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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우려낸 차향(茶香)과 찻잔의 따뜻한 온기를 느끼며, 의미 있는 사람과 마주앉아 차(茶) 한잔을 나누는 여유를 즐기고 싶습니다. 


『삼국지(三國志)』도입부를 보면 돗자리 장수 유비(劉備;161~223)와 어머니간의 차(茶)단지에 얽힌 이야기로 풀어갑니다. 

당시가, 차가 기호음료로 정착된 한나라 말기인데, 황건적의 난으로 한나라는 망해가고 삼국이 정립되어가는 과정에서, 이 차에 얽힌 사건이 자칫 돗자리 장수로 머무를 수 있었던 유비가 촉(蜀)나라의 황제가 되는 변곡점이 됩니다.

유비는 몇 개월간 시장에서 돗자리를 팔아서 모은 돈으로, 당시에 몇 달치 월급 정도로 비싼 차(茶)를 사서 어머니가 좋아하실 것을 생각하며, 탁현 누상촌 집으로 오는 길에 황건적을 만납니다. 

유비는 촌수가 좀 있는 한나라 황제 집안이었는데, 그 징표로 어머니가 유비에게 늘 집안의 보검을 지니게 했습니다. 유비는 황건적을 만나 어머니에게 드릴 차를 지키기 위해서 보검을 빼앗깁니다. 유비의 어머니는 자초지종을 듣고서 심하게 노하며, 목숨 걸고 지켜낸 차 단지를 연못에 던져 버리고, “너는 단지 어머니가 기뻐할 거란 생각만으로 대의(大義)를 잊었다” 라며, 그 길로 그 황건적에게 가서 그 보검을 찾아오라고 쫓아냅니다. 

 


그 보검을 다시 찾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황건적에게 유비가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어머니는 길 떠나는 아들 뒤에서 소리 없이 웁니다. 이 어머니의 결연함과, 유비의 이 길 떠남이 결국 유비가 촉나라 황제가 되는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차(茶)문화의 발상지는 중국입니다. 중국의 전설상의 왕 신농(神農)이 100가지 풀을 맛보다가 독초에 중독이 되었는데, 찻잎을 먹고 해독을 했다고 합니다. 신농이 중국에서 BC 2,700년 임금이니 차의 역사는 약 5,000년이 된다고 보면 됩니다.

중국인들의 일상에서 빠질 수 없는 기호음료로 차를 마시는 습관은, 중국에는 물에 석회(石灰)성분이 많기 때문에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수질이 아주 좋은 지역에서도 차를 즐기는 것을 보면 기름기가 많은 식생활과 관련이 있다고 보는 것이 더 맞을 것 같습니다. 

한, 중, 일 삼국의 식문화의 특징은, 한국은 김치, 된장, 간장 등 기본이 발효입니다. 일본은 단무지, 우매보시, 나라쓰께 등 절임(짠지)입니다. 중국은 기름에 튀김이 기본인데, 이 기름기를 씻어 내리는 차(茶)를 마시는 문화가 일찍이 발달했다고 봅니다. 

 


우리는 왜 다방(茶房)에 가서 차(茶)를 마신다. 라고 할까요? 어차피 차(茶)나 다(茶)나 같은 한자 茶를 사용하는데, 다방에 가서 다를 마신다, 아니면, 차방에 가서 차를 마신다. 가 더 일관성이 있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이것은, 차(茶)를 가리키는 중국어가 광동어는 차(Cha), 복건어는 다(Tay)로 되어 있기 때문으로, 즉 광동성에서 육로를 통해서 차를 받은 인도, 페르시아, 아라비아, 러시아, 터키 등에서는 차(Cha) 라고 했고, 복건성에서 해상을 통해서 차를 도입한 영국, 네덜란드, 독일, 프랑스 등은 다(Tay) 라고 불렀는데, 다(Tay)가 좀 변형하여 오늘날 티(Tea)가 된 것입니다.

우리말에도 다반사(茶飯事)라고 해서, 차를 마시거나 밥 먹는 정도로 흔히 있다는 뜻으로 사용되고, 또, 명절을 맞아 차를 한잔 올리듯이 간략하게 지내는 제사를 차례(茶禮)라고 했고, 간단하게 대접할 때는 다과(茶菓)를 내왔음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도 오래전부터 일상생활에서 차를 즐겨 마셨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차(茶)와 다(茶)가 혼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차가 들어온 것으로 인정받는 기록은 『삼국사기』에 실려 있는 신라 흥덕왕3년(828년),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다 온 김대렴이 차나무 씨를 가지고 왔고, 왕은 그 것을 지리산 자락인 경남 하동군 화개면에 있는 쌍계사 일대에 심게 했는데, 지금도 차의 시배지(始培地)를 쌍계사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1918년에 이능화가 지은 『조선불교통사』에 보면, 김해의 백월사에 있는 죽로차는 가야의 김수로왕 왕비인 허 황후가 인도에서 가져온 차 씨에서 비롯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차의 역사일 수 있습니다. 

차나무는 주로 아시아에 약10여종이 분포하고 있는데, 중국의 티베트와 사천성 경계의 산악지역이 야생차 원산지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차나무의 분포지역은 주로 중국, 한국, 일본, 인도, 스리랑카 등이며, 우리나라는 전남북, 경남, 제주도 등지의 해발 100m~500m지역의 산양지(山陽地)에서 재배되고 있는데, 이 지역 산에서는 야생차(野生茶)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차나무는 활엽, 상록의 떨기나무로 높이가 1.5m 안팎인데, 중국 운남성에는 20m가 넘는 큰키나무의 차나무들이 있다고 합니다. 차나무는 동백나무과로, 잎 모양도, 꽃 모양도, 야생하는 지역도, 동백나무와 비슷합니다. 차는 절기상 곡우(穀雨)로부터 차 잎을 따기 시작하여 약 한 달간 수확합니다. 곡우와 입하 사이 보름간 차나무의 새싹을 따서 만든 차를 찻잎의 모양이 참새의 혀 모양이라고 작설차(雀舌茶)라고 하는데, 가장 으뜸으로 취급합니다. 

차나무의 꽃은 보통 10월~12월에 피는데, 백색 또는 연한 노란색으로 특유의 은은한 향기가 있습니다. 차나무는 그 전 해에 핀 꽃의 열매가 익어갈 때, 금년 꽃이 피기 때문에 드물게 열매와 꽃을 같이 볼 수 있는 나무입니다.

차(茶)의 여러 성분 중에서 가장 유익한 성분이 카데킨(Catechin)인데, 폴리페놀의 일종으로 녹차 특유의 떫은맛의 성분입니다. 카데킨은 발암억제, 동맥경화의 방지, 혈압상승억제, 노화억제 등 현대인에 요긴한 건강효과가 많이 있습니다.
 


차는 정신을 맑게 하고, 피로를 줄여준다고 해서, 수도승이나 무엇에 정진하는 사람들이 음용하면 좋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때문에 사찰중심으로 다도(茶道)가 발달했습니다. 

최근에 차가 건강에 좋은 기호품으로 인식이 되면서, 이름을 달리하는 여러 종류의 차들이 소개되고 있는데, 차의 종류는 발효정도에 따라서 일반적으로 불발효차, 반발효차, 발효차, 후발효차 4가지로 구분을 합니다.

즉, 찻잎을 따서 바로 증기로 찌거나, 솥에서 살짝 덖어서 녹색 그대로 유지를 한 용정차 같은 녹차를 불발효차라고 하며, 녹차 잎을 10~80%정도 발효를 시키는데, 발효과정에서 산화효소에 의해서 녹색이 사라진 우롱차등을 반발효차 라고 합니다.
 
또, 발효정도가 80%이상인 발효차로 떫은맛이 강하고, 차수(茶水)의 색이 홍갈색의 홍차가 여기에 속하며, 세계 차 소비량의 75%이상이 발효차입니다. 특히 영국과 영연방, 또 영국의 식민지였던 나라에서는 실론티와 같은 홍차를 많이 소비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후발효차는 차의 제조과정에서 우연히 발견한 차로, 찻잎을 가공한 뒤에  공기 중에 있는 미생물이 번식해서 다시 발효가 일어나는데, 찻잎이 흑갈색인 운남성 보이차(普洱茶)가 후발효차의 대표입니다.

저는 오래전에 새로운 건강 녹차 검토를 위해, 일본에서 녹차로 유명한 후지산 자락 시즈오카(靜岡)의 녹차 밭을 방문했던 적이 있는데, 거기에서 격식을 갖춘 사교모임인 일본 다도회(茶道會)의 광경을 본적이 있습니다.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에, 정성을 다해 한 잔, 한 잔의 차를 대접하고 그 정성에 예(禮)를 다해서 받아들이는 손님들의 모습에서 존중과 배려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국의 양반가에 접빈객(接賓客) 문화가 있듯이, 일본의 다도회도 『논어(論語)』에 나오는 일기일회(一期一會), 즉  ‘한 번의 인연에 최선을 다한다.’  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는 설명이 있었습니다. 

진한 녹색으로 골골이 잘 정리되고, 끝없이 펼쳐진 녹차나무 밭은,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Healing)이 됩니다. 늦은 가을에 피는 흰색에 가까운 연노랑색의 녹차나무 꽃은 그렇게 크지 않은 꽃이지만, 코를 가까이 하면 향(香)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나라에 많이 알려진 차밭으로는 드라마 「여름향기」촬영지로 유명하고, 덤으로 쭉쭉 뻗은 삼나무 숲길도 걸을 수 있는 보성차밭(大韓茶園)이 있고, 제주도의 설록차 원산지 오설록 차밭이 있으며, 섬진강 물길 따라 하동의 정금차밭 등이 유명합니다.

(2025.10 - 국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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