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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지금, 인생을 계절로 나누면, 제 나이가 지금쯤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가을이 점점 깊어가고 있습니다. 가을에서 겨울로 가는 갈색의 계절은 그냥 쓸쓸합니다.

이렇게 또 1년이 지나간다는 공허함과, 무엇인가 크게 반성해야할 것 같고, 누구에게 크게 빗진 것 같고, 한편으로는  ‘내가 걸어왔던 모든 순간이 은혜였음에 감사’ 하며 깊이 기도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의 단편소설의 걸작이라고 하면, 많은 분이 황순원(1915~2000)의  『소나기』 를 말하는데, 미국의 단편소설의 걸작이라면, 1905년 O.헨리(1862~1910)가 쓴 『마지막 잎 새(The Last Leaf)』 라고 합니다. 

소설의 줄거리를 보면, 화가들이 모여 사는 뉴욕의 그리니치 빌리지 아파트에 사는 가난한 무명의 여류화가 존시(Johnsy)가 심한 폐렴에 걸려서 사경을 헤맵니다. 그녀는 삶에 대한 희망을 잃고 창문 너머로 보이는 담쟁이덩굴의 잎이 다 떨어질 때 자기의 생명이 끝난다고 생각합니다. 

 


이 아파트 아래층에는 ‘언젠가는 걸작의 미술 작품을 그리겠다.’ 고 늘 술에 취해서 생활 하던 노화가(老畵家) 베어먼(Behrman)이 살고 있었는데, 이 이야기를 듣고서, 어느 날 심한 비바람이 불던 밤에 사다리를 놓고 그 담장에 담쟁이덩굴의 마지막 잎 새를 정밀하게 밤새워 그립니다. 

베어먼이 그린 담쟁이덩굴의 마지막 잎 새가 남아 있는 것을 본, 존시는 다시 삶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되고, 기적적으로 완쾌가 되지만, 사다리를 타고 차가운 비바람을 맞고 밤새 벽에 그림을 그린 베어먼은 2일 만에 폐렴으로 죽게 됩니다. 

이 사실을 안 존시와 동료 화가들은 이  『마지막 잎 새』의 그림이야말로 베어먼이 생전에, 언젠가는 그리겠다고 했던 걸작(傑作)이라고 평가를 하게 됩니다. 

담쟁이덩굴의 이름의 유래로 가장 흔히 알려진 것은, 담장에 잘 붙어서 자란다고 하여 담장의 덩굴이라고 부르다가 담쟁이덩굴이 되었다고 합니다.

 


접미사 쟁이의 사전적 의미는 ‘일부 명사 뒤에 붙어서 그 것을 나타내는 속성을 많이 가진 사람을 말하는 것으로 멋쟁이, 겁쟁이, 점쟁이, 욕쟁이 등이 있는데, 어떤 기술을 가진 장인(匠人)을 의미하는 유기장이, 미장이, 양복장이, 옹기장이 등 장이와는 구별된다.’ 고 되어 있습니다. 

담쟁이덩굴은 덩굴식물이지만 성장하면서 줄기도 굵어지고, 수피가 발달하는 포도나무과(科)의 목본(木本)입니다. 같은 목본의 칡이나 등나무처럼 주변의 나무나 기둥 등을 감고 올라가는 형태가 아니고, 능소화와 같이 청개구리의 발가락처럼 생긴 덩굴손 끝부분에 있는 흡착근(吸着根)으로 담벼락, 건물외벽, 나무 등에 붙어서 올라가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칡이나 등나무처럼 이웃하는 식물을 죽이거나 생육에 심하게 지장을 주지는 않습니다. 

 


길이는 8~10m까지 자라며, 꽃은 6~7월에 가지 끝에 황록색으로 모여서 피고, 열매는 9 ~10월에 작은 포도송이처럼 익어갑니다. 보통 사람들은 담쟁이덩굴의 잎과 단풍만 보지만, 잎이 지고나면, 작은 포도와 같이 하얀 가루를 덮어쓰고, 검은 빛으로 익어가는 열매를 볼 수 있는데, 누가 봐도 포도와 같은 집안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담쟁이덩굴은 생명력이 강하고, 공해에 강하기 때문에, 옮겨 심어도 활착이 잘되어서 번식은 씨앗으로는 물론, 꺾꽂이, 포기나누기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번식을 합니다. 

담쟁이덩굴은 떨켜가 발달하지 않아서, 가을에 단풍과 함께 바로 떨어지지 않고 겨울까지 가서 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아름다운 단풍이 오래갈 뿐만 아니라, 전정(剪定)을 통해서 작고 치밀하게 키울 수 있어서, 분재(盆栽)로도 사랑 받고 있습니다.

최근에 많이 보이는 고속도로의 방음벽이나 콘크리트 옹벽, 절개지 등에 담쟁이덩굴로 덮여있는 모습은 자칫 삭막해 보일 수 있는 풍경에 편안함을 주며, 봄에 새싹을 피울 때도 아름답지만, 가을에 빨갛게 단풍이 들었을 때는 단풍나무가 시샘할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담쟁이덩굴은 삭막한 콘크리트 건물을 뒤덮어 건물의 고풍스러운 멋을 살리고, 건물의 복사열을 저감시키고, 정서적으로 편안함을 제공하며, 열매는 겨우내 야생조류나 설치류에게 훌륭한 먹이가 되고 있어, 생태계서비스(Eco-Service)기능도 매우 큽니다. 

 


옛 가옥의 토담에도 담쟁이덩굴이 올라가 있어야 제대로 고풍스러운 맛이 난다고 했을 정도로 담쟁이덩굴은 우리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고풍스러움 보다 화려함에, 요즘은 넝쿨장미나 능소화가 많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담쟁이덩굴은 한국, 중국, 일본, 대만, 우수리 지역 등 동북아시아와 북미의 동부지역에서 자생하는 유용한 조경 식물입니다. ‘국립중앙과학관’ 에 의하면, 동양 종 담쟁이덩굴은 한국이 원산지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담쟁이덩굴의 다른 이름으로는 산에서 기어 다니는 매서운 풀이라는 의미로 파산호(爬山虎) 라고도 했고, 땅을 덮는 비단이라는 의미로 지금(地錦)이라고도 합니다.

담쟁이덩굴의 영어명은 아이비(IVY)라고 합니다. 한국에서 많이 보는 동양 종은 Japanese Ivy라고 하고, 미국 등 북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마지막 잎 새』 의 담쟁이덩굴은 Boston Ivy 라고 합니다. 

 


미국의 동북부에 있는 여덟 개의 명문대학 즉,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펜실베니아, 컬럼비아, 코넬, 다트머스, 브라운 대학을 통틀어서 가리키는 명칭으로 ‘아이비 리그(IVY League) 라고 있습니다. 이 명칭은 이들 대학 캠퍼스의 오래된 건물 벽면을 덮고 있는 담쟁이덩굴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이들 명문 대학은 18~19세기에 설립된 역사 깊은 학교들로 보통 붉은 벽돌 건물들이 담쟁이덩굴로 뒤덮인 고풍스러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방에서는 담쟁이덩굴의 뿌리나 줄기를 말린 것을 지금(地錦)으로 부르는데 『동의보감』 에서 보면 ‘작은 부스럼이 잘 낫지 않거나, 목 안과 혀가 붓고, 자꾸 마를 때, 쇠붙이에 베이거나 찔렸을 때, 뱀독으로 가슴이 답답할 때에 사용하면 좋다.’ 라고 되어 있으며, 민간에서는 산후출혈, 골절로 인한 통증, 관절염, 편두통에 사용을 했다고 합니다.  

담쟁이덩굴은 새순은 봄에 채취를 하고, 줄기와 뿌리는 여름에 채취하여 햇볕에 말려서 약으로 사용을 하는데, 특히 우리 소나무에 붙어서 사는 담쟁이덩굴을  ‘송담’ 이라고 하며, 약효가 크다고 합니다. 이 송담은 소나무에 기생을 하면서 송진을 빨아 먹고 자생을 하는 것으로 새끼손가락 굵기로 자라려면 20년은 자라야 한다고 합니다.  

일본 속담에, 세상에서 가장 처량해 보이는 것이  ‘비에 젖은 낙엽(雨に濡れ落ち葉)’ 이라고 했는데, 지난밤에 뒹구는 낙엽에 겨울을 재촉하는 스산한 가을비가 내렸습니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지금, 인생을 계절로 나누면, 제 나이가 지금쯤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어쩔 수 없이 느끼는 쓸쓸함이 가을을 타는 제게는 불면의 밤과 함께, 더 침잠하고, 엄숙해지고, 경건해짐을 느낍니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김현승 시인(1913~1975)의  「가을의 기도」 일부입니다.
 
(2025. 11 - 국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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