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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나무는 풍요와 다산(多産), 그리고 벽사(辟邪)의 상징으로, 관혼상제의 필수 과일입니다.


  바람아 불어라 
  대추야 떨어져라

언제, 어디서, 누구로부터 인지도 모르지만, 대추를 먹고 싶어 바람이 불어서 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노래한, 우리 연령의 세대에게는 익숙한 주문(呪文)에 가까운 전래동요입니다. 

먹을 것이 부족했고, 특히 당분이 부족했던 시절에, 빨갛고 탱탱하게 잘 익은 대추를 보면서, 다른 집 나무라서 따서는 안 되고, 높아서 딸 수도 없어, 바람이라도 불어서 떨어지면 주워 먹을 수 있겠다. 라는 간절한 소망이 전래 동요가 된 것으로 봅니다. 

 


옛날 시골 마을에는 집안이나, 집 주위 밭둑에 감나무나 대추나무 몇 그루씩은 다 있었습니다. 감은 겨울동안 귀한 간식이었고, 제수용으로 곶감을 만들어서 사용했으며, 대추는 중요한 약재로 사용을 했고, 또 제수용으로 말린 대추를 사용했습니다.

대추는 과실에 속하지만, 원예작물이 아닌 임산물(林産物)로 분류가 됩니다. 농진청이 관할하는 사과, 배, 감 등 과수와는 달리, 대추는 산림청 관할이고, 학문으로도 원예학이 아닌 임학(林學)에서 다룹니다.  

대추나무의 어원은 한자의 ‘대조목(大棗木)’ 이 ‘대조나무’ 가 되었고, 구전에 되면서 ‘대추나무’ 로 변화된 것이라고 합니다. 대추나무의 열매를 한자로 조(棗), 대조(大棗)라고 하는데, 또 나무에 달리는 꿀과 같다는 의미로 목밀(木蜜), 색이 붉다고 해서 홍조(紅棗)라고도 합니다.

한자의 대추 조(棗)자는 가시 자(朿)자를 상하로 포개어 놓은 모양인데, 가시 자(朿)자를 옆으로 같이 배열하면 가시나무 극(棘)자가 됩니다. 글자가 암시하듯이 대추나무는 가시가 많고 날카롭습니다. 실제로 1527년 최세진이 쓴 한자 학습서 『훈몽자회』 에서는 가시 극(棘)자를 멧대추라고 훈을 달고 있다고 합니다.  

 


현재 우리가 먹고 있고 제수용으로 사용하는 대추는 원산지가 중국이라는 것에 대체로 동의하고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중국 송나라 『고려도경』 의 기록에 ‘고려 땅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야생하는 멧대추가 있었다.’ 내용을 근거로 우리나라가 원산지라고 하거나, 회화나무처럼 반 고유종으로 분류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중국의 대추나무 재배 역사는 기원전 2,000년 이상으로, 화북지방과 만주일대에서 재배되었다는 기록이 있고, 대추 조(棗)자의 명칭은 춘추시대의 민요를 모은 『시경』 에 나옵니다.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 이전에 대추나무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나, 문헌으로 처음 만나는 대추는 고려 문종33년(1079년)에 중국 송나라에서 보내온 백가지 의약품 중에  ‘산조인(酸棗仁)’ 이라 하여 지금의 멧대추가 들어 있으며, 12세기말 고려 명종이 대추나무의 재배를 권장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대추나무는 갈매나무과(科) 낙엽, 활엽, 소교목으로 키는 7~8m까지 자라며, 잎이 유난히 반짝 반짝하고, 가지에는 날카로운 가시가 많이 있으며, 과실은 단단한 껍질로 된 씨가 있는 핵과(核果)입니다.

대추나무는 자귀나무와 함께 대표적으로 게으른 나무로 분류가 되는데, 늦봄, 심할 때는 6월에 겨우 새싹을 내밀기 때문에, 옛날 사람들은 게으른 양반에 빗대어  ‘양반나무’ 라고 했으며, 성질 급한 농부는 봄에 새싹이 올라오지 않는다고, 겨울에 얼어 죽은 것으로 오해해서 베어버리기도 합니다. 

대추나무는 게으름 피면서 늦게 잎이 나오는 것에 비해서는, 착과와 성숙은 100여일 정도로 비교적 동작이 빠릅니다. 개화시기가 같은 나무에서도 빠른 것은 6월 상순, 늦은 것은 7월 중순까지 40~50일 정도 시차가 있어, 초기 착과 된 것과 후기 착과 된 것이 크기가 다르며, 수확 시에 크기, 착색, 당도가 다 달라서 수확시기를 맞추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산림청 산하 ‘국립산림과학원’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대추 생산의 70%는 경북에서 생산합니다. 우리나라의 대추 주산지는 경북 경산, 군위, 청도, 청송, 충북 보은, 충남 논산, 경남 밀양 등이 있습니다. 경산 대추, 보은 대추, 밀양 대추가 ‘지리적표시제’ 등록이 되어 있습니다. 

예로부터 대추나무 열매의 붉은 빛은 강한 생명력과, 요사스런 귀신을 쫓는 벽사(辟邪), 풍요와 다산(多産)의 신화적 의미를 함축한 나무로 보았습니다. 염병(장티푸스)이 나 돌때에는 대추를 실에 꿰어 사립문에 걸어 두거나, 대추 씨앗을 입에 물고 다니기도 했는데, 이는 붉은 대추가 귀신을 물리친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또, 대추는 다산과 번창을 기원하는 상징으로, 결혼식 폐백(幣帛)때 시부모가 며느리 치마폭에 대추를 던져주는 풍속은  ‘아들을 많이 낳아라.’ 는 뜻으로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대추는 관혼상제에 필수적으로 올라가는 삼실과(三實果)중 하나로 제사는 물론, 돌, 결혼, 회갑, 팔순 등 에 빠지지 않는 과일입니다. 특히 제사 과일의 진설에서 ‘조율이시(棗栗梨柿)’ 이든, ‘조동율서(棗東栗西)’ 이든, 제일 먼저, 제일 중요하게 취급된 과일이 대추입니다. 대추는 ‘다산과 번창’ 을 상징하는 과일이기 때문에, 조상에게 다짐하는 의미와 자손에게 복이 깃들기를 바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고 합니다. 

예로부터 한방에서 대추는 감초만큼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보약에 빠지지 않고 들어가며,  감초 같이 한약에서 단맛을 내기 위해 사용하고, 또 여러 생약 성분을 조화해 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며, 쪄서 말린 대추를 다려서 차(茶)로 먹는 것은 지금도 애용되고 있습니다. 

『동의보감』 에서 ‘대추는 맛이 달고, 독이 없으며, 속을 편안하게하고 오장을 보호한다. 오래 먹으면, 안색이 좋아지고 몸이 가벼워지며, 늙지 않게 된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대추나무는 목재가 치밀하고 단단하여, 방망이나 떡메 등을 만들었고, 높은 강도가 요구되는 도장, 목탁, 불상, 인쇄용 판재 등에 사용이 되었습니다. 

특히 벽조목(霹棗木)이라는 ‘벼락 맞은 대추나무’ 가 있는데, 이 벽조목으로 부적을 만들거나, 도장을 새기면 불행을 막아주고, 병마가 범접할 수 없는 상서로운 힘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현대에서는 곳곳에 피뢰침이 있어 대추나무가 벼락을 맞을 확률은 극히 낮아, 시중에서 진품 벽조목을 구하기 쉽지 않다고 합니다. 

『동국세시기』에 의하면, 대추를 많이 열리게 하기 위해 ‘대추나무 시집보내기’ 가 있었는데, 단오(端午)에 대추나무 가지가 갈라지는 부분에 큰 돌을 끼우는 풍속으로, 시골에서 지금도 가끔 볼 수 있습니다. 또 실학자 홍만선(1643~1715)이 쓴 『산림경제』 에 보면, 대추나무를 막대기로 두들기면 열매가 많이 달린다고 했습니다. 이 미신 같은 방법이 과학적으로 근거가 있는 이야기입니다. 과일나무를 전지라는 가장 괴로운 아픔을 가했을 때 과일이 많이 달리는 것과, 소나무가, 상수리나무가 가뭄이나 공해 등 자연환경이 나빴을 때 솔방울이나 도토리를 많이 맺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지금은 기억하는 사람도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농촌 드라마의 양대 산맥으로 MBC의 「전원일기」와 KBS의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가 있었습니다. 

 


「전원일기」가 1980년부터 무려 22년간 최장수 드라마였고,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는 1990년부터 17년간 「전원일기」 이후에 최장수 드라마였습니다. 촬영지도 개발의 물결에 밀려서 처음에는 김포 고촌에서 시작 , 강화도, 다시 충북 진천으로 3번이나 옮겨서 찍었다고 하는데, 결국 전원일기와 마찬가지로 소재가 고갈되어서 종영이 되었다고 합니다. 

농촌이라는 배경과 소재를 통해서, 농촌을 떠난 사람들에게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는 역할을 했으며, 동시에 우리 농촌에 대한 관심과 문제의식을 던진 드라마였습니다. 그 후에도 농촌 드라마의 요구 여론에 따라, 2012년부터 2년 좀 넘게 「산 너머 남촌에는」 이란 KBS드리마가 있었습니다만, 결국 방송 소비자의 관심이 적어지면서 시청율 저조로 단명한 드라마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우리 세대들에게는 마음의 고향, 돌아가고 싶은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농촌, 고향, 서민 드라마가 전혀 없고, 시도조차 없다는 것이 무척 아쉽습니다.

(2025.10 - 국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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