내 새끼' '알토란같은 재산' 등의 비유가 있습니다. '실속 있고 알차다' '더없이 소중한 존재'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알토란은 그만큼 속이 꽉 차고 탐스러워 보인다는 것입니다.

토란이 언제 우리나라에 들어왔고 먹기 시작했는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조선 헌종 때 다산 정약용(1762~1836)의 둘째아들 정학유(1786~1855)가 지은 『농가월령가』 8월령에 '신도주(新稻酒), 올벼송편, 박나물, 토란국을 선산에 제물(祭物)하고~'라고 나온 것으로 봐서는, 조선시대에는 토란국이 한가위 절기음식(節食)으로 일반화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보통 토란국이라고 하면 토란뿌리(알토란)로 국을 끓인 것을 말하는데, 『농가월령가』에서도 보시듯이, 추석(秋夕)을 전후해서 캔 알토란은 맛있고 영양분도 풍부해서, 옛날에는 추석 절기음식으로 취급을 했습니다. 때문에 설날에 떡국을 차례상에 올리듯이, 추석에는 토란탕(토란국)을 차례상에 올리는 가정도 많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토란은 독(毒)이 있어서 생식(生食)을 할 수 없으며, 옛 농서(農書)에는 살아있는 식물은 다 먹어치운다는 메뚜기 떼도 토란잎만은 먹지 않았다는 기록이 전합니다. 또 맨손으로 토란을 다듬으면, 사람에 따라서 차이는 있습니다만, 가렵고 손이 좀 검게 착색될 수 있습니다.

때문에 토란을 그냥 요리하면 먹을 때 목이 아리며, 따갑고 두통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 독성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물이나 쌀뜨물에 담그거나, 삶아서 아린 맛을 많이 제거하고 먹을 수 있습니다. 땅콩 알레르기만큼 토란에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육개장에 넣은 토란을 먹다가도, 제대로 데치지 않은 토란줄기를 먹으면 심하면 호흡곤란이 생길 수 있으므로 주의를 해야 합니다.

 


『동의보감』에는 토란이 속을 매끄럽게 하고 장위(腸胃)를 편안하게 한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본초강목』에는 묵은 어혈, 곧 숙혈(宿血)을 삭혀준다는 내용이 전합니다.

토란줄기에는 식이섬유가 풍부하여 변비에 좋으며, 성질은 차고 맛은 맵기 때문에 몸에 열이 많은 사람의 건강에 좋은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또, 알토란의 점액질에는 몸에 좋은 성분이 많이 있는데, 뮤신(Mucin)은 위벽을 보호하고 해독작용을 하며, 갈락탄(Galactan)은 혈압저하에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알토란국으로 먹을 경우 감자와 달리 미끈미끈한 표면식감 때문에 호불호(好不好)가 갈립니다.

토란줄기는 가을볕에 말려서 보관하다가 보통 육개장이나 찌개류에 들어가며, 정월대보름에 묵나물의 중요한 재료가 되기도 하는데, 토란줄기를 한 바구니를 까서 말리더라도 한 줌밖에 나오지 않기 때문에, 인건비 문제로 요즘은 중국산이 대부분이라고 보면 됩니다.

우리 또래는 많은 사람이 경험이 있을 것 같은데, 어릴 때 시골에서 비 오는 날 줄기에 붙은 넓은 토란잎을 우산으로 쓰곤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토란잎이나 연잎에는 물이 스미지 않고 물방울이 둥글둥글 구슬같이 만들어지는 소수성(疏水性; lotus effect)이 있어 신기하고 재미있기도 했습니다.

 


식물의 꽃 중에서 보기 쉽지 않은 꽃이, 대나무꽃, 고구마꽃, 토란꽃이라고 합니다. 제가 어릴 때에, 집에 있는 펌프 우물가에 무성하게 심겨진 토란에서, 초가을 이때쯤 노란 토란꽃이 하나 피었는데, 그 소문은 금세 동네로 퍼져 나갔고, 동네 사람들이 한, 두 명씩 모두 토란꽃을 보려고 우리 집에 모여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토란꽃은 100년 만에 핀다는 설이 있고, 길쭉하고 노란 토란꽃은 피었다가 길어야 2일 정도면 시들어버리기 때문에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또 피었다고 해도 토란잎에 가려서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지 않으면 못 보고 넘어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2026. 08 - 국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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