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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프고, 당분이 부족했던 어린 시절 아까시나무 꽃을 많이 따먹었습니다. 그 시절 비릿한 꽃 맛 끝에 느꼈던 기분 좋은 달콤한 꿀맛을 추억하며, 아까시나무를 변호합니다.


1994년 독일 국영 ZDF TV, 1997년 미국의 교육방송 Leaning TV, 1999년 미국의 디스커버리 방송사 다큐멘터리에서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을 촉발시킨 훈족의 원류는 한반도의 동남부의 신라와 가야지역에 살던 민족이었다.’고 방송을 했습니다.

유럽의 고고학이나 문화인류학자들에 의하면, 4세기 초 극동아시아에 수년간 저온 현상으로 곡식도 영글지 못하고, 동물들을 먹일 풀도 자라지 못하는 상황이 되자, 반 유목 종족이었던 신라와 가야지역의 민족들이 대거 만주의 동부로 이주를 하고, 이들이 서서히 세력화 하면서 강력한 훈족(흉노족)이 되는데, 점차 서쪽으로 이동하여 당시 세계 최강의 로마제국과 국경선을 경계로, 다뉴브(도나우)강 유역의 대 초원위에 또 하나의 왕국을 건설합니다. 이곳이 바로 헝가리입니다. 즉, 헝가리(Hungary)는 훈족(Hun‘s)의 나라라는 의미입니다. 

 

그 때문에 유럽에서 헝가리는 아주 독특한 나라입니다. 언어도 서양과 달리 우리와 같은 어순이고, 사물명이 우리와 비슷한 이름이 있고, 신라와 가야의 순장과 부장의 풍속이 있고, 솟대가 있고, 신라의 기마형토기와 말안장이 있으며, 또 훈족의 활이 우리의 맥궁과 동일하며, 음악도 우리와 같은 5음계를 사용하고, 식문화에서도 맵고 짠 자극성이 있는 음식이 많으며, 몽고반점을 가지고 태어나는 아이들이 많은 등 유럽의 학자들이 제시한 헝가리와 우리 문화의 유사점(類似點)이 아주 많이 있습니다.

 

몇 년 전 5월초에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여행 한 적이 있었는데, 동유럽의 다른 나라보다는 그들의 얼굴에서 우리의 얼굴 모습을 가장 많이 발견 할 수 있어서 다른 지역보다 막연한 친근감이 느껴졌습니다. 

 


그때, 5월초 헝가리는 가는 곳 마다 아까시나무꽃이 만개해 있었습니다. 특히, 유람선에서 바라다 본 다뉴브강가에 있는 중세의 성 같은 국회의사당의 진입로에 줄지어 선 아까시나무 노거수의 유백색 꽃은 장관이었습니다. 

헝가리는 나라나무(國木)로 아까시나무가 지정되어 있고, 임업에서도 전체 숲의 20%정도가 아까시나무이며, 아까시나무를 좋은 목재로 활용하고 있고, 또 유럽에서 꿀 생산이 최대인 나라입니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아카시아(acasia)는 사실 북미 원산의 아까시나무로, 호주 원산의 아카시아와는 다른 나무입니다. 실제 아카시아는 가끔 TV에서 보는, 아프리카 사바나 지역에서 기린이 잎을 뜯어먹는 우산모양의 가시가 있는 나무입니다. 

 


아까시나무는 개화기에 일본을 거처 우리나라에 들어올 때, 일본에서 아카시아와 비슷하다고 ‘니세-아키시아’ 라고 한 것이 한국에서는 계속 아키시아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원래 호주 원산 아카시아와 우리의 아카시아를 구별하기 위해서 우리 식물학자들이 정한 「국가표준식물목록」의 정식 이름은 ‘아까시나무’ 입니다. 누가 아카시아의 가시에 찔리면서 ‘아! 까시’ 라고 비명을 질러서 아까시나무가 되었다라고 농담 섞인 설명도 합니다. 

   아카시아 흰 꽃이 바람에 날리니~

   동구 밖 과수원길 아카시아 꽃이 활짝 폈네~

이와 같이 2곡의 동요에서도 아카시아는 이미 익숙한 우리 노랫말의 일부가 되어 있습니다. 또, 소나무, 버드나무, 아카시아 정도는 우리 국민이 대부분이 알고 있고, 우리 국민이 공유하는 이름입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도 ‘아카시아는 아까시나무를 일상적으로 이르는 말’ 이라고 사용을 허용하고 있으므로 아까시나무와 아키시아의 구별은 부질없어 보입니다. 학자들과 학술적인 표현에서는 구별을 하고, 일반 국민들은 익숙한 이름 아카시아를 그대로 써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까시나무는 19세기말에 들여올 때는 조경수나 가로수용으로 들여왔는데, 초기에는 용산의 육군본부 자리와 경인 철도변에 심겨졌습니다. 그 후 아까시나무가 광범위하게 심겨진 것은, 황폐해진 산림의 빠른 복구를 위한 산림녹화사업 당시에 대대적으로 식재가 된 것입니다.

그 때에 많이 심은 나무가, 아까시나무, 포플러, 오리나무, 족제비싸리 등으로 성장이 빠르거나, 뿌리가 퍼지면서 흙을 잡아줘서, 장마 기간에 토사가 흘러내리는 것을 방지하는 수종이었습니다. 

우리의 산업화, 민주화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산림녹화도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단기간에 성공한 사례가 되었습니다. 그 성공의 중심에 아까시나무가 있었습니다. 

아까시나무는 미국이 원산지인 신귀화식물로 분류되며, 덩치에 맞지 않게 콩과이고, 낙엽, 활엽, 교목으로 대략 높이는 25m정도 까지 자라는데, 햇빛을 아주 좋아하는 극양수(極陽樹)로 깊은 산속에서는 자라지 못하며 들, 강둑, 야산에서 잘 자랍니다. 

대략 20년 정도까지는 잘 자라다가 20년 이후는 급격히 자람이 저하되고, 우리나라의 환경 같으면 50년 전후를 아카시아 나무의 수명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100년이 넘는 아까시나무는 보기 드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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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시나무 꽃은 지금은 점점 빨라져서 5월초부터 유백색으로 피기 시작 합니다. 송이 모양의 꽃차례(總狀花序)의 무게로 인해 아래로 늘어지며, 개화기간이 7일~10일 정도로 비교적 짧습니다. 최근에는 원예용으로 개발 된 붉은색 아까시나무도 정원수로 보입니다.

아까시나무는 양봉하는 사람들에게는 절대적입니다. 한국양봉협회에 의하면 우리나라 꿀 생산의 70%이상을 아까시나무 꽃에서 생산하고 있는데, 연간 아까시나무 꽃에서 3천억원 이상의 수익을 올리고 있어, 양봉은 아까시나무 꽃을 보고 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농촌진흥청 자료에서 보면, 아까시나무 꽃 꿀은 위염, 위궤양, 위암, 십이지장 궤양에 좋다고 하며, 꿀에 함유된 아브시스산(abscisic acid)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위에 많은 헬리코박터균을 억제하는데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언제 부터인가 단편적인 ' 아까시나무 유해론' 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혹자는, 우리토종 나무를 죽이고 자람터를 차지해 버리는 생태교란 나무라고도 하고, 혹자는 산소를 망친다고 불경스러운 나무라고도 하며, 또 혹자는 일제가 우리 산을 망치려고 일부러 심었다고 하는 황폐화 음모론까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런 저런 부정적인 인식 때문에 아카시아나무를 더 심지도 않았고, 그 동안 많이 베어내기도 했으며, 최근에는 여름에 노랗게 변하며 말라죽는 황화병(黃化病)까지 번지면서 아카시아나무의 개체 수는 급속히 줄어들고 있습니다. 

『우리나무의 세계』의 박상진 교수에 의하면, 한 때 32만 헥타르였던 아까시나무 숲은 현재 12만 헥타르 까지 축소되었는데, 토사구팽(兎死狗烹)이 된 나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아까시나무 숲의 감소는 양봉산업의 몰락을 가져 올 가능성이 있고, 이는 2차적으로 꿀벌의 수분에 많이 의존하는 과수 농가의 피해를 가져올 가능성이 커지게 되자, 그간의 단편적인 의견으로 아까시나무를 홀대한 것에 대한 반성과 함께, 헝가리의 활용과 같이 아까시나무를 다시 봐야 한다는 의견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아까시나무는 단기적 번식력은 뛰어나지만, 다른 나무와의 경쟁에서는 압도되어 생태계를 교란 하지 못합니다. 일본에서도 절개지나 제방, 둑에는 아까시나무를 많이 심고 있어서, 일제가 우리 산을 망치려고 일부러 심었다는 음모론은 근거가 없습니다. 또, 우리나라 장례문화가 토장(土葬) 중심에서 지금은 대부분 화장(火葬)을 지향하고 있어서 아까시나무가 망칠 산소도 급속히 줄어들고 있습니다.   

더욱이, 아까시나무는 생장이 빠르고, 뿌리혹박테리아가 있어서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며,  아까시나무 숲이 있는 땅은 토질이 놀랍게 개선되고 복원됩니다. 목재의 재질도 우수하고,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탄소 흡수 능력도 우수합니다. 또, 양봉과 과수 농가의 붕괴를 막을 수 있는 밀원식물로 아까시나무 이상의 대안이 아직까지는 없습니다. 
 
근래에 산림 전문가들 중심으로도 아까시나무를 다시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산림청에서도 2016년부터 국유림을 중심으로 아까시나무를 다시 심고 있다고 하니, 다행으로 생각됩니다. 

(2025.05 - 국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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