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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나무 단풍의 아름다움을 따라갈 나무가 없고, 루비 알 같이 반짝이는 화살나무 열매는 우리의 발길을 멈추게 합니다. 

어떤 고상한 명분과 이유를 붙이더라도, 전쟁(戰爭)은 국가적 규모의 큰 폭력(暴力)입니다. 

인간의 욕구에 결핍이 생기고, 그로 인해 구성원의 불만이 쌓이면, 지도자는 누군가 적을 만들어 증오심을 그 쪽으로 돌리고, 부추기고, 결국은 전쟁을 일으킵니다. 그 욕구의 결핍은 사람일 수도 있고, 식량일 수도 있고, 자원일 수도 있고, 정말 하찮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 거대한 폭력인, 전쟁이 나쁜 행동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지만, 역사는 이 폭력을 정당화하는 고상한 이유를 끊임없이 만들어 왔으며, 또 역사는 이 폭력을 통하여 수많은 영웅을 만들어 왔습니다.  

『세계의 역사와 지도를 바꾼 가루전쟁』 이란 책이 있습니다. 

 


전쟁에 관한 젊은 역사작가 도현신 씨가, 후추를 비롯한 소금, 설탕, 밀, 커피, 초콜릿 6가지 가루의 쟁탈에서 부족 간 국가 간 전쟁으로 역사가 바뀌었고, 세계지도가 바뀌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보는 전쟁 역사서인데, 2020년에 발간 된 책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후추는 인도나 동남아에서 육로나 해상을 통하여 이집트나, 소아시아, 유럽의 입구까지 들어가면, 유럽의 길목에 있던 이들이 먼저 사서, 유럽의 내부에 폭리를 취하면서 다시 팔아서 엄청난 부를 거머쥐었습니다. 

이들이 매점매석을 하거나, 가격을 조정을 하려고 들면, 후추 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아서, 한 때는 후추의 가격이 같은 무게의 금값과 같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큰 이권(利權)이 있는 동방의 후추를 독점하기 위해 베네치아, 비잔틴, 제노바 등 중세의 동지중해 세력들이 쟁탈전을 벌일 때에, 이 이권을 장악하기 위한 전쟁이, 표면적인 이유는 아니었지만, 십자군 전쟁의 숨은 큰 이유의 하나였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나마, 오스만트루크가 이집트, 소아시아, 발칸반도 까지 점령을 하면서 유럽내부로 후추의 공급이 되지 못하자, 육류에 후추 가루를 뿌려서 누린내를 완화했던 유럽인들은 참을 수 없는 결핍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렇게 되자, 먼저 포르투갈이 뱃길로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서 인도까지 후추를 조달하기 위한 무역루트를 개척하였고, 그로 인해 포르투갈은 유럽에 후추를 팔아서 엄청난 돈을 벌었습니다. 여기에 자극받아 스페인, 영국, 네덜란드로 이어지는 대항해시대가 열리는데, 이때의 대항해의 가장 큰 목적은 후추를 비롯한 향신료의 선점이었다고 합니다. 

나무를 공부하면서 알게 된 것이지만,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결핍이 전쟁의 하나의 큰 원인이 된 고구려와 백제, 고구려와 신라간의 오랜 전쟁이 있었습니다. 

영토 확장을 위한 전쟁의 목적과 명분은 300가지라도 되겠지만, 고구려가 한강 이남의 남쪽 땅으로 지속적인 남하정책을 추진한데는, 그 당시 가장 중요한 무기였던 화살을 만들기 위한 대나무를 확보하는 것이 큰 목적의 하나였다고 합니다. 

 


삼국시대의 화살을 보면, 신라와 백제는 조릿대 보다는 크고, 왕대보다는 작은 지름 1cm정도의 화살대(이대, 해장죽, Arrow Bamboo)를 사용 했습니다. 그러나 지역 기후 상 화살용 대나무가 자라지 못하는 고구려에서는 주로 싸리나무나 자작나무 가지로 화살대를 사용 했는데, 대나무에 비해서 사거리와 정확도에서 많이 떨어졌다고 합니다. 

고구려가 한 때는 아산만에서 소백산맥 남쪽까지 진출을 했습니다. 그러나 대나무의 기후 특성상 그 지역에서 화살대의 일부는 조달이 가능했겠지만, 화살대를 안정적으로 확보는 할 수는 없었을 것 같습니다. 고려시대 때도 화살대가 나지 않는 몽고에서, 고려에 조공을 요구한 품목에는 늘 엄청남 량의 화살대(해장죽)이 들어 있었다고 합니다. 

 


화살의 구조를 보면, 화살이 날아갈 때 곧바로 나가게 하고, 멀리가게 하는 것으로 화살 끝에 전우(箭羽)라는 새의 깃털이 붙어 있습니다. 이 전우(箭羽)의 재료는 매나 수리의 깃털을 주로 사용했는데, 여의치 않으면, 다른 새 즉, 꿩, 닭, 오리 등의 깃털을 사용했습니다. 

이 전우(箭羽)같은 회갈색의 코르크(Cork) 날개를 가지에 달고 있어서  ‘화살나무’ 라는 이름을 가진 나무가 있습니다. 혹자는 이 나뭇가지로 화살을 만들었다고 하는 이도 있습니다만, 화살을 직접 만들기에는 여의치 않은 나무로 보입니다. 

이 코르크 날개는, 화살나무가 봄에 새싹이 돋아날 때 이 새싹을 먹어치우는 염소, 노루, 산양 등 초식동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위한 것입니다. 엄나무나 두릅나무에 가시가 있는 것과 같습니다. 
 
화살나무는 노박덩굴과(科) 사람 키 정도의 작은 떨기나무로, 한국, 일본, 사할린, 중국에 분포하는데, 산지의 가장자리의 양지에서 자라며, 특히 석회암지대에서 많이 발견됩니다. 요즘은 정원수나 생 울타리로도 사용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이른 봄에 약간 쌉쌀한 맛이 나는 보드라운 새싹이 돋아나며, 이때에 나물을 해서 먹기도 합니다. 5월경에 새싹에서 연한 녹색의 꽃이 피며, 봄과 여름은 다른 녹음에 묻혀서 존재감이 없는데, 가을이 되면서 화살나무의 존재는, 작은 키에 걸맞지 않게, 전체적으로 불타는 듯 빨간 단풍으로 물들면서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화살나무 단풍의 아름다움을 따라 갈 나무도 별로 없지만, 10월이 되면 열매가 익으면서 껍질이 벌어지는데, 주홍빛의 동그란 씨가 마치 루비 알 같이 반짝이는 영롱한 모양이 우리의 발길을 사로잡습니다. 

 


『동의보감』 에서 화살나무는 ‘여러 가지 원인으로 인한 배 아픈 것을 낫게 한다. 요사스런 귀신에 홀리고 가위눌리는 것을 낫게 한다. 또 뱃속에 있는 충(蟲)을 죽인다.’ 라고 약(藥)으로도 귀하게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옛날에는 화실나무를  ‘귀신의 화살 깃’ 이란 뜻으로,  ‘귀전우(鬼箭羽)’ 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동의보감』에서는 화살나무를 우리말 이름으로  ‘보대회나무’ 라고 하고 있으며, 조선 후기학자 유희(1773~1837)가 쓴 어휘사전 『물명고(物名攷』 에서는 ‘횟닢나무’ 라고 표기하고 있습니다. 

‘회잎나무’ 는 화살나무와 아주 유사한데, 가지에 코르크질 날개가 발달하지 않거나 아예 없는 것으로 구분을 합니다. 19세기 까지도 화살나무와 회잎나무는 구분하지 않고 혼용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김무웅 시인의 「화살나무」시의 일부입니다. 

   무사의 정신을 이어받아 칼날을 세웠다.
   저 아비의 아비는 무사였을 것이다. 
   물려받은 기술은 화살을 만드는 것 

   화살 준비는 다 해 놓았는데
   계절도 피가 끓는 가을이 먼저 도착한다. 
   승전의 의지가 핏빛으로 물든다. 

   잎을 단풍으로 붉게 태우다가 
   열매마저 진홍색으로 뭉친다. 
   겨울로 끌려가는 마른가지는 
   단호함을 잃지 않는 흑갈색이다.

(2025. 10 - 국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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