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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래종 같은데, 우리 고유종이고, 순 우리말 이름인 - 히어리

 


이규태 선생이 쓴 『한국인의 의식구조1』에서 보면, 여자아이들 이름이 옛날에는 받침이 들어가는 한자가 많았는데, 요즘 여자아이 이름을 보면, 박미리, 유아리, 김메아리, 김새로미, 최예니, 이하늬 등 받침이 없고, 리(이)형으로 끝나는 이름이 월등히 많다고 합니다. 

여기에는 서양의 여자이름, 루시, 낸시, 베티, 주리, 마리, 메리 등 이(리)로 끝나는 이름이 많은 것과 연관 지어, 서양 선망의 문화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제가 국어학자가 아니라서 무엇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니지만, 저는 우리 문화의 DNA와 관련이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학창시절에 배웠던 고전 가요에서 ‘아리 아리 쓰리 쓰리 아라리’ ‘얄리 얄리 얄라리’ ‘가시리 가시리’ 등 리 자로 끝나는 것이 많았습니다. 저는 리 자는 우리 언어와 음운학적이든, 정서적이든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해 봅니다. 

우리 식물을 공부하면서 느끼는 것은, 순수 우리말 식물이름 중에는 리 자로 끝나는 이름이 유난히 많다는 것을 느낍니다. 예를 들면, 개나리, 참나리, 원추리, 싸리, 상수리, 도토리, 하늘타리, 박주가리, 수수꽃다리, 고사리, 고마리, 보리, 미나리, 으아리 등등입니다

또 다른, 순수 우리말 리 자로 끝나는 ‘히어리’ 라는 꽃이 있습니다. 

 


빠르면 2월말부터, 풍년화, 생강나무, 산수유와 함께, 가장 먼저 봄이 왔음을 알리는 노란색 꽃나무입니다. 

저는 히어리가 꽃 모양도 특이하고, 이름도 외래어처럼 느껴져서, 처음에는 이 꽃나무가 외래종으로 생각을 했습니다만, 히어리는 우리나라 고유 식물이며, 이름도 순수 우리말 이름입니다. 

히어리는 조록나무과 히어리속의 2~3m크기의 낙엽, 활엽, 떨기나무입니다. 귀한 나무, 귀한 꽃이기 때문에, 쉽게 볼 수 있는 꽃은 아니지만, 꽃 모양이 특이하고 오묘하게 생겼기에 한 번 보면 기억에 오래 남는 예쁜 꽃입니다.

제가 자주 산책하는 일산 호수공원의 화장실 문화관 앞에, 사람 키 정도 되는 한 그루가 있습니다. 매년 히어리 꽃피는 모습을 기다리는데, 지금 활짝 피어 있습니다. 

히어리 꽃은 지역에 따라서 2월말에서 4월 중순까지 이른 봄에 연한 황록색으로 꽃이 피는데, 8-12개의 꽃이 총상꽃차례로 아래로 달립니다. 열매는 삭과(蒴果)로 9월에 결실을 하며 종자는 검은색입니다. 

히어리는 미선나무, 동강할미꽃, 금강초롱꽃 등과 함께 우리나라에서만 자라는 한국 특산종입니다. 

우리나라의 분포지역은 처음에는 순천의 조계산, 지리산 등 남쪽에서 자생하는 것으로 알았습니다만, 지금은 천안 광덕산, 수원 광교산, 포천 백운산 등에서도 자생군락이 발견되고 있는데, 산기슭이나 산중턱, 계곡에서 자라며 약간 습한 지역을 자람 터로 삼고 있습니다. 

 


히어리를 제일 처음 발견한 사람은, 일본의 수목학자로 서울농대교수로 와 있던 우에키(植木)가 1924년 전남 순천 조계산 송광사 인근에서 발견합니다. 이 꽃의 특징인 꽃받침 부분이 밀납을 먹인 것같이 반투명하여 납판화(蠟瓣花)라고 한 중국 꽃과 비슷하다고 ‘송광납판화’ 또는 ‘조선납판화’ 라고 불렀습니다.  

‘히어리’ 라는 이름은 1966년에 서울농대 이창복 교수가 쓴 『한국수목도감』에서 전남 순천지역에서 부르는 이름이라고, 처음으로 히어리로 명명하면서 그 후 삼림청에서「국가표준식물목록」에 ‘히어리’ 로 등록을 하였습니다. 

히어리 라는 이름의 유래는 몇 가지 설이 있는데, 아직은 모두 불분명합니다. 가장 개연성이 있다고 보는 설은, 이 꽃이 피는 시기가 입춘과 설을 지나 한해를 여는 시기에 핀다고 ‘해여리’ 라고 한 것이 히어리가 되었다는 설입니다. 

히어리의 학명은 ‘Corylopsis Coreana UYEKI’ 인데 속명의 Corylopsis는 개암나무와 유사하다는 뜻이고, 종소명의 Coreana는 한국이 발견지이고 원산지라고 밝히고 있으며, UYEKI는 명명자 이름입니다. 

히어리의 영어 이름은 ‘코리아 윈터 헤이즐(Korea winter hazel)’ 입니다. 즉 ‘한국의 겨울 개암나무’ 라는 의미인데, 히어리의 잎이 개암나무(헤이즐넛)의 잎과 유사하기 때문에 붙인 이름입니다. 

히어리는 그간 환경부에서 멸종위기 야생식물 2급으로 지정 보호 되었습니다만, 그 후에 남해도서, 중부지방에서 추가 자생지가 발견되어, 충분한 개체수가 확인되었기 때문에 2012년에 지정 해제 되었습니다. 

 


히어리는 여름과 가을에 뿌리를 채취하여 햇빛에 말려 약재로 씁니다. 맛은 쓰고, 성질은 서늘하다고 하는데, 항염증에 효능이 있고, 감기, 부종, 구토, 오한발열에, 또 마음이 괴롭고 전신이 불안할 때 사용했습니다.  

   신기한 듯 바라보는 아가씨가 
   꽃 이름을 묻길래
   히어리 라고 했더니 

   놀란 토끼눈을 하고서 되묻는다.

   리얼리? “

꽃에 대한 시를 많이 쓰는 백승훈의 시「히어리」의 일부입니다. 

(2025.03 - 국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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