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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의 고혈압, 당뇨병, 비만, 심혈관질환 등의 대사증후군은, 우리의 식탁에서 쓴맛을 내는 음식이 줄어들고, 단맛을 내는 음식이 많아졌는데 기인하고 있다고 합니다.
의학의 아버지라고 일컬어지는 고대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BC460~BC377)는
‘음식으로 못 고치는 병은 의사도 못 고친다. 음식이 약이 되게 하고, 약이 음식이 되게 하라.’ 고 했습니다.
『동의보감』 등 동양의학에서는 ‘식약동원(食藥同源)’, ’의식동원(醫食同源) ‘등 ’먹는 음식과 약은 근원이 같고, 음식물을 통해서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한다.‘ 는 기본적인 철학으로 출발합니다. 때문에, 민간에서도 ’밥이 보약이다‘. ’병은 밥 잘 먹으면 낫는다.‘는 말이 속담처럼 사용되고 있습니다.
몇 년 전 KBS의 건강 프로그램 「생로병사의 비밀」에서 ‘쓴맛’ 에 대해서 다룬 적이 있는데, 어쩌면 현대인들의 고혈압, 당뇨병, 비만, 심혈관질환 등의 대사증후군은, 우리의 식탁에서 쓴맛을 내는 음식이 줄어들고, 단맛을 내는 음식이 많아진 것에 기인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부분에 지식이 없지만 상당히 개연성이 있고, 수긍이 가는 내용이었습니다.
良藥苦口忠言逆耳 (양약고구충언역이)라고, 중국 사마천(司馬遷:BC145~BC86) 『사기(史記)』 에 나오는 내용인데 ‘좋은 약은 입에 쓰고, 충성된 말은 귀에 거슬린다.’ 는 뜻으로, 예나 지금이나, 천하의 충신과 책사(策士)들이 자주 인용하는 구절입니다.

좋은 약은 입에 쓰다고 했듯이, 한약재에는 강한 쓴맛을 내는 약재가 많습니다. 한의학에서는 대부분 병은, 원인과 관계없이 화와 열이 머리 쪽으로 몰릴 때 온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약은 황금, 황백, 대황 등 강한 쓴맛을 내는 약재를 기본으로 씁니다. 쓴맛에는 화와 열을 끌어내리는 좋은 효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강한 쓴맛이 마시기에 거북함을 주고, 소화기관에 부담을 주어서 설사 등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한약 조제 시 감초나 대추 등으로 쓴맛을 일부 중화하고 있다고 합니다.
제가 다룰 수 있는 부분이 아니지만, 동양철학에서는 희로애락과 생로병사의 복잡한 인간사를 음과 양으로 나누고 목화토금수의 오행(五行), 인의예지신의 오상(五常), 청백황적흑의 오색(五色), 동서남북중의 오방(五方), 궁상각치우의 오음(五音), 심폐비간신의 오장(五臟), 그리고, 산고감신함(酸苦甘辛鹹)의 오미(五味) 등으로 기본적인 해석을 한다는 것입니다.
남주작(南朱雀), 북현무(北玄武)와 같이 오방과 오색이 특정 방향과 특정 색이 관련이 있듯이, 오장(五臟)과 오미(五味)도 상호 관련이 있는데, 즉, 신맛은 간을 돕고, 쓴맛은 심장을 돕고, 단맛은 비장을, 매운맛은 폐를, 짠맛은 신장을 돕는 것으로 한의학에서는 말합니다.

사람은 건강 상태에 따라서 어떠한 특정한 맛을 원하기도 하지만, 맨입에서 어떤 특정한 맛을 느끼는 경우는 해당 장기가 항진되었거나 실조된 경우를 의심해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입에서 자꾸 쓴맛이 난다면, 지나치게 피로하거나, 심려가 있어서 심장이 혹사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쓴맛 이라는 표현이 있듯이, 쓴맛을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특히 어린이들은 단맛을 좋아하고 쓴맛은 아주 싫어합니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온 연륜이 쌓이고 맛의 깊이를 알게 되면 세상에는 ’기분 좋은 쓴맛‘ 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좋아하고, 즐기게 되는 경우가 많아집니다.
커피가 그렇고, 맥주의 홉이, 녹차의 쓴맛이 기호식품으로 되었으며, 두릅, 취나물, 상추, 여주, 질경이, 씀바귀, 고들빼기 등의 쓴맛은 기운을 끌어올리고, 식욕을 돋우며, 춘곤증 극복에 도움이 되고 있으며, 점점 좋은 식재료로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소울 푸드(Soul Food)’ 라는 말이 유행했던 적이 있습니다. 굳이 해석하라면 ‘영혼의 음식’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데, 좀 의역(意譯)을 한다면 ‘나를 위로해 주는 음식’ 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소울 푸드의 유래는, 미국 남부의 노예들에게서 태어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그들 조상들의 고향을 생각하며 만들어 먹은 음식을 말하는 것으로, 우리말 다른 표현으로 해 본다면,추억이 담긴 음식 또는 추억이 떠오르게 하는 음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든 사람들은 모두가 한, 두 가지씩 소울 푸드를 가지고 있을 것 같은데, 저는 ‘고들빼기김치’ 가 소울 푸드입니다. 저 뿐만이 아니라,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많은 분들이 소울 푸드로 아마 고들빼기김치를 꼽는 사람이 있을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 고향에서, 가을걷이가 끝난 밭이나, 밭둑, 논둑에서 어머니를 따라 캔 고들빼기를 소금물에 담가 쓴맛을 어느 정도 제거하고, 양념에 버무려서 조금씩 내 먹었던 쌉쌀한 그 맛이 많이 그립습니다. 아마, 이 맛의 그리움에는 ‘고향과 어머니’ 라는 대체불가의 양념이 들어가 있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도 해 봅니다.
아내가 가끔 동네 반찬가게에서 고들빼기김치를 사와서 먹어봅니다만, 뿌리를 갈라서 만들 만큼 고들빼기가 크고, 어린 시절 먹어봤던 추억의 그 맛이 아니었습니다. 논, 밭둑에서 캔 고들빼기가 아니고, 밭에서 비료 주고 속성으로 키운 고들빼기이기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고들빼기는 조선 헌종 때 정약용의 둘째 아들 정학유(1786~1855)가 지은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에 나오는데, 2월령에 ‘산채는 일렀으니 들나물 캐어 먹세, 고들빼기 씀바귀며, 소루쟁이, 물쑥이라.’ 라고 하였듯이, 씀바귀와 고들빼기를 이른 봄나물로 분류합니다만, 지금은 쓴맛의 야채로 봄에는 주로 씀바귀고, 가을에는 고들빼기입니다.

씀바귀는 재배하는 경우는 드물고, 꽃대가 올라오기 전 이른 봄에 야생에서 채취하여 먹는 것이 일반적인데, 고들빼기는 요즘은 재배하는 경우가 많아서 주로 김장철인 11월~12월에 고들빼기김치용으로 크고 매끈한 것이 거의 채소(菜蔬)의 수준으로 출하가 됩니다.
참고로 씀바귀와 고들빼기는 차이를 보면, 씀바귀는 여러해살이 풀이고, 고들빼기는 두해살이 풀입니다. 씀바귀 잎은 가늘고, 뾰족하며, 고들빼기 잎은 씀바귀 잎에 비해 많이 넓습니다. 꽃은 연 노란색과 흰색이 대부분인데, 씀바귀는 4~6월에 꽃이 피고, 고들빼기는 5~7월에 꽃이 피며, 씀바귀는 꽃 수술이 검은색인데, 고들빼기는 노란색입니다. 뿌리는 고들빼기는 뿌리가 하나로 길며 통통한데 비해, 씀바귀는 뿌리가 2~3개로 갈라지며 잔뿌리가 있습니다.
씀바귀와 고들빼기는 한자로는 구별하지 않고, 고거(苦苣) 라고 하여 ‘맛이 쓴 상추’ 라는 뜻이 있고, 맛이 쓴 야채라고 고채(苦菜)라고도 했는데, 고들빼기는 한자로 씀바귀 도(荼)자를 더하여 고도(苦荼)라고 했던 것이 ‘고독바기’ 로 바뀌었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고들빼기’ 로 변화가 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고들빼기 잎이나 줄기, 뿌리를 자르면 흰색의 유액(乳液)이 나오는데, 그 유액은 맛이 쓰지만, 입맛을 돋우는 기분 좋은 쓴맛으로, 천연 인슐린으로 불리는 이눌린(Inulin)입니다. 이 이눌린 성분이 혈당조절과, 콜레스테롤을 저하시키는 기능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쓴맛의 성분은 소금물에 담가 두면 많이 제거가 되지만, 그래도 공기 중에 노출되면 산화되면서 검은 빛을 띠게 됩니다. 씀바귀나물이나 고들빼기김치가 검은색을 띠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몇 년 전에, 제 고향 후배의 어머니가, 농약이 닿지 않은 사과과수원 주위에서 캐서, 소금에 절여서 쓴 맛을 제거하지 않고, 겉절이 상태로 주셨는데, 역시 고향과 어머니의 향수(鄕愁)가 들어있는 맛이었기 때문에, 시장에서 산 고들빼기김치가 낼 수 없는 맛이 느껴졌습니다.
요즘 정년퇴직한 남자들이 요리 강습을 많이 받고 있다고 합니다. 대략 이 연령대가,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무엇이 떨어진다고 생각했던 세대여서 음식을 할 줄 모르는데, 이렇게 요리강습을 받는 데는 두 가지 목적이 있다고 합니다.
첫 번째는, 아내가 곰국도 끓여놓지 않고 친구들과 해외여행을 가버리면 먹고는 살아야하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고, 두 번째는, 어릴 때 어머니가 만들어 주었던 자신만의 소울 푸드를 자기가 직접 만들어 먹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2025. 10 - 국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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