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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잎 한 잎 떨어지면, 천하가 가을임을 다 안다.
속담에 ‘가을비는 할아버지 수염 아래서도 피한다.’ 고 했는데, 가을비가 잠깐 흩뿌린 후, 불어오는 스산한 바람에 억새와 갈대가 일렁이고 있고, 영원히 녹색일 것 같았던 나무와 풀들은 마지막 자기 색깔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시끌벅적한 여름의 들뜬 시간이 지나고, 사라지는 초록의 아쉬움을, 결실의 차분함과 차라리 꽃보다 농익은 가을의 갈색으로 위로를 받습니다. 호수공원 산책길에는, 봄에 꽃을 피우느라 기력을 쏟아버린 왕벚나무가 이미 나뭇잎을 다 떨어버리고 나목(裸木)이 된 것도 보입니다.
‘梧桐一葉落 天下盡知秋 (오동일엽락 천하진지추)’ 해석하면, ‘오동잎 한 잎 떨어지면, 천하가 가을임을 다 안다.’라는 뜻입니다.
중국 명나라 왕상진(王象晉;1561~1653)이 쓴 책으로, 가장 오래된 꽃에 대한 백과사전인 『군방보(羣芳譜)』에 나오는 구절인데, 이후 많은 시인과 선비들이 가을이면 자주 인용하는 구절이 되었습니다.
오동잎은 잎이 크고 잎줄기가 무거워서 가을이 되면서`한 잎 두 잎 바닥에 떨어지면 탁 탁 소리가 납니다. 쓸쓸하게 깊어가는 가을밤 오동잎 떨어지는 소리는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는 사람에게는 여러 감정이 교차하게 만듭니다.
옛날에 딸을 낳으면, 그 딸의 몫으로 앞마당의 어귀나 밭두렁에 오동나무를 심고, 아들을 낳으면 그 아들의 몫으로 선산에 소나무를 심었다고 합니다. 그 딸이 자라서 시집 갈 때는 그 오동나무로 장롱을 만들어 주었고, 그 아들이 늙어서 죽을 때에는 자기 몫의 소나무로 관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오동나무는 20년 정도 자라면 충분히 장롱을 만들만큼 자라고, 소나무는 60년을 자라면 관을 만들만큼 자랍니다. 소나무는 말 할 것도 없지만 오동나무도 우리와 지근거리에서 우리정서에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마당 귀퉁이에 심은 오동나무는, 봄에는 보라색의 예쁜 꽃으로, 여름에는 좋은 그늘 쉼터가 되어 줬고, 비가 내릴 때에는 시원한 빗소리를 들려주었으며, 가을에는 탁 탁 하고 잎이 떨어지는 소리로 가을밤의 공허함에 낭만을 더해 주었습니다.
‘오동나무’는 현삼과로 분류하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일반적으로 독립된 오동나무과로 분류합니다. 오동나무와 참오동나무는 우리나라 평안남도 이남에 분포하는 우리나라 특산종으로 일반적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특히 참오동나무는 우리나라 울릉도가 원산지라고 특정이 되고 있습니다.
또, 열매가 콩 꼬투리 모양으로 죽죽 늘어지는 개오동나무는 중국이 원산지로 알려져 있으며, 줄기가 푸르다고 해서 푸를 벽(碧)자를 붙인 벽오동(碧梧桐)나무는 오동나무의 한 종류 같이 이름만 비슷하지, 벽오동나무과로 과가 다른 나무입니다.
참오동나무의 학명은 ‘파울로니아 코레아나 우에키(Paulownia Coreana UYEKI)’ 인데, 원산지를 표기하는 두 번째에 ‘코레아나’ 가 들어가 있어, 한국 특산종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명법을 기본으로 하는 학명은, 제일 앞에는 일반적으로 식물의 속명(屬名)을 쓰는데, 난데없이 네덜란드 여왕인 ‘파울로니아’ 의 이름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는 명명자인 우에키 교수를 후원해준 네덜란드 학자에 대한 보답과, 일본의 근대화에 가장 많은 도움을 주었던 나라인 네덜란드 여왕의 이름을 넣은 것이라고 합니다.
오동나무는 활엽, 낙엽, 교목으로 분류 되며, 우리나라에 있는 나무 중에서는 오동나무 잎사귀가 가장 큰 나무라고 봅니다. 보통 20~30cm 정도이지만, 생장이 왕성한 어린 때에는 잎 지름이 1m 넘는 것이 있어서, 우산의 대용으로 쓰기도 했습니다.

잎이 큰 만큼 오동나무는 성장속도도 엄청나게 빠릅니다. 어린 때에는 1년에 사람 한 키 정도로 자라며, 보통 키가 15m정도에, 직경이 80cm정도까지 자랍니다. 최근에 오동나무가 각광을 받는 데는, 목재의 용도가 다양하다는 이유도 있지만, 초속성수로 조림비용 회수가 빠르기 때문입니다.
오동나무 목재는 비중이 박달나무의 3분의1수준 밖에 안 되는 가벼운 목재로 가공하기 쉽고, 옅은 홍백색의 무늬가 아름답고 잘 틀어지지 않습니다. 또, 습기와 해충에도 강하고, 불에도 잘 타지 않으며, 소리의 전달이 좋은 특성 때문에 악기의 재료로는 오동나무 목재를 최고로 칩니다. 참고로 우리나라 3대 우수 목재는 오동나무, 먹감나무, 느티나무라고 합니다.
오동나무는 특히, 가야금, 거문고, 비파 등 악기의 재료로 쓰였는데, 악기의 재료로 오동나무가 쓰이는 것은 우선 가볍고, 소리의 전달 능력이 다른 나무에 비해 좋아, 소리가 깊고 그윽하게 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가야(신라)의 악성(樂聖) 우륵(于勒:490? ~ ?)은 경북 고령의 가야천변의 오동나무로 가야금(伽倻琴)을 만들었습니다. 그런 인연으로 해서, 경북 고령군의 군목(郡木)이 지금 오동나무입니다.

조선 중기 문신인 신흠(1566~1628)은 『야언(野言)』에서 ‘오동나무는 천년을 지나도 가락을 잃지 않고, 매화는 일생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라고 했는데, 숙명적으로 오동나무는 악기의 재료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악기 이외에도 오동나무의 목재로서 우수한 특성 때문에 장롱, 고급 상자, 경대, 책장, 병풍틀, 나막신 등을 다양하게 만들었습니다. 오동나무는 속성수(速成樹) 특성상 재질이 단단하지 못해서 건축재로는 잘 사용하지는 않습니다.
한방(韓方)에서는, 동피(桐皮)라고 해서 오동나무 껍질은 종기, 습진, 피부염, 치질 치료에 효험이 있으며, 위염, 위궤양, 장염 치료에 사용이 되었습니다. 또, 오동나무 열매는 진해, 거담, 천식치료에 약재로 쓰였습니다.
『장자(莊子)』의 「추수(秋水)편」에는 ‘봉황(鳳凰)은 오동(碧梧桐)나무가 아니면 앉지도 않고,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도 않고, 예천(醴泉;단술 샘)이 아니면 마시지도 않았다.’ 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봉황은 우리나라 대통령 휘장(徽章)에도 사용되는 전설의 새, 상상속의 길조(吉鳥)인데, 가수 김도향 씨가 부른 ‘벽오동 심은 뜻은 봉황을 보잣드니~.’ 라는 노래도 이 전설과 관련이 있으며, 우리의 조상들은 봉황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뒤뜰에는 대나무를 심고, 앞마당에는 오동나무를 심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오동나무와 관련된 지명이 많이 있습니다. 몇 개만 소개를 하면, 서울의 ‘오류동(梧柳洞)’ 은 오동나무와 버드나무가 많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고, 안양천의 옛 이름이 오동나무가 많다고 ‘오목천(梧木川)’ 이었는데 지금도 ‘오목교(梧木橋)’ 가 그 이름으로 남아 있습니다. 또 송파구 ‘오금동(梧琴洞)’ 은 오동나무가 많아서 가야금을 만드는 곳이 있어서 이고, 여수 ‘오동도(梧桐島)’ 지금은 동백섬이 되었지만, 옛날에는 이 섬에 오동나무가 많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경북 봉화군 물야면 ‘오전리(梧田里)’ 는 봉황산(鳳凰山)아래에 있는 마을로 봉황산과 오전리가 전설을 공유하는 형태로 존재하는 경우는 드문 경우라고 하며, 대구 팔공산의 ‘동화사(桐華寺)’ 는 신라 흥덕왕 때 창건당시 겨울이었는데, 桐華(오동나무꽃)가 피어나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오동나무는 일본인도 인정하는 우리나라 특산 식물인데, 이 오동나무가 언제 일본으로 전래가 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지금은 일본 권력의 상징으로 ‘오동나무 문장(紋章)과 휘장(徽章)’ 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일본말로 ‘기리몬(桐紋)’ 또는 ‘도카몬(桐花紋)’ 이라고 하는데, 일본 전국시대(戰國時代)를 평정하고,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1536~1598)가문이 오동나무 문장을 사용한 이래, 지금은 일본의 내각총리 휘장으로 사용해 오고 있습니다.

(2025. 10 - 국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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