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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외래종과 같이 있으면, 어쩌면 좀 촌스럽고, 좀 어리숙해 보여서 더 정이 가는 꽃, 세련된 화분에 심어서 으리으리한 실내에 두면 꽃이 무척 낯설어 할 것 같고, 오히려 시골집 울 밑이나 장독대가 잘 어울릴 것 같은 꽃, 봉선화가 있습니다.
울밑에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
길고 긴 날 여름철에 아름답게 꽃 필적에
어여쁘신 아가씨들 나를 반겨 놀았도다.
어언 간에 여름가고 가을바람 솔솔 불어
아름다운 꽃송이를 모질게도 침노하니
낙화로다 늙어졌다. 네 모양이 처량하다.
북풍한설 찬바람에 네 형체가 없어져도
평화로운 꿈을 꾸는 너의 혼은 예 있으니
화창스런 봄바람에 환생키를 바라노라.
김형준 작사, 홍난파(1898~1941) 작곡의 우리나라 최초의 가곡이면서, 동요인 「봉선화(鳳仙花)」입니다.
이 곡이 쓰여 진 것은1919년 3.1운동 직후인 1920년입니다. 3.1운동의 생각 보다 큰 저항에 놀란 일본이 좀 유화적인 ‘문화정책’ 으로 선회를 했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다고 합니다.
보통 우리가 1절만 알고 있는데, 비장함과, 민족혼과 희망을 이야기한 2. 3절을 봐야만, 왜 일본이 그들의 ‘대동아 전쟁’을 앞두고 1940년에 저항동요라고, 금지곡으로 지정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봉선화를 작곡한 홍난파는, 우리 근대음악을 개척한 선구자입니다. 봉선화 외에 우리가 누구나 알고 있는 「고향의 봄」은 고향과 조국을 생각하게 하는 최고의 민족 정서의 노래이고, 우리가 부르며 자란 동요 「퐁당 퐁당」,「달마중」은 우리의 아이들에게, 그래도 기죽지 말고 아름답게 꿈을 키우라는 노래였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소프라노 성악가라고 할 수 있는 김천애(1919~1995)가 1942년 동경의 한복판인 히비야 공회당에서 열린 음악회에서 하얀 치마저고리 차림으로 당시 한국에서 금지곡이었던 「봉선화」를 부르자 2천명에 가까운 청중들이, 많은 일본인들 까지도 울음바다가 되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봉선화는 꽃 자체가 수수하고 애잔한 민족정서와 관련이 있고, ‘너의 혼은 예 있으니, 화창스런 봄바람에 회생키를 바라노라.’ 로 끝맺는 봉선화 노래는, 암울한 시기에 민족의 간절한 희망을 이야기 하고 있어, 일본인들에게도 이 간절한 소망이 전달되었기 때문에 같이 울었다고 봅니다.
봉선화는 인도, 동남아, 중국 남부가 원산지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는 언제 어떻게 들어왔는지는 알 수 없으나, 1241년 완성된 고려 『동국이상국집』에 봉선화가 나오는 것으로 보았을 때, 아주 오래전에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으로 보입니다.
봉선화(鳳仙花)는, 조선 3대 천재 중 한사람이라고 하는 박제가(朴齊家;1750~1805)가 쓴 『백화보』에서 ‘연약한 푸른 잎은 봉(鳳)의 꼬리가 넘노는 듯하며, 아름다운 붉은 꽃은 신선(仙)의 옷을 펼쳐 놓은듯하다.’ 에서 봉선화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호센까’, 중국에서는 ‘펑시엔후아’ 라고, 둘 다, 한자 鳳仙花를 자기나라 말로 발음하고 있습니다. 한중일 누가 먼저라고 이야기 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참고로, 영어로 봉선화는 ‘Touch-me-not (나 건드리지 마)’ 입니다. 대중가요「봉선화 연정」에 ‘손대면 톡하고 터질 건만 같은 그대’ 가 생각나는 이름입니다.
봉선화는 봉숭아라고도 하는데, 봉선화가 오랜 기간 구전되면서 굳어진 이름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미 같이 사용하고 있어「표준어 규정」에서도 봉선화, 봉숭아 둘 다 표준어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봉선화는 우리 어릴 때에 집집마다 참 흔하게 볼 수 있었던 꽃이었습니다. 봉선화는 햇볕이 드는 곳이면, 어디서든 잘 자랍니다. 꽃 색깔은 흰색, 분홍색, 붉은색, 노란색, 자주색 등 코스모스만큼 다양하며, 씨앗으로 번식을 하는 한해살이 풀꽃입니다.
봉선화는 씨앗이 다 익었을 때 건드리면, 터지면서 스프링처럼 씨방이 말려들어 씨가 사방으로 비산을 하게 되는데, 많이 날아가는 것은 몇 미터를 날아갑니다. 이렇게 꼬투리를 터뜨려서 씨앗을 멀리 날려 보내는 방법은 봉선화 외에 콩, 괭이밥 등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봉선화는 지방에 따라서는 금사화(禁蛇花)라고도 부르는데, 뱀이 봉선화에서 나는 냄새를 싫어하므로, 옛날에 뱀의 접근을 막기 위해 울 밑이나, 집 주위 또는 장독대 주위에 많이 심었다고 합니다.
요즘은 조경 산업이 발달하여, 더 화려하고 다양한 외래종 꽃들이 많이 보급되면서, 듣기만 해도 정겨운 봉선화, 맨드라미, 백일홍, 분꽃, 채송화, 과꽃, 나팔꽃 등 우리와 정서를 같이했던 꽃들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 많이 아쉽습니다.
그 중에서도, 화려한 외래종과 같이 있으면, 어쩌면 좀 촌스럽고, 좀 어리숙해 보여서 더 정이 가는 꽃이 봉선화입니다. 세련된 화분에 심어서 으리으리한 실내에 두면, 꽃이 무척 낯설어 할 것 같고, 오히려 시골집 울 밑이나 장독대가 잘 어울릴 것 같은 꽃이 봉선화입니다.
봉선화 꽃으로 손톱에 물들이는 오래된 풍습이 있습니다. 화장품이 적었던 옛날에는 봉선화 물들이기가 소녀나 여인들의 소박한 미용법이었고, 놀이었습니다.
요즘은 바르는 메니큐어, 붙이는 메니큐어, 또 여기 저기 네일샾이 있어서, 형형색색으로 손쉽고, 빠르게 화려한 색상과 문양으로 손톱을 치장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만, 청출어람(靑出於藍)에 비유해서, 봉선화 붉은 물로 물들인 손톱의 붉은색이 봉선화보다도 더 곱다고 했습니다.
여름에 손톱에 물들인 봉선화 물이 첫 눈이 올 때 까지 지워지지 않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민간의 속설이 있었고, 또, 붉은색은 악귀로부터 몸을 보호한다는 민간신앙의 의미도 있어서, 옛날에는 참 많이 봉선화 물을 들였습니다.
봉선화로 손톱에 물들이는 풍습이 언제부터 있어 왔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14세기 초 고려 충선왕이 원나라(몽고)에서 보낸 공주보다 자기나라 여자를 더 사랑한다는 이유로 왕위에서 쫓겨나 원나라 연경(지금 북경)에 가 있을 때, 고려에서 공녀로 온 소녀의 봉선화 물들인 손가락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이야기로 보면, 최소한 봉선화로 손톱에 물들이는 풍습은 14세기 초 고려 충선왕 이전에 이미 있었다고 보면 됩니다. 과히 우리 역사를 관통하는 풍습이라고 봐야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민족동요, 민족가곡이라고 할 수 있는「봉선화」를 작곡한 홍난파가 친일파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어 있습니다.
홍난파는 짧은 43세로 1941년에 작고 할 때 까지, 3.1운동 때는 아끼던 바이올린을 저당 잡히고, 독립선언서 찍는데 보탰다고 하며, 항상 일본 경찰의 감시 대상이었습니다. 미국생활 중 흥사단에 가입한 전력으로 1937년 종로경찰서에 72일간 구금되어 고문을 받았으며, 결국 그 고문 후유증으로 1941년 사망을 합니다.
고문을 견디지 못해 전향서를 썼고 ‘국민총력 조선연맹’의 문회위원으로 일제에 협력 했던 적이 있다고는 들었는데, 더 이상 뭔 큰 잘못을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홍난파의 43년의 짧은 생애에서 친일을 하면 얼마나 했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면서 누구라도 공(功)도 있고, 과(過)도 있을 진데, 사람을 평가할 때 정확하게 저울에 달듯이 값을 매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더라도, 특정한 시기의 특정한 활동만으로 어떠한 낙인을 찍어 버리는 것은, 또 하나 역사의 오류를 만드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2025. 07 - 국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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