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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나무(彭木, 팽목)

2014년 4월 16일 수요일 아침, 만물이 생동하는 봄의 한가운데, 봄 같은 아이들은 제주도가 가까워질수록 설렘으로 친구들과 웃고 떠들고, 사진을 찍고, 아빠와 엄마와 친구에게 문자를 보내며…… 마음은 한라산 높이만큼 들떠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배가 기울었습니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믿었던 아이들은, 어른들을 믿었던 아이들은, 최소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믿었던 아이들은, 그 믿음이 끝내 돌아오지 못한 이유가 되었습니다.
304의 생명, 그 하나하나는 누군가의 전부였습니다. 엄마의 전부, 아빠의 전부, 친구의 전부, 사랑하는 누군가의 전부……
그때 우리는 세계 앞에 부끄러웠고, 누군가에게 분개했고, 말로는 구성원 모두가 "내 책임이다."라고 진심으로 처절하게 반성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정치인과 말 잘해서 TV에 나오는 분들은 "대한민국은 세월호 전(前)과 후(後)가 완전히 달라져야 하며, 달라질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10여 년이 지난 지금 정말 안전한 대한민국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지요?
이 세월호 사건으로, 갯마을의 평화로운 포구에서 하루아침에 세계적인 비극의 현장이 된 전라남도 진도 남쪽 팽목리 '팽목항(彭木港)'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 지역에 팽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인데 '팽나무 항구'라는 의미의 '팽목항(彭木港)'입니다.
팽목항은 진도에서 가장 큰 항구로 1998년에 국가급 '연안항'으로 지정된 항구입니다. 세월호 사고 이전인 2013년에 이미 '진도항'으로 이름이 변경되었는데, 언론에서 '팽목항'으로 부르면서 그 이름이 더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 팽목항의 이름 유래가 된 '팽나무'는 세월호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었지만, 역사상 가장 슬픈 나무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팽나무는 해송(海松)과 함께 바닷물과 바닷바람에 잘 견디는 나무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때문에 팽목항처럼 배가 드나드는 우리나라 갯마을의 항구나 포구 입구에는 흔히 오래된 팽나무 한두 그루가 서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남부 해안 지역에서는 팽나무를 '포구나무'라고도 부릅니다.
팽나무는 남부와 중부 해안 지역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무속(巫俗)의 당(堂)집과 함께하는 경우가 많아, 당산나무(堂山木)의 역할을 하는 나무입니다. 팽나무는 중국어로는 '박수(朴樹)'라고 씁니다. 팽나무 박(朴)자를 파자(破字)하면 점 복(卜) 자와 나무 목(木) 자가 되는데, '점보는 나무'라는 뜻으로 무속과 관련이 있다는 해석입니다.
이 한자(漢字) 풀이 때문인지, 예부터 우리나라 중·남부 지역에서 팽나무는 신목(神木)으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박수무당(朴樹巫堂)'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의 어원이 팽나무(朴樹)로 대표되는 마을 당산나무 아래서 굿을 하던 '남자 무당'을 가리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저는 박(朴)가인데, 어릴 때 배우기로는 박(朴)자를 성씨 '朴'이라고도 하고, 박달나무 '朴'이라고도 한다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한자의 고향인 중국에서는 정작 팽나무를 '朴'이라 하고, 박달나무는 '檀(단)'이라고 씁니다.
'팽나무'라는 이름의 유래는, 옛날에 대나무 대통에 압축공기를 이용하는 '팽총(彭銃)'의 총알로 팽나무 열매를 사용한 데서 왔다고 합니다. 팽총을 쏘면 '팽~' 하고 날아간다고 해서 팽나무로 불렀는데, 한자(漢字)를 차자(借字)하여 '팽목(彭木)'이라고 우리나라에서 붙인 이름이라고 합니다.
팽나무는 느릅나무과(科)의 낙엽 활엽 교목으로 키는 20m까지 자라며, 나무의 지름은 1~2m까지 크게 자랍니다. 4월에 잎과 동시에 새 가지에서 꽃이 피며, 9~10월에 주황색 열매가 익습니다. 열매는 약간 분질(粉質)이며 달콤한 맛이 있고, 가을 단풍은 밝은 황색으로 담백한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저도 어릴 때 가을이면 방과 후에 마을 어귀의 매끈매끈한 팽나무에 올라가 주황색 열매를 많이 따 먹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팽나무 열매는 배고플 때 먹을 만큼 달달하고, 겨울에는 먹이가 궁한 새들에게 아주 훌륭한 먹이가 됩니다.
팽나무는 아시아 난·온대 지역으로 한국 중남부, 중국 동남부, 대만, 일본 혼슈(本州) 이남에 주로 분포합니다. 팽나무는 매우 천천히 자라기 때문에 장수할 수 있어, 느티나무나 은행나무만큼이나 오래 사는 노거수(老巨樹)가 많습니다.
우리나라 13,000여 그루의 보호수 중에서 팽나무는 약 10%를 차지하는데, 느티나무와 소나무 다음으로 많은 나무입니다. 특히 제주도는 전체 보호수의 70%가 팽나무입니다.
팽나무는 멀리서 보면 한 그루의 분재를 보는 것 같이 아름다운 수형(樹形)을 갖고 있습니다. 잎 하나하나는 그렇게 크지 않으나, 가지가 넓게 퍼지고 잔가지가 많아 충분한 그늘을 만들어 주기 때문에 마을나무나 정자목(亭子木)으로서 역할을 훌륭히 하고 있습니다.
또한 천천히 자라는 나무가 대개 그렇듯이, 팽나무 목재도 단단합니다. 변재(邊材)와 심재(心材)가 함께 황갈색으로 색상이 아름다우며, 갈라지는 일이 없어 가구재나 운동 기구에 많이 사용됩니다. 특히 청결을 제일로 하는 부엌 도마의 재료로도 즐겨 쓰입니다.

팽나무의 영어 이름은 '해크베리(Hackberry)'인데, 열매가 달다고 해서 달콤한 베리의 일종으로 취급합니다. 학명은 Celtis sinensis인데, Celtis는 고대 그리스어로 '열매가 맛있는 나무'라는 뜻입니다.
팽나무는 흔하고 친근한 서민적인 나무여서인지, 우리 문헌에서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합니다. 조선 숙종 때 실학자 홍만선(1643~1715)이 쓴 농업서 『산림경제(山林經濟)』에 실린 '팽나무에서 나는 팽이버섯은 독이 없다.'는 기록이 문헌상 거의 전부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옛날 주요 도로에 이정표로 살아있는 나무를 심었다고 합니다. 근거가 다소 약하기는 하지만, 5리마다 오리나무(五里木)를, 20리마다는 느릅나무와 비슷한 시무나무(二十里木)를 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일본에서도 이정표로 나무를 심었는데, 1604년 쇼군 도쿠가와(德川)의 지시로 에도(江戶, 도쿄)의 니혼바시(日本橋)를 기점으로 약 4km를 일리(一里)로 삼고, 일리마다 '이치리즈카(일리총, 一里塚)'라고 하는 무덤 같은 언덕을 만들어 그 위에 팽나무를 심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일본 지방 곳곳에 그 팽나무가 많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이는 이정표의 역할과 나그네(過客)가 쉬어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인데, 도쿠가와가 팽나무를 지정한 것이 아니라 "좋은 나무(이이키)를 심으라."고 한 것을, 부하가 '에노키(팽나무)'로 잘못 알아듣고 팽나무를 심었다는 에피소드가 전해집니다.
동신목(洞神木)으로 경북 예천의 600년 된 '석송령(石松靈)'이란 소나무는 예천군 「토지대장(3750-00248)」에 등록된, 땅을 소유한 나무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천군 용궁면 금남리에는 수령 약 500년의 천연기념물 제400호로 지정된 '황목근(黃木根)'이라는 이름의 동신목 팽나무가 있습니다.
이 나무는 1939년 마을 공동 재산이던 토지 2,821평을 이 나무 앞으로 등기 이전하면서, 성은 '황(黃)', 이름은 '목근(木根)'으로 지어 「토지대장(3750-00735)」에 올렸습니다. 열매의 색깔이 주황색이라고 해서 '황(黃)' 씨 성을 주었다고 하며, 이 나무의 수익으로 매년 정월 대보름에 당제(堂祭)를 올리는 제수(祭需) 비용과, 음력 7월 15일 백중날(百中날)에 마을 주민 모두가 이 나무 아래서 잔치를 벌이는 비용으로 사용된다고 합니다.
이 나무는 아마 5, 6백 년을 그 마을과 함께해 왔고, 앞으로도 5, 6백 년을 함께할 수 있는 존재는 그 나무밖에 없을 것입니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부터 그래왔듯이, 손자의 손자 때까지 마을 공동체를 지켜줄 것을 동신목(洞神木)에게 부탁한 것이었습니다.
(2026. 04 - 국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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