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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민족의 기질을 가장 많이 닮은 꽃 - 진달래꽃

 

 

 


2008년 KBS가, 우리 국민이 가장 좋아하는 현대시인과 현대시에 대한 조사를 한 것을 보면, 김소월의 진달래꽃, 윤동주의 서시, 김춘수의 꽃 이라고 합니다. 

그 중에서도, 근래에 가수 마야의 노래로도 나왔던, 김소월(金素月;1902~1934)의「진달래꽃」이 가장 애송하는 시라고 합니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의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이「진달래꽃」시는 우리 학창시절에 교과서에도 나왔는데, 이 시의 내용은 ‘이별을 노래한 시’ 라고 배웠습니다. 

 


이어령 교수님이 2015년에 쓴『언어로 세운 집』이란 책이 있습니다. 교수님은 시(詩)를 언어로 세운 집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많이 알려진 시 32편을 선정하여, 지금까지 우리가 공식적(?)으로 배운 것과 다르게 해석하고, 시에 대한 깊은 성찰과 해박한 지식으로 설명을 한 책입니다. 

이어령 교수님의 소월의 「진달래꽃」시 해석을 인용하면, ‘진달래꽃은 이별을 노래한 시가 아니다.  즉 님 은 지금 떠난 것도 아니고, 역겨운 것도 아닌, 열열이 사랑하고 있는 중임을 알 수 있다. 가실 때에는~, 영문으로 <if>로 시작하는 가정법이며, 미래 추정형이다. 또, ~드리우리다. ~뿌리오리다. ~흘리우리다. 는 미래 의지형으로 서술된 것이다. 

때문에, 소월은 진달래꽃을 작시(作詩)할 때에 이별을 느끼게 하는 청승맞은 4.4조의 운율이 아니고, 밝고 경쾌하며, 조금은 까불까불한 느낌을 주는 7.5조의 운율로 되어 있는 까닭이다. 

 


결론적으로 진달래꽃은 이별을 노래한 시가 아니라, 사랑하는 임에게 죽어도 떠나면 안 된다고 어리광을 부리는 역설의 소리로 들린다고 볼 수 있다‘ 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교수님의 새로운 해석을 읽고서, 다시「진달래꽃」을 음미해 보게 되면, 분명 이 두 연인은 지금 열열이 사랑하고 있고 ‘죽어도 아니 헤어질 것’ 같음이 느껴집니다. 

봄이 오면 진달래는 제주도의 한라산에서부터 북쪽의 백두산까지 우리 산을 온통 붉게 물들이며 피어나는 우리의 꽃입니다. 진달래는 오랜 세월을 두고 따뜻한 정감으로 우리 겨레와 애환을 함께했으며, 우리 기후 풍토에도 가장 알맞은 꽃나무로 존재해 왔습니다. 

 


진달래꽃은 메마르고 척박한 땅, 또 바위틈에서도 잘 자랍니다. 또한, 아이들의 손에 의해서 꺾이고 나무꾼의 낫에 송두리째 잘려나가고 산불이 휩쓸고 가도, 모질게도 땅에 뿌리를 박고 어김없이 봄이면 우리의 산을 붉게 물들이며 피어납니다. 

이러한 진달래꽃의 모습은 수없이 많은 전란과 재난을 극복하고 살아온 우리 민족의 기질을 가장 많이 닮은 꽃나무라고 보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봄이 되면 분홍색 진달래 동산과 노랗게 피어나는 개나리 마을에서 살아오면서 그 속에서 우리의 정서를 키워왔습니다. 그래서 진달래꽃의 색깔과, 개나리꽃의 색깔이 자연 우리 민족 정서에 가장 친근한 색깔이 되었으며, 우리 여인들의 연분홍 치마와 노랑 저고리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진달래꽃은 진달래과, 활엽, 낙엽, 관목(떨기나무)으로 4월초에 잎보다 꽃이 먼저 피며, 주 분포지역은 한국, 일본, 중국, 몽골, 우수리강 유역으로 원산지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진달래는 산지의 볕이 잘 드는 곳에서 잘 자라며, 군락성이 강한 특징이 있습니다. 

진달래꽃은 토양 산도(PH)와 유전형질에 따라서, 빛깔이 조금씩 다르게 나타나는데, 즉 꽃잎의 색이 연한 ‘연(軟)달래’, 표준 색깔의 ‘진(眞)달래’, 아주 진한 ‘난(蘭)달래’로 나누어 부르기도 했습니다.

진달래꽃은 이른 봄에 피어서 배고픈 아이들이 생으로 따 먹으며 허기를 달래기도 했고,  말려서 차를 끓여먹기도 했으며 진달래꽃으로 전을 부쳐 먹고 가무를 즐기는 ‘화전(花煎)놀이’ 문화도 있었고, 진달래술인 ‘두견주(杜鵑酒)’를 만들어 먹기도 했습니다.

 


한방에서는 진달래꽃을 ‘만산홍(萬山紅)’, ‘영산홍(迎山紅)’ 이라고 부르는데, 고혈압, 관절염, 기관지염, 감기, 두통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진달래라는 이름은 조선 중종때(1527년) 최세진이 지은 한자 학습서인 『훈몽자회(訓蒙字會)』에서 ‘진달위’ 로 나오는 것이 처음입니다. ‘달래’는 봄나물 달래도 있지만, 옛날에는 진달래꽃을 ‘달래’ 라고 하는 다른 뜻이 있었다고 하며, 진달래라는 말의 어원은 ‘달래’의 어원에 접두어 ‘진(眞)’이 붙은 형태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진달래꽃은 다른 이름으로 ‘참꽃’이라고도 합니다. 참꽃은 진달래꽃이 지고나면, 진달래와 비슷한 연분홍의 철쭉이 피는데, 꽃은 더 크고 탐스럽기 까지 합니다만, 철쭉에는 독이 있습니다. 그래서 먹을 수 없는 철쭉을 ‘개꽃’이라고 하고, 반대로 먹을 수 있는 진달래꽃을 ‘참꽃’이라고 했습니다. 

또, 중국에서 부르는 이름으로 진달래를 ‘두견화(杜鵑花)’ 라고도 합니다. ‘두견새(자귀, 접동새)’ 가 울 때에 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전설에 의하면, 두견새는 중국 촉나라 망제(亡帝)가 화신이 된 새인데, 고향을 그리워하여 ‘촉나라로 돌아가고 싶다’ 고 “귀촉(歸蜀)” “귀촉” 하고 구슬프게 운다고 합니다. 그 한 맺힌 울음에서 솟아난 피에 붉게 물든 것이 두견화라는 전설입니다.

 


『삼국유사』에 신라향가 ‘헌화가(獻花歌)’가 있습니다. 신라 성덕왕 때 순정공이 강릉태수로 봄에 부임하며, 그의 부인 수로가 암벽위에 무성히 핀 ‘척촉화(躑躅花)’를 보고 ”저 꽃을 꺾어서 바칠 사람이 누구인고?“ 하니, 모두가 머뭇거리고 있는데, 암소를 몰고 지나가던 어떤 노인이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신다면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라는 가사와 함께 그 꽃을 꺾어서 바쳤다고 하는데, 이 헌화가에 나오는 척촉화는 진달래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척촉(躑躅)은 우리에게는 어려운 한자(漢字)입니다만, 머뭇거릴 척(躑), 머뭇거릴 촉(躅)자를 씁니다. 즉 머뭇거림과 망설임을 표현한 것입니다. 이 척촉은 우리나라에서는 구전되면서 진달래와는 다른 꽃 ‘철쭉’이 되었습니다.  

영어로는 진달래를 아젤리아(azalea) 라고 하며, 일본말로는 척촉(躑躅)을 자기들 발음으로 진달래도 쯔쯔지 라고 하고 철쭉도 쯔쯔지 라고 합니다. 중국말로는 먼저 설명한 그대로 두견화(杜鵑花) 라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해방 후에 나라꽃(國花)으로 ‘무궁화 보다는 진달래꽃이 우리민족과 동질감이 있고, 민족정서를 대표하는 꽃이라고 나라꽃을 진달래로 바꾸자는 주장이 많이 나왔었는데, 성천 유달영(柳達永;1911~2004) 교수님이 중심이 되어서 무궁화를 국화로 지켜냈습니다. 

북한은 ’영변 약산 진달래꽃‘과 관련지어 진달래꽃이 나라꽃으로 어어져 왔습니다만, 1994년 김일성의 교시에 의해서 목란(木蘭;산목련)으로 나라꽃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우리 세대까지가 고향을 떠나왔고, 어린 시절 뒷동산에 피어있던 진달래꽃을 떠올리며,
딱히 이유가 없는데도 가슴 아린 애틋함과 그리움을 느끼는 세대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제는 우리의 정서 속에서 진달래꽃의 특별함은, 우리세대가 마지막일 것 같으며, 김소월의 시어처럼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는 또 하나의 꽃’ 이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2025. 04 - 국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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