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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雨水)를 전후해서 남쪽으로부터 고로쇠 수액 채취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제주도, 거제도를 시작으로 광양 백운산, 지리산 일대, 무주 덕유산, 울릉도 등에서 대략 춘분(春分)까지 1개월 정도 연례행사로 채취합니다.

고로쇠 수액은 제가 오래전 위 수술 후에 어느 선배님이 위장에 좋다고 지리산 고로쇠 수액 한 말(20L)을 보내주셔서, 약으로 생각하고 처음으로 먹어보았습니다. 거의 색깔이 없고 물보다는 좀 진하며, 약간 단맛이 있고, 사람에 따라서는 약하게나마 거부감을 줄 수 있는 자극성 향이 있었습니다. 

한자(漢字)의 나무 이름 '백일홍(百日紅)'이 민간에 구전되면서 '배롱나무'로 변했듯이, 고로쇠나무도 뼈를 튼튼히 한다고 해서 '골리수(骨利樹)'라고 했던 것이 역시 민간에 구전되면서 '고로쇠나무'로 변화된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고로쇠 수액을 채취해서 먹기 시작한 것은 120년 정도로 비교적 짧은 역사라고 합니다만, 고로쇠 수액이 신비한 효능이 있다고 이야기된 전설은 아주 옛날부터 몇 가지가 있었습니다. 


그중에 가장 보편적으로 알려진 전설은, 신라 말 도선(道詵: 827~898) 국사(國師)가 오랜 참선 후에 일어서려고 하는데 무릎이 펴지지 않아서, 앞에 있는 나뭇가지를 잡아당겨 일어나려다가 나뭇가지가 찢어지면서 다시 주저앉아 잠시 기운을 차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위를 쳐다보니 그 찢어진 가지에서 물방울이 한 방울씩 맺혀서 떨어지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도선 국사는 마침 갈증도 있고 해서 이 물로 목을 축였는데, 신기하게도 무릎이 펴지며 일어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이 나무를 '뼈를 이롭게 한다'는 의미로 '골리수(骨利樹)'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즉, 고로쇠나무입니다. 

모든 나무는 봄이 시작되면 활착을 위해 뿌리로부터 물을 끌어 올리게 됩니다. 보통 이 시기가 밤낮의 기온 차가 심하기 때문에, 밤에 기온이 내려가면 줄기 속의 팽압이 낮아져서 뿌리에서 많은 물을 나무줄기로 빨아 올려 압력을 유지하도록 합니다. 반대로 낮이 되어 온도가 올라가면 나무줄기의 팽압이 높아지는데, 이때 수피에 상처를 주면 나무줄기 속의 수액이 팽압에 의해서 흘러내리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나무의 종류에 따라서 수액의 양이 다르고, 맛이 다르고, 성분이 다르며, 음용(飮用)이 가능한 것과 불가한 것이 있습니다. 고로쇠나무는 단풍나무과의 나무입니다. 단풍나무과에 속하는 나무는 전 세계 200여 종이 있고, 우리나라에서는 가을 산을 붉게 물들이는 정통 단풍나무와 당단풍나무, 고로쇠나무, 복자기나무, 신나무 등 20여 종이 있습니다. 

고로쇠나무는 캐나다 등에서 메이플 시럽(Maple Syrup)을 만드는 사탕단풍나무 다음으로 당분이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고로쇠 수액으로도 끓여서 당도를 높이면 메이플 시럽을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고로쇠나무는 고로실나무, 오각풍, 수색수, 색목 등 여러 이름이 있는데, 잎은 전형적인 단풍나무 잎 모양으로 개구리 발처럼 5개~7개로 갈라져 있습니다. 비옥한 깊은 땅을 좋아하고 산허리 부분에서 잘 보이며, 햇볕을 좋아하는 양수(陽樹)입니다. 4~5월에 작은 꽃이 잎보다 먼저 연한 노란색으로 피며, 열매는 시과(翅果)로 프로펠러 같은 날개가 있고, 길이는 2~3cm로 9~10월에 익어서 시과인 열매가 바람에 프로펠러 돌듯이 돌면서 멀리까지 날아가 떨어집니다. 


한방에서는 풍당(楓糖)이라 하는데, 위장병, 폐병, 신경통, 관절염 환자에게 약수로 마시게 했다고 합니다. 고로쇠나무의 원산지는 한국이라고 일반적으로 말하며, 한국, 일본, 중국, 만주 지역에 주로 분포합니다. 고로쇠나무는 영어로 'Mono Maple', 일본어로는 '이타야 가에데(板屋楓)'라고 해서 판잣집을 만드는 단풍나무라는 뜻이고, 중국어로는 '색수(色樹)'로 아름다운 단풍 색을 낸다고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고로쇠 수액을 채취하는 곳에서는 고로쇠나무 1m 정도 높이에 채취용 드릴로 1~3cm의 구멍을 뚫고 호스를 꽂아 흘러내리는 수액을 통에다 받아서 모으는데, 고로쇠 수액을 채취하는 지역의 주민들에게는 짧은 기간이지만 중요한 소득원이 됩니다. 

고로쇠나무를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아무나 고로쇠 수액을 채취할 수는 없습니다. 고로쇠 수액의 채취 규정은 상당히 까다로운 편인데, 관할 지자체(시/군청)를 통해서 수액 채취 허가를 받은 후에 채취 기술과 사후 관리 교육을 이수해야 채취할 수 있습니다. 

수액 채취 기준도 정해져 있는데, 고로쇠나무 한 그루당 가슴높이 지름을 기준으로 10~19cm 나무는 구멍 1개, 20~29cm 나무는 구멍 2개, 30cm 이상은 구멍 3개까지 뚫을 수 있고, 또 휴식년을 두어서 나무와 자원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사람들 모두가 도로교통법을 잘 지키면 교통사고가 날 일이 없겠지만, 매일 사고가 나고 인명 피해가 있듯이, 규정대로 수액을 채취하면 사람이 헌혈을 하는 정도로 나무의 생장에 큰 지장을 주지는 않지만, 채취 기준을 지키지 않고 과도하게 구멍을 뚫고 휴식 년 없이 매년 반복적으로 수액을 채취하는 경우도 많아 당하는 나무는 괴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박상진 교수가 쓴 『우리나무의 세계』의 글을 인용하면, '고로쇠 수액을 분석한 자료를 보면 산도(PH)가 중성에 해당하는 5.5~6.7 정도이며, 단맛을 내는 자당, 과당, 포도당이 들어 있고, 무기질로 칼슘과 마그네슘 외에 몇 가지 미네랄이 들어 있다. 이 정도의 성분이야 우리가 먹는 과일에도 흔히 들어 있는 수준이라고 본다. 아직 고로쇠 수액이 특정 병을 치료하는 약리 작용이 있다는 보고가 된 것도 없다. 단지 약간 달달한 천연 식물성 건강음료 이상이라고 볼 이유는 없다고 본다,' 라고 하고 있습니다. 

고로쇠 수액은 뿌리의 세포막을 통하여 흡수된 것이기 때문에, 중간 처리 과정에서 오염이 되지 않는다면 나무의 세포막에 의해서 잘 걸러진 상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식품류는 살균 처리를 한 경우도 유통 기한이 보통 15일 정도입니다. 고로쇠 수액은 보관을 잘한다고 해도 15일 이상이면 변질될 가능성이 큽니다. 좀 시큼한 냄새나 맛이 있고, 또 불순물(이물질)이 보이면 상한 것으로 마시면 안 된다고 합니다. 

근래에 와서 고로쇠 수액이 건강식품으로 인식되어 소비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수액 채취가 고로쇠나무뿐만 아니라 자작나무, 거제수나무, 박달나무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합니다. 봄에는 거의 모든 나무에서 양의 차이는 있으나 수액을 채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산야에서 볼 수 있는 보통의 나무들은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가시 등 외형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잎이나 수액, 씨앗, 나무 조직 등에 청산이나 여러 가지 독(毒) 성분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음용이 가능하다고 확인된 나무의 수액이 아니면 먹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말이 있듯이, 며칠 동안 얼마 이상을 마셔야 한다든가, 검증되지 않은 수액을 먹는 것은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도 있다고 합니다. 

고로쇠 수액을 마시고 효험을 봤다는 분도 있고, 고로쇠 수액을 채취하여 생업을 유지하시는 분들도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습니다만, 아침에 우유를 먹는 사람보다는 아침에 우유를 배달하는 사람이 더 건강하다는 말이 있듯이, 고로쇠 수액 한 말을 집에서 먹는 사람보다는 고로쇠나무가 있는 산에 맑은 공기 마시며 오르내린 사람이 훨씬 더 건강할 것 같습니다. 

(2026.02 - 국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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