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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쭉꽃

봄이 그럭저럭 가고 있을 때, 푸른 산에 불타오르는 꽃은 말하지 않아도 철쭉입니다.

 



국민학교로 불리던 시골의 초등학교 시절, 등교 길이 산과 들을 뛰어 다니는 것이었지만, 그래도 봄, 가을 소풍은 연례행사로 사이다를 먹을 수 있어서 기다려지고 즐거웠습니다.  

그 소풍의 하이라이트는, 모든 것이 부족했던 시절이었기에 공책과 연필 등을 상품으로 받을 수 있는 보물찾기였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봄 소풍 때에, 학교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안동 장씨 시조묘소인 ‘장태사묘’에 갔는데, 보물찾기 시간에 선생님이 숨긴 보물을 찾으려고 좀 높이 올라가서 수풀과 나뭇가지를 헤치다가 참꽃을 닮은 유난히 크게 보이는 분홍색 꽃을 보았습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철쭉이었습니다. 

 


그 때에 갑자기 무서움을 느껴서 흠칫하고 뛰어서 내려 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 걸 보면, 꽤 강한 놀람이었던 같은데, 철쭉꽃을 처음보고 왜 그렇게 무서움을 느꼈는지는 아직도 모릅니다.  

중국에서 오래 전부터 양(羊)이 철쭉을 보면 놀라 뛰어 달아난다고 했던 것 같이, 제가 어린 시절 철쭉을 보고 놀라 뛰어 내려 온 것에는, 뭔가 철쭉에 대한 심리적 공통점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제가 나서 자란 안동에서는 그 옛날 진달래는 ‘참꽃’ 이라고 하고, 철쭉을 ‘진달래’ 또는 독이 있어서 꽃을 먹을 수 없다고 ‘개꽃’ 이라고 했습니다. 철쭉제로 유명한 소백산에서도 단양 쪽에서는 철쭉이라고 하는데, 영주, 풍기 쪽에서는 아직도 어른들은 진달래라고 하고 있습니다. 

 


경남 지역에서는 진달래에 연이어 핀다고 해서 ‘연달래’ 라고 하고, 경북 청송의 주왕산에서는 골짜기의 물가에 핀다고 해서 ‘수달래’ 라고 하며, 매년 봄에 주왕산에서 ‘수달래축제’ 가 있습니다. 

명나라 이시진이 쓴 약학서 『본초강목(本草綱目)』에 ‘척촉화(躑躅花)는 양(羊)이 먹으면 죽기 때문에 양이 이 꽃을 보면 달아난다고 해서, 양척촉(羊躑躅)이라 했다.’ 라는 내용이 있다고 합니다. 이후에 양(羊)이 떨어지고 ‘척촉’이 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척촉(躑躅)은 우리에게는 어려운 한자입니다. 머뭇거릴 척(躑), 머뭇거릴 촉(躅)자를 씁니다. 즉, 머뭇거림과 망설임 을 표현한 것입니다. 이와 관련, 혹자는 ‘꽃이 너무 아름다워 지나가던 나그네의 걸음을 멈추게 하고, 머뭇거리게 한다.’는 뜻에서 척촉이 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척촉이라는 한자 이름이 구전되면서 지금의 철쭉이 되었으며, 또 우리말 철쭉이 일본으로 건너가면서 일본말 ‘쯔쯔지(つつじ)’ 가 되었는데, 일본말에는 진달래도 쯔쯔지라고 하고 철쭉도 쯔쯔지라고 합니다. 

 


영어로 철쭉은 Royal Azalea로 ‘진달래의 제왕’ 이라는 의미입니다. 철쭉의 원산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한국, 중국, 일본이 주 분포지인데, 산철쭉의 영어명은 Korean Azalea로 한국 고유종으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철쭉에는 그라야노톡신(Grayanotoxin)이란 강한 독(毒)이 있습니다. 양이 철쭉의 꽃이나 잎을 먹으면 죽을 뿐 아니라, 사람도 철쭉을 진달래로 잘 못 알고 먹게 되면, 심한 배탈과 구토를 일으키며 사망에 이를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합니다. 

식물이 독을 가지는 것은, 동물이나 벌레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독수독과(毒樹毒果)라고 했듯이, 철쭉꽃의 꿀에도 독이 있어 철쭉 꿀이 많이 섞인 잡화 꿀을 먹으면 사람에 따라서는 혼절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철쭉 개화기의 잡화 꿀 원액을 먹을 때는 양봉전문가의 지도에 따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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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향가「헌화가(獻花歌)」가 있는데,『삼국유사』의 수로부인 이야기로 우리나라에서 척촉(躑躅)이 처음 등장하는 기록입니다. 

수로부인은 신라 최고의 미인으로, 성덕왕(702~737)때에 강릉태수로 부임한 남편 순정공을 따라 가는 도중에 바닷가 언덕 꼭대기에 핀 아름다운 꽃을 보고 “저 꽃을 따서 내게 바칠 사람 누구인고?” 하니 모두가 머뭇거리고 있는데, 암소를 몰고 지나가던 어떤 노인이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신다면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라는 가사와 함께 그 척촉화(躑躅花)를 꺾어다 바쳤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척촉화가 진달래인지, 철쭉인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철쭉, 산철쭉은 진달래과(科), 진달래속(屬)으로 철쭉은 활엽, 낙엽, 관목으로 줄기가 여러 갈래로 자라는데, 키는 보통 2~3m정도입니다. 산철쭉은 1~2m 내외의 키에, 잎이 두껍고 단단하여 제주도와 남부지방의 따뜻한 곳에서는 겨울에도 잎이 지지 않는 상록수이며, 중부와 같이 추운 지역에선 반(半)상록입니다. 


국내 최고령 철쭉은 수령이 550년 정도로, 경북 봉화군 춘양면 옥돌봉에 있으며, 강원도 정선에 있는 천연기념물 제348호 철쭉은 특이하게 외줄기로, 키가 4.5m나 되고, 줄기둘레가 84cm, 나이가 200년 정도 됩니다. 울산 울주에 있는 가지산 철쭉나무 군락지는 천연기념물 제462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진달래와 철쭉은 속(屬)까지 같아서 많이 비슷하지만, 진달래는 꽃이 먼저피고, 철쭉은 잎과 꽃이 같이 핍니다. 철쭉은 진달래꽃 보다 늦게 피며, 꽃이 큽니다. 철쭉은 꽃잎 안쪽에 주근깨 모양의 까만 점이 여러 개 있고, 수술이 더 길게 나와 있고, 또 진달래에는 없는 꽃받침이 있습니다.

 


진달래에 비해 철쭉은 자세히 들어가면 좀 복잡합니다. 소백산, 지리산, 한라산, 태백산의 고산부에 군락을 이루고 화려하게 피는 꽃은 철쭉입니다. 지금 화단이나 공원을 가장 화려하게 주황색, 분홍색, 빨간색, 흰색, 노란색으로 장식하는 꽃은 산철쭉입니다. 꽃이 분포하는 위치와 이름이 도치되어 있는 것 같아서 사람들의 이름 기억에 혼선을 주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개량된 철쭉으로, 이 꽃이 필 때에 온산이 붉게 물든다고 영산홍(映山紅), 영산홍과 구분하여 자주색 꽃을 피운다고 자산홍(紫山紅) 이라고 부르는 산철쭉의 종류가 있습니다. 우리의 산철쭉과 비슷하며, 영산홍, 자산홍을 별도 구분하지 않고 산철쭉에 포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양화소록』에 따르면, ‘세종23년(1441) 봄에 일본에서 철쭉 화분을 공물로 보내와, 주상(主上)께서 이것을 대궐 안에 심도록 지시했는데, 그 꽃이 무척 아름다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말한 철쭉이 영산홍으로, 그 전래 시기가 명확하게 기록으로 남아 있는  화목(花木)입니다.  

철쭉의 군락지는, 야산이나 평지의 산철쭉보다는 길게는 한 달 정도 늦은 5월초~6월초가 지역별로 아름다움의 절정이 되는데, 우리나라 철쭉제로 유명한곳은 소백산 철쭉제, 남원 바래봉 철쭉제, 합천 황매산 철쭉제가 국내 3대 철쭉제라고 하며, 지금은 각 지역마다 크고 작은 철쭉제가 있습니다.  

철쭉은 오래 전부터, 우리의 산하에서 친숙하게 볼 수 있는 연분홍의 아름다운 꽃이었기 때문에『동국이상국집』, 『목은집』, 『사가집(四佳集』, 『완당집』등 많은 문집에서 철쭉꽃 시가(詩歌)를 남겼으며, 현대의 문인들도 철쭉꽃과 관련 많은 시를 남기고 있습니다. 

(2025. 04 - 국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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