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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어느 물가에 앉아, 나리꽃만 한나절 무심히 바라보았으면 싶습니다.”


벌써 금년도 하반기에 접어들었습니다. 

이제는 “세월이 빠르다.”는 말로는 부족할 것 같습니다. 곧 여름휴가로 어정어정하고, 추석이라고 둥둥하고, 내년 계획에 분분 하다가 보면 금년도 그렇게 금 새 지나가 버릴 것 같습니다.  

젊었을 때에는 어른들이 “인생이 너무 짧다”는 한탄을 그냥 하시는 말로 치부하며 이해하지 못했는데, 지금 제가 그 나이가 되고 보니, 그 말씀이 절실하게 이해가 됩니다. 이렇게 휙휙 지나가는 1년이 70번, 80번이면 일생(一生)을 마감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 짧다.”는 표현 말고는 다른 말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그나마, 지금은 의학의 발달과 영양상태도 좋아졌고, 개개인이 본인의 건강을 위해서 많이 노력하고 있어 ‘건강 백세시대’를 기대해 봅니다. 앞으로 장수연(長壽宴)은 칠순연도, 팔순연도 아니고, 백수연(白壽宴)이 보통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백수라고 말할 때, 당연히 일백 백(百)자를 쓸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실제 백수(白壽)는 흰 백(白)자를 쓰고 있습니다. 백수는 당연하게 생각하는 100세가 아니고 99세를 백수(白壽)라고 말합니다. 즉, 일백 백(百)에서 한 일(一)자를 빼내면 흰 백(白)자가 되므로 99세를 ‘백수(白壽)’라고 합니다. 백수연(白壽宴)도 99세에 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지나간 나이를 지칭하는 한자어는 별개로 하고, 다가 올 나이를 이르는 한자어를 보면, 70세는 고희(古稀)라고 하는데, 두보(杜甫)의 시 곡강(曲江)에 나오는 ‘인생 칠십 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의 구절을 인용한 것으로, 사람이 태어나서 70세까지 사는 것은 예부터 드물다. 는 뜻입니다. 

또, 77세를 희수(喜壽)라고 하는데, 희(喜)자의 초서를 파자(破字)하면 七十七이 되기 때문이며, 80세는 산수(傘壽)라고 하는데, 산(傘)자를 파자하면 八十이 되기 때문이며, 88세를 미수(米壽)라고 하는데, 쌀 미(米)자를 파자하면 八十八이 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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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白壽)와 같이, 우리가 관념적으로 알고 있는 단어와 이름의 뜻이 실제가 사뭇 다른 것이 꽃 이름에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연못에서 요즘 한창 피고 있는 ‘수련’은 당연히 물에 있으니, 물 수(水)자 수련(水蓮)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실제는 저녁이면 꽃을 접고 잠을 잔다고 잘 수(睡)자 수련(睡蓮)이라고 씁니다.

또, 여름휴가철이면 많이 볼 수 있는 쑥부쟁이를 닮은 ‘벌개미취’ 는 뒤에 개미가 있어, 당연히 앞의 ‘벌’도 곤충 벌(bee)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개미취가 주로 산에서 자라는 것에 비해 만주벌, 황산벌 하는 벌판에 있는 개미취라고 ‘벌개미취’라고 합니다. 

또, 백합(Lily)은 고귀하고 순결한 하얀색이 떠오르기 때문에 당연히 흰 백(白)자 백합(白合)이라고 쓸 것으로 생각 합니다만, 덩이뿌리인 구근(球根)이 백 조각으로 나누어진다고 일백 백(百)자 백합(百合)이라고 씁니다. 

일백 백(百)자 백합꽃의 순 우리말은 나리꽃입니다. 

 


좀 더 의미상 구분을 한다면, 우리나라 자생종 백합꽃을 나리꽃이라고 하며, 서양 나리꽃을 백합꽃이라고 한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식물학적으로 보면 백합꽃이나 나리꽃은 같다고 보면 됩니다. 

단지, 어감(語感)상으로 백합은 희고 순결한 이미지를 가진 꽃이라며, 나리꽃은 아름답고 고고하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글에는 백합꽃의 순 우리말 이름 ‘나리꽃’으로 쓰겠습니다. 

나리꽃은 백합과(百合科 ; Liliaceae)로 우리나라 전국 어디에서나 계곡, 암벽, 돌 틈, 제방 등에서 자라는 여러 해살이 풀로, 원래가 야생화 이지만, 꽃이 아름다워 원추리 마냥 화단이나 정원에서 당당히 화초로 재배가 되는 것을 많이 보고 있습니다. 

나리꽃은 중국이 원산지라고 주장하나, 한반도를 포함한, 중국 북동부, 일본, 연해주 등 아시아 대륙의 동북단에 자생하는 고유종이라고 보는 것이 일반론입니다. 우리나라에는10여종의 나리가 자생하고 있습니다. 땅을 보고 피면 땅나리, 하늘을 보고 피면 하늘나리, 한 가운데를 보고 피면 중나리, 가장 늦게 핀다고 말나리, 주위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참나리 등이 있습니다. 

나리꽃은 원줄기 아래 땅속에 직경이 5~8cm 정도의 둥근 비늘줄기(鱗莖)와 견인근(牽引根 )있어 매년 봄에 줄기가 나오고, 키는 1~2m정도로 자라며, 7~8월에 주둥이가 갈라진 나팔모양의 주홍색 과 주황색 꽃이 핍니다. 나리꽃의 뒤로 확 말려진 꽃잎에는 표범무늬와 같은 검은 반점이 많이 있습니다. 이 표범무늬 때문에 영어로 나리꽃은 ‘타이거릴리(Tiger Lily)'라고 합니다. 

 


나리꽃의 덩이뿌리에 전분이 많고, 독(毒)이 없으며, 영양가도 높고, 맛도 좋아서 멧돼지 등 야생동물이 아주 좋아합니다. 이 덩이뿌리가 야생동물에 먹히게 되면 자폭하듯이 작은 비늘로 해체되어 남은 비늘이 다시 뿌리를 내고 싹을 틔우기 위한 것입니다. 이 가는 비늘 백 개로 나누어지는 것이 덩이뿌리로 모여 있다고, 백합(百合)이라고 한 것입니다. 

또 백합의 덩이뿌리는 특이하게 위, 아래로 나눠서 한쪽은 땅속 깊이 들어가는 견인근(牽引根)이 있습니다. 땅속 깊이 끌어당긴다는 의미의 뿌리인데, 멧돼지 등이 쉽게 파먹을 수 없도록 땅속 깊이 숨겨놓은 생존 전략입니다.

정치를 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것 같은, 유난히 꽃을 좋아한 도종환 시인은「나리꽃」시한 구절에서 ‘어느 물가에 앉아 나리꽃만 한나절 바라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세월의 어느 물가에 
  나란히 앉아
  나리꽃만 한나절 
  무심히 바라보았으면 싶습니다.

나리꽃은 꽃이 피지만, 별도의 씨앗을 맺지 않으며, 번식은 잎겨드랑이에 생기는 콩알 같은 ‘주아(珠芽,구슬눈)가 땅에 떨어져서 발아 되며 번식을 하는데, 나리꽃이 군락을 이루는 것은 이 어미 개체에서 주아들이 떨어진 곳에서 발아가 되기 때문입니다. 

나리꽃은 고려와 조선의 전기까지는 ‘견내리화(犬乃里花)’라고 했습니다. 한글 창제전인 1417년의『향약구급방』에서도 ‘견내리화’로 기록 되어 있습니다. 조선의 한글 창제이후인 1489년『구급간이방』과 1633년『향약집성방』에서는 나리꽃의 이름을 한글로 ‘개나리’ 라고 바꾸어 표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의 견내리화(犬乃里花) 란 이름을 견(犬) 은 개, 내리(乃里)는 나리로, 즉 ‘개나리’ 라고 한글로 표시를 한 것입니다. 이는 봄에 피는 개나리, 진달래의 개나리가 아니라, 나리꽃을 개나리라고 했습니다. 1613년의『동의보감』에서도 나리꽃 덩이뿌리를 ‘개나리불휘’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국식물생태보감』에서, 봄에 피는 우리 고유종인 노란색 개나리는 가지에 꽃방망이 마냥 꽃이 핀다고 ‘가지꽃나무’ 라고 했는데, 일제 강점기에 우리 고유종에 대한 비하의 의미였는지는 모르지만 개 접두사를 붙인 ‘개나리’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이에 따라서 원래 견내리화(犬乃里花), 개(犬)나리 로 천년이상 이어져 왔던, 원래 개나리는 그냥 ‘나리’로 남게 되었습니다. 

나리꽃의 한자명은 권단(券丹)으로 꽃을 보면 알 수 있는데, 붉은 꽃잎이 뒤로 말려있다. 는 의미이며, 일본 이름은 오니유리(鬼百合)라고 하는데, 붉고 귀신같은 백합이라고 붙여진 이름입니다. 일본어에서 백합(百合)이라 쓰고 ‘유리’ 라고 발음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나리’라는 이름이 건너간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한방에서는, 나리의 비늘줄기인 인경(鱗莖)을 약재로 사용합니다. 약간 단맛이 나는 나리꽃 인경을 넣어 끓인 죽은 환자를 위한 자양강장 식으로 이용을 했으며, 진해제로 사용을 하기도 했습니다.

또, 일반적으로 봉선화 꽃잎만으로 손톱에 물들이는 것으로는 알고 있는데, 분꽃과 나리꽃을 이용해서도 손톱에 물들였다고 합니다.  

우리의 전통 문화에, 학문에 정진하여 지방의 하급이라도 관직에 오르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그렸던 ‘책가도(冊架圖)’가 있습니다. 이 책가도에 나리꽃이 자주 등장합니다. 이는 당하관(堂下官)을 부르는 ‘나리(나으리)’ 가 나리꽃과 발음이 같기 때문에 길상문양(吉祥紋樣)으로 채택 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2025. 07 - 국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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