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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동(忍冬)덩굴

우여곡절과 고민 끝에,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라고 했던 회사에 입사하여 사회인으로 첫발을 디딜 때가 1980년대 중, 후반으로 소위 말하는 <산업화 세력> 과 <민주화 세력> 간 첨예한 대립이 표면화 되는 시기였습니다.
당시 회사 내에서 유행했던 말이“상도동인지 동교동인지 분명히 해라”란 말이 있었습니다. 농담성이 있지만 시사성이 강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도동은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라고 말한 분이 사는 동네였고, 동교동은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고 말한 분이 사는 동네였는데, 결국 그 뿌리 깊은 줄서기를 잘 해야 출세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이어령 교수님이 젊은 시절에 쓴 『흙속에 저 바람 속에』 란 책에서, 한국인들의 말 속에는 <내> 가 독립적인 개인으로 살지 못하고, 공동의식과 공동운명을 더 소중이 하는 <우리(줄)> 속에 매몰되어 왔다고 말합니다.
때문에, 한국인들은 ‘나’ 라고 표현하는 것 자체가 건방, 돌출, 배신이라는 의식이 저변에 깔려 있어서 ‘나’의 의견과 창의성을 나타내는 것 보다는 ‘우리’ 의 공동의견 과 공동이익을 우선 시 해야 했으며, 우리는 공(公)이고, 나는 사(私)라는 공사(公私)의 구분까지 확대 해석을 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도 무의식으로 사용하는 말 중에도 내 집이 아니고 우리 집, 내 회사가 아니고 우리 회사, 외국 사람들이 가장 이상하게 듣는다는, 내 와이프가 아니고 우리 와이프라고 자연스럽게 이야기 하고 있는데, 듣는 사람 모두가 ‘우리’를 화자(話者)본인을 지칭하는 것으로 찰떡같이 잘 알아듣습니다.

‘인동덩굴’을 이야기 하면서 상도동과 동교동 이야기로 시작을 한 것은, 이 중 동교동에 살았던 분이 아호를 ‘인동초(忍冬草)’ 라고 한 것이 생각나서입니다.
인동초는‘겨울을 참고 견디는 풀’이란 뜻입니다. 인동초의 식물분류상 정식명칭은 인동덩굴로 인동과 인동속(屬) 반상록(半常綠)의 덩굴성 떨기나무(灌木)입니다. 즉 풀(草)이 아니고 나무(木)입니다. 우리가 인동덩굴의 덩굴과 잎과 꽃만 보기 때문에 풀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뿌리 가까이를 보면 분명 나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동덩굴은 이름이 주는 의미만큼이나 생명력이 강해서 한번 뿌리를 내리고 나면, 여간해서는 죽지 않고, 뿌리로 또 씨앗으로도 자람 터를 넓히며 번성을 하는 것으로, 주위 식물을 감고 올라가거나, 햇빛을 차단하는 등 생태교란도 하고 있어, 뉴질랜드 등에서는 생태교란식물로 등재가 되어 있기도 합니다.
인동덩굴의 학명은 Lonicera Japonica Thunb 로 원산지를 일본(Japonica)으로 기록하고 있으나, 이는 일본이 먼저 등재한 것이기 때문이며, 한국, 일본, 중국의 고유 식물로 보고 있습니다.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널리 분포하고 있습니다.

인동덩굴은 우리나라 산의 가장자리와 길섶, 또는 개울가에 볕이 잘 드는 곳이면 어디에서든 흔히 볼 수 있는데, 다른 풀이 무성 할 때는 인동덩굴은 잘 보이지 않다가, 여름에 꽃이 피고, 또 가을이 깊어지면 푸른 잎으로 존재감을 나타냅니다.
겨울이 비교적 좀 따뜻한 남부 지역에서는 인동덩굴은 겨울에도 상록(常綠)으로 푸르고, 중부지방 위쪽으로는 잎이 일부가 떨어지는 반상록(半常綠)이 됩니다.
인동덩굴은 6~7월에 특이한 모양의 예쁘고 향기로운 꽃이 피고, 가을에 까만색의 열매를 맺는데, 겨울에도 푸른 잎이 있고, 또 원예종으로 개량된 붉은색의 인동덩굴의 꽃도 있어서, 요즘은 집과 건물 입구의 아치 장식등 관상용으로도 많이 기르고 있습니다.
특이하게, 인동덩굴의 꽃은 밤에 달콤한 향기를 더 강하게 내뿜어서, 달맞이꽃, 박꽃, 분꽃 등과 같이 야행성 나방을 유인하여 밤에 더 많이 수분을 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또, 인동덩굴은 꽃이 필 때는 흰색(銀花)으로 피어서 시간이 지나면서 노란색(金花)으로 변하게 되는데, 이는 마치 같은 덩굴에서 흰색 꽃과 노란색 꽃이 같이 피어있는 것 같이 보입니다. 그래서 인동 꽃을 다른 이름으로는‘금은화(金銀花)’라고도 부르고 있습니다.
인동덩굴 꽃, 특히 노란색꽃(金花)을 따서 꽃의 밑동에 있는 향기롭고 달콤한 꿀을 빨아 먹었던 기억이, 시골에서 자라났던 사람은 한 번 씩은 다 가지고 있을 것 같습니다. 영어로도 인동덩굴이 허니석클(Honeysuckle;꿀젖)인 것을 보면 서구에서도 마찬가지로 인동 꽃 꿀을 빨아 먹었던 것 같습니다.
그 때를 추억하며 박우복 시인의 「인동초 꽃이 피던 날」 이란 제목의 시를 일부 인용해 봅니다.
쭉 늘어진 하지의 햇살 받으며
모내기하는 엄마를 찾아
어린동생 등에 업고
젖먹이 길을 나설 때
보채는 동생의 울음 따라
등줄기로 흘러내리는
땀방울에 젖어
산모퉁이 외딴집
돌담 그늘에서 식힐 때
짙은 꽃향기는 빈 가슴을 채우는데
금꽃은 따서 동생 입속에 넣어주고
은꽃은 따서 내 입에 넣고
허기진 세월을 메꾸는 시간

짠한 우리의 어린 시절 애환과 그리움에 ‘인동초’의 향기가 그 깊이를 더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인동덩굴은 약용식물로도 많이 사용되었는데 『동의보감』에서는 해열, 해독, 항균, 항염에 효능이 있으며, 또 이뇨작용에도 좋은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또, 『조선왕조실록』 에는 정조10년 세자의 몸에 열꽃이 피어 앓아누웠는데 인동초 탕을 올려 열이 식고, 피부의 반점도 사라졌다는 기록이 있으며, 순조14년 임금의 다리에 붓기가 있어서 인동차를 드시게 해서 낫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인동덩굴은 재질이 질기기 때문에 서민들의 망태기 등 생활 용구의 재료로도 많이 사용 되었습니다. 또, 고구려의 고분, 신라시대의 기와, 무덤의 벽돌, 백제 무령왕릉의 금관과, 생활도구, 옷감, 노리개 등에 광범위하게 사용된 당초문(唐草紋)의 주요 소재가 인동덩굴 입니다.
당초문은 당시 당(唐)나라에서 유행했던 덩굴식물 문양이라고 해서 당초문이라고 했는데, 식물의 덩굴이나 줄기를 일정한 모양으로 도안한 장식무늬로, 접속된 식물의 종류에 따라서 인동당초, 포도당초, 모란당초 등이 있는데, 가장 널리 쓰인 당초문양은 역시 인동당초문 입니다.
인동당초문은 인동덩굴이 꼬여서 뻗어가는 모양의 문양으로 어떤 접속(接續)의 의미로, 신과 인간의 매개, 죽은 자 와 산자의 매개, 장수의 염원 등을 표현한다고 합니다. 지금도 널리 쓰이는 문양인데, 우리 집 가구에도 인동당초문이 있습니다.
(2025.11 - 국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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